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회사인데요!
엄마의 휴대전화에 서울번호가 자주 찍힙니다.
'02'로 시작되는 숫자는 거의가 광고전화라서 받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며칠사이 같은 번호로 여러 번 전화가 옵니다. 역시나 받지 않고 넘겨버렸습니다.
엊그제 일입니다.
방학이라 늦은 밤까지 음악 듣고 책도 읽으며 시간을 보내지요.
개학이 코앞인 아빠와 누나도 노트북을 펼치거나 오디오 앞에 앉아 있습니다.
덩달아 유뽕이도 졸린 눈을 비비며 꼼지락거립니다.
흰둥이 견우 끌어안고 뒹굴며 하품하면서도 잘 생각을 않네요.
거실 벽에 뻐꾸기시계를 보니 자정 십분 전입니다.
그때였어요.
갑자기 엄마 휴대전화가 요란스럽게 울립니다.
서울지역번호가 찍혀있습니다.
자판 두드리던 엄마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아빠에게 대신 받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교양 없이 누구냐며 한소리를 했지요.
“여보세요! 어디신가요?”
전화기를 귀에 대던 아빠도 꽤나 귀찮다는 말투입니다.
힘이 들어갔던 첫마디와 다르게 곧이어 이어지는 아빠의 목소리가 차분해집니다.
“네에? 뭐라구요? 상조회사라구요? 근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신가요?”
또 광고전화가 걸려왔을 것이라고 짐작했던 엄마마저 놀란 토끼눈이 됩니다.
상대방이 뭐라 설명을 했는지 아빠가 쩔쩔매며 굽실거립니다.
“아하...., 네에.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 집 꼬마가 장난전화를 했나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범인은 바로 유뽕이입니다.
꼬마라니요. 징그럽게 커버린 총각인데 말이지요.
재빠르게 익숙한 장면이 엄마 머릿속을 스쳐지나갑니다.
재작년엔가, 소방서와 경찰서에 불이 났다고, 친구들 혼내주라며 문자를 찍어 보냈던 녀석입니다.
아들 잘 둔 덕에 그 날도 아빠가 고개 조아리며 몇 번이나 사죄를 드렸었지요.
그 날의 상황이 비슷하게 재현된 것입니다.
티브이 광고를 눈여겨 들여다보던 유뽕이.
상조회사 전화번호가 대문짝만하게 뜨며 음악까지 깔려있으니 입력이 된 것이지요.
더구나 ‘1588’ 어쩌고 숫자배열도 재밌거든요.
단숨에 외워놓았다가 가족들이 다른 일로 몰두해 있을 시간, 몰래 엄마 핸드폰 들고 일을 저지른 겁니다.
전화번호가 찍혀있으니 접수신청 한 것인 줄 알고 확인 차 연락이 왔던 모양입니다.
거실탁자 건너편에 앉은 아빠가 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며 유뽕이에게 말합니다.
“유뽕아! 다시는 상조회사에 전화하지 마! 이담에 아빠 죽으면 그 때 전화해줘. 알았지?”
녀석은 전화하지 말라는 말보다, ‘아빠가 죽으면.....,’이라는 뜻만 알아듣고는 울고불고 합니다.
“싫어! 아빠 죽지 마. 죽는 거 싫어!”
마치 자기가 전화실수를 해서 아빠가 곧 죽기라도 할까봐 놀라고 걱정되나 봅니다.
작년 외증조할머니 장례식 과정을 꼼꼼히 지켜봤답니다.
입관 마친 후, 할머니와의 이별에 오열하던 엄마를 지켜주던 유뽕입니다.
관을 땅에 묻는 것까지 보여주며 자세히 설명해주었지요.
그날부터 죽으면 땅 속에 묻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하다가도 엄마가 혼잣말로 ‘에휴, 힘들어 죽겠네!’라고 하면 득달같이 다가와 소리를 지릅니다.
“엄마 죽으면 안 돼! 땅속에 묻지 마!”
이번 상조회사 전화일로 꽤나 놀랐을 겁니다.
게으르고 밋밋한 삶이 재미없을까봐 아빠와 엄마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해 준 아들입니다.
생각하면 땅이 꺼져라 절망할 상황이지만,
애틋한 자식이라 따뜻하게 품어주고 끌어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녀석의 잦은 말썽에 이골이 날 만도한데 이젠 적응이 되어갑니다.
어쩐지 아들이 만들어주는 이벤트정도로 여겨지거든요.
녀석이 엄마인생에 형벌이라 생각되던 날엔 없었던 일상입니다.
선물이며 축복으로 다가온 시점부터 유뽕이가 일으키는 행동과 사건들이 하늘의 메시지가 됩니다.
엄마는.....,
꼭 지금처럼만 살겠다고 격자무늬 유리창 가득 비집고 들어온 햇살 앞에 손가락을 걸어봅니다.
지독했던 추위와 삭풍도 다가올 봄볕에 눌려 줄행랑을 칠겁니다.
오늘이 입춘이거든요.
참고 기다리면 이렇게 우리들의 새봄이 온답니다.
2013년 2월 4일
봄이 오는 길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