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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111 - 유뽕군의 이삿짐


BY 박예천 2013-04-16

 

유뽕군의 이삿짐



 

 

지난달 초부터 시작된 유뽕이네 2층공사가 마무리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아빠는 퇴근하자마자 집 안팎을 돌며 정리하고 점검하느라 바쁘답니다.

예전엔 옥상이었던 곳이 2층 마당이 되고 아늑한 공간까지 생겼네요.

온종일 창문으로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옵니다.

낮 동안 달구어진 방바닥은 저녁이 되어도 온기가 남아있어, 엄마는 쉬고 싶을 때면 올라가 벌렁 드러눕곤 합니다.

방 두 개에 작은 거실이 달린 소박한 쉼터입니다.

구석에 장작불 지피는 난로를 설치했고, 아빠서재와 엄마만의 방도 생깁니다.

맘껏 사색하고 글을 쓸 수 있는 독방(?)이 있다는 기분에 날아갈 것만 같네요.


껌처럼 엄마한테만 달라붙어있던 유뽕이와의 지난날.

가끔 탈출을 꿈꾸었고 동굴이라도 좋으니 홀로 지내고픈 갈망이 생기곤 했지요.

가슴이 턱턱 막혀오는 답답함에, 고요한 공간에서 안식을 취하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사항이었습니다.

형편이 넉넉한 것은 아니었지만, 엄마와 아빠는 어려운 선택을 했습니다.

2층을 올리고 엄마와 아빠만의 휴식공간을 마련하기로 한 것입니다.

아빠는 좋아하는 책 맘껏 읽고, 음악도 빵빵하게 틀어놓고요, 영화도 보면서 말입니다.

으슥한 엄마 방에서는 똥폼 잡으며 글 쓰는 흉내를 내 볼 겁니다.


창마다 파스텔 톤 블라인드 달고 현관입구 지붕공사를 끝내며 행복에 달떠있는 엄마와 아빠와는 다르게 유뽕이의 불안감은 날마다 커지고 있습니다.

“유뽕아! 2층에 엄마 방, 아빠 방이 생기는 거야!”

이 말에 녀석은 엄마와 아빠가 자기를 버리고 2층으로 이사 간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싫어! 이사 가기 싫어요! 1층에서 살아요!”

엄마는 다시 설명을 해줍니다.

“아냐, 거긴 유뽕이도 놀 수 있고, 엄마랑 아빠가 공부하는 방이야. 잠잘 때는 다시 1층으로 오면 되는 거야!”

조금 안심이 되는지 큰 눈만 껌벅거리다가 녀석이 말합니다.

“엄마! 5월에는 2층으로 이사 갔다가, 6월에 1층으로 오자!”

딱 한 달만 살고 내려오자는 말이네요.


지난 주말.

깨끗이 단장된 2층을 녀석에게 보여주고 싶어 데리고 갔지요.

방마다 들여다보고 살피다가 화장실로 갑니다.

첫 개시 하듯 시원하게 오줌줄기를 내쏘더니 엄마에게 달려와 하는 말.

“엄마! 2층에 비데 사야겠어요!”

유뽕이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목록이긴 합니다.

수학여행 갔던 이박삼일동안도 비데가 없어 큰 볼일을 참고 온 녀석입니다.

2층으로 이사 가기 싫다고 소리쳤는데, 막상 올라가보니 깨끗하고 좋았던 모양입니다.

비데를 조건으로 내걸고 이사 가주겠다는 속셈입니다.


오늘도 저녁설거지 끝내고 유뽕이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아직 살림살이가 구비되지 않아 썰렁하기만 합니다.

엄마 방엔 책상도 들여놓지 못해 벽지와 블라인드만 말끔한 게 적막강산이 따로 없네요.

“우리 여기 한 번 누워볼까?”

아들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천장만 바라보고 누웠습니다.

“어때? 좋지? 여기가 엄마 방이야. 유뽕이가 좋으면 여기서 이렇게 자도 되는 거야!”

“네에!”

짧게 대답합니다.

“거실에도 누워보자. 자, 이리와!”

이번엔 거실중앙에 큰대자로 누워 아들을 불러들입니다.

모자(母子)는 휑하게 넓은 바닥에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얘기를 이어갑니다.

장난스런 노래도 흥얼거리며 쉬고 있는데, 잠시 심각한 표정이던 유뽕이가 말을 합니다.

“텔레비전 있어야겠다! 비데도 가져오자!”

뭔 소리인가 했더니 2층으로 자기가 와서 살려면, 있어야 할 물건들의 이름입니다.

또 골똘히 눈을 굴리더니 필요한 물건들을 읊어댑니다.

“모니터도 가져오고, 키보드, 마우스.....,”

자기 방에 컴퓨터 옮겨오라는 얘기지요. 게임을 해야하니까요.

계속되는 녀석의 이삿짐.

“짜파게티랑, 쇠고기면......, 전화기, 달력!”

듣고 있던 엄마는 숨이 막혀버릴 듯 폭소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아래층 거실과 자기 방, 주방선반에 놓인 물건들을 떠올린 겁니다.

옷가지나 이불도 필요 없고, 먹을 양식도 라면종류면 해결 된다는 유뽕이 생각이 재밌기만 했습니다.

날짜는 알아야겠으니 달력이 있어야하고, 외부와의 연락통으로 전화기도 챙기고요.

과연 유뽕이다운 이삿짐입니다.


“유뽕아! 내일 또 오고, 이제 1층으로 가자!”

아들과 계단을 내려오는 길.

서로 똥침 놓겠다며 깔깔거리는데, 녀석의 이사목록 물건들이 떠올라 지금껏 입가에 미소가 번지네요.

하여간 누가 낳았는지 대단한 녀석입니다.




2013년 4월 16일 밤.

이삿짐(?) 정하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