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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1,914

유뽕이 시리즈 63 - 정 많은 남자


BY 박예천 2010-09-09

          

           정 많은 남자

 

 

유뽕이네 마당 빨랫줄과 계단 난간에 빨래들이 휘날립니다.

작은 옷들이 아닌 전부 커다란 깃발들로만 가득합니다.

엄마는 이른 아침부터 여름손님들이 머물다 간 이불과 베갯잇을 빨아 널었지요.

몸살기운이 있고 허리까지 아프다며 끙끙거리던 어젯밤이었는데,

내리쬐는 햇빛을 보더니 벌떡 일어나 털고 널고 바쁘게 움직입니다.

남쪽에서 올라올 태풍기운에 내일부터 혹시 흐린 하늘이면 어쩌나 이불부터 말릴 생각이랍니다.

피곤하고 쑤시는 몸이지만 잘 마른 빨래를 보면 금세 개운해지거든요.

 

올 여름 벌써 세 차례의 손님들이 여러 날씩 유뽕이네 집에서 지내다 갔습니다.

방학 내내 유뽕이도 찾아온 아이손님들과 대접차원에서 놀아주느라 바빴지요.

바닷가에서도 깊은 계곡과 개울에서도 유뽕이는 잠수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손님들보다 더 재밌게 놀았답니다.

얼굴이 벌겋게 타올랐습니다.

잘 생긴 코가 맨 앞에 튀어나와 제일먼저 그을리기 시작했답니다.

엄마는 푹푹 오르는 뜨거운 김 속에서 밥하고 끓이며 여름을 보냅니다.

해마다 있어지는 풍경이건만, 이제 엄마나이도 만만치 않게 먹어 가는지 힘이 드네요.

일요일인 어제로 세 번째 손님들이 서울로 떠났습니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아빠와 집안 청소를 말끔히 끝냈지요.

거실에 큰 대자로 철퍼덕 누워 소리쳤습니다.

“와! 이제 다 끝났다. 또 오겠다는 사람 없겠지?”

엄마는 곁에 앉은 아빠 쪽을 돌려다보며 물음표 눈빛을 보냅니다.

그저 잘 모르겠다는 답으로 고개만 갸우뚱하는 아빠.

장난스럽게 발길로 아빠를 툭툭 건드리며, 볼멘소리 해 봅니다. 이제 그만!

 

저만치서 혼자 놀던 유뽕이가 팔자걸음으로 다가옵니다.

“엄마! 분당 작은아빠, 김포 작은아빠 올 거야!”

녀석은 아직도 올 손님들이 남아있다며 엄마에게 확인을 시켜줍니다.

정말 보고 싶었던 사촌들이 오지 않은 걸 허전하게 여긴 모양입니다.

작은엄마와 사촌들의 이름을 조목조목 호명해가며 손가락을 접습니다.

“유뽕아! 작은 엄마 못 오신대. 다음에 오라고 하자!”

아무리 풀어서 설명을 하고 이해시켜도 돌아서면 같은 말만 반복합니다.

오지 않는 것만 서러운지 엉엉 울면서 말이지요.

아빠 닮아 정 많은 것 티내느라 자기 핏줄을 챙깁니다.

지난 달 부터 사촌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유뽕입니다.

고모네, 아빠의 외삼촌 할아버지가족, 외가에서도 다녀갔는데 사촌동생들이 없으니 허전했던 겁니다.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뜨자마자 엄마 귓가에 각인시킵니다.

작은집 가족들이 올 거라고.

대충 얼버무리며 거짓으로 둘러쳤습니다.

이사 가서 못 온다더라, 바빠서 이번엔 올 수 없다더라.

엄마의 말끝에는 알아들은 척 대답하다가도 채 5분이 되지 않아 달려옵니다.

반복하여 다시 들려주는 말. 사촌들이 자기 집에 와야 한답니다.

노랫말처럼 계속되는 녀석의 투정이 싫어졌습니다.

같은 말 듣고  있자니 화가 날 정도로 짜증나는 지경에 이르렀지요.

엄마표정이 예사롭지 않고 눈가 실룩거리는 표정이 읽혔는지 어디론가 사라지더군요.

자기 방 책상위에서 뭔가 열심히 적고 있습니다.

낙서 아니면 그림이겠거니 짐작하며 집안일을 했습니다.

 

잠시 후, 특유의 팔자걸음으로 배 내밀고 걸어와 엄마 눈앞에 종이 한 장 내미네요.

16절지 백지 한 장에 큰 글씨로 빼곡히 적어왔습니다.

내용인즉,

‘분당작은엄마, 분당작은아빠, 찬호, 예호, 김포작은엄마, 김포작은아빠, 하영이, 채은이 화요일에 온대’

두 가족의 일원들을 빠짐없이 적어 엄마 앞에 대령했습니다.

명단을 제공할 테니 손님대접에 차질 없이 임하라는 명령이지요.

아빠 닮아 아주 못된 녀석입니다.

더위에 헉헉대며 음식하고 빨래 널고 말려 대령하느라 허리 아픈 어미는 보이지도 않는다 이거지요.

효자남편을 둔 아내가 힘들다더니, 아빠의 지극한 효심(?)덕에 충분히 고단한 날들이건만 녀석은 한 술 더 뜹니다.

사돈의 팔촌까지 거둘 모양입니다.

 

올 여름엔 사정이 생겨 휴가 올 수 없겠노라 연락 받았던 유뽕이 작은 집들입니다.

마당 있는 집에 이사 온 걸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을까요?

유뽕이는 사촌들을 그리워합니다.

물놀이도 맛난 음식도 나누고 싶은데, 사촌들 없는 여름이 자꾸 허전 한가 봅니다.

종잇장 보여주어도 시큰둥한 엄마 안색에 안심되지 않았는지 이번엔 색종이를 접네요.

엽서모양으로 만든 빨간색을 들고 현관 밖으로 나갑니다.

“너 지금 어디 가는 건데?”

“편지 부치러 가요!”

대문 기둥 위 달아놓은 빨간 우체통에 넣으려는 것이지요.

다시 들어와 파란색 종이로 편지접어 들고 나갑니다.

그렇게라도 하면 그리운 사촌동생들 반갑게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나 봅니다.

 

엄마가 좀 바쁘고 땀나는 여름이어도,

유뽕이가 기다리는 사촌들 놀러왔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사이 끈끈한 정을 유뽕이도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듯하여 엄마는 기운이 납니다.

몇몇 매몰찬 어른들 보다 훨씬 속 깊은 녀석입니다.

햇볕에 뽀송뽀송 이불 마르면 잘 접어 보관해야겠네요.

내일이라도 금방 유뽕이가 기다리던 사촌동생들이 놀러 올지도 모르니까요.

 

어쨌든 정 많은 아들 덕에 엄마는 만날 기운 센 천하장사, 슈퍼우먼이 되어야 합니다.

 

이얍! 으라차차!!

 

 

 

2010년 8월9일

사촌을 기다리는 유뽕이 보다가.

 

2개
헬레네 2010.08.12 00.28 신고
캬캬~~`네번째 접대 들어 가셨군요 .
어울렁 더울렁 유뽕이가 그걸 아는가 봅니다 .
정많은 남자 유뽕이 건강하게 여름을 나는군요 .  
  박예천 2010.08.12 09.04 수정 삭제 신고
아~~~그렇습니다.
녀석은 새로운 손님보는 재미에 기분이 날아갈 듯 하고요.
어무이는 허리가 휘게 날아다니고요..ㅎㅎㅎ
그래도 좋답니다. 유뽕이 얼굴 빛이 환해지는 걸 보면요.  
판도라 2010.08.11 15.08 신고
감동꾹 하는거 까먹고 가서..
며칠만에 다시 들어왔네요..
  
  예천 2010.08.11 18.49 수정 삭제 신고
참나...판도라님 땜에 미챠~~~
뭘 일부러 오셔서 하트를 날린대요 ㅎㅎㅎ
유뽕이 녀석 예지의 능력이 있나봐요.
드뎌 분당 시동생네 녀석 사촌들이 낼 놀러 온다네요.
녀석 ...신나서 콧노래 흘리고 난리 났습니다.
저는 또 아기들 반찬 준비하느라 장조림 하고 있구요..ㅠㅠ  
카라 2010.08.11 11.17 신고
손님치르느라 힘드셨는데 정많은 유뽕이 때문에 작은 댁 오신다고 하시면 정말 또 힘드실뻔 하셨네요. 아무리 그래도 힘드실때는 쉬어야 해요. 게다가 허리도 안좋으시다면서요. 날씨 선선해지면 유뽕이 데리구 작은댁을 방문하시는 게 어떨런지요? ^^
저는 아이들이 연달아 아픈 바람에 저도 눈병이 나서 고생하고 있어요.
눈두덩이가 욱신거리고 눈동자는 쑤시고 벌겋게 충혈되었어요.
글짓기 수업도 2주를 빠지고 있네요. 남한테 민폐를 주면 안되니까요.
아이들때문에 힘든데 왜 저는 또 꾸역꾸역 참고 일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아이아빠 휴가라고 놀다오라고까지 했으니..미련하기 그지없지요
다른 가족들과 휴가일정이 잡혀있어서 취소도 못하고 갔다왔어요.
신경성이라 옮기는 눈병은 아닌듯 해서 약국 약먹고 갔는데 심한줄 알았으면 안 가는건데 좀 후회가 되요.
즐거워야 할 휴가가 아픈 눈때문에 더 힘들었죠. 어제 안과가서 주사맞고 지독한 바이러스라는 의사말듣고 남편은 그제서야 깨달았는지 집안일도 다하고 죽도 사오고 하더라구요. 아프면 아프다고 꼭 말하시고 쉬세요. 똑똑한 척 다하고도 미련하기 그지없는 저를 보세요. 병나면 결국 본인도 고생,가족 전체가 고생이랍니다.
^^  
  박예천 2010.08.11 11.56 수정 삭제 신고
에구....가엾은 울 카라님!
더운 날 아이들 돌보랴, 눈병까지 생겨 지독한 여름을 보내시네요...ㅠㅠ
그래요. 이젠 헌신만 하지 말고 살아요.
자신을 먼저 챙기고 아프면 엄살도 부리고 말입니다.
다 알아주겠지...나만 고생하면 되지...하며 사는 게
우리네 여자들 삶입니다. 저도 그랬구요.
허리 아픈 것은 오래 묵은 겁니다.
원래 타고나길 신장이 약하기도 하고,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날만 흐리면 꼼짝을 못하는데
요즘 계속 하늘빛이 좋지 않으니..ㅎㅎㅎ
저나 카라님이나 아프지 말아야 하는데 말이죠.
엄마가 아픈 몇 날은 집안 꼴이 말이 아니게 변합니다.
지금은 좀 어떠신지요...저도 아컴 오랜만에 오지만,
카라님 안부가 궁금했답니다.
지독한 여름앓이를 하느라 고생하셨을 줄이야.
아마도..........올 가을은 엄청나게 근사한 빛으로 다가 올 모양입니다^^
님과 제가 참아낸 여름의 깊이 만큼!  
토토 2010.08.10 16.31 신고
우리유뽕이 정말 사람을 사랑할줄아는 정이많은 소년이군요.
유뽕이도 힘들었을텐데도 다른식구들을 챙기며 기다리니..그마음 마음에 닿아요,
여름동안 예천님도 고생많았어요,,
남편님도 더불어
우리유뽕이 항상 건강하길 바란다..,
  
  박예천 2010.08.10 20.04 수정 삭제 신고
와~~~! 여름동안 고생많았다는 위로를 토토님께 받다니요.
정말 고맙습니다.
거대한 선물보다 귀한 힘이 됩니다.
유뽕이에게도 토토님 안부 전할 게요^^  
시냇물 2010.08.10 15.25 신고
유뽕이의 가식없는 그 모습이야말로 세상 이치에 빠삭해진 우리 어른들이 배워야할 덕목이 아닐까 싶어요 계산 없이 마음가는대로 움직이는 거, 우리가 어렸을 때는 가능했는데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이런 순수함이 사라진다는 슬픈 현실이겠죠 그냥 조금 늦되는 것 뿐이에요 유뽕이는...  
  박예천 2010.08.10 20.01 수정 삭제 신고
유뽕이 녀석 가식없다 못해 순수덩어리죠. 좋은 말로하면 그렇습니다.ㅎㅎㅎ
열 두살인데 여태 자동차 장난감 입으로 부릉부릉 하며 놀아요.
몸만 큰 우리집 애기랍니다.
정말 그렇게 늦되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늦게 가더라도 가기만 하는 것이라면....^^  
선물 2010.08.10 01.01 신고
예천님 고생 많으셨어요~ 앞으로 살아갈 장소를 물색할 때 휴가지는 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듯 ㅎㅎㅎ(제가 일을 좀 겁낸답니다.)
그런데 유뽕군 정말 사랑스러운 점이 많네요. 꼭 한번 안아주고 싶은 맘이 듭니다. 사랑 많은 아이는 언제나 예뻐요.  
  박예천 2010.08.10 08.43 수정 삭제 신고
선물님!
늦은 시간까지 못 주무시고 글 쓰시나요?
저는 요즘 아홉시를 못 넘기고 꾸벅꾸벅 졸고 있답니다.ㅎㅎㅎ
다른 분들 글도 읽고 댓글 남길 시간도 없네요..ㅠㅠ
공주님 잠옷 입으셨던 님의 저녁도 편안히 읽었답니다^^
  
낸시 2010.08.09 21.58 신고
한여름에 손님 치르기가 쉽지 않은데 애쓰셨네요. 거기에 정많은 남자라...정많은 남자랑 사는 여자는 힘들다던데...ㅎㅎㅎ 우리도 손님을 많이 치르던 때가 있었네요. 우리집 남자는 정이 많아서라기보다 잘 난 체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지만...ㅎㅎㅎ 손님을 초대했다는 말에, 그럼 청소 좀 해달라고 했더니...울남자 삐지더라구요. 난 무거운 청소기(뭐든 큰것 좋아하는 남편이 큼직한 것으로 골라 특별히 무거웠거든요)로 청소하는 것이 힘들었기에 부탁했더니... 그러더니 내가 손님치르는 것을 싫어해서 집으로 사람을 초대할 수 없다...하더라구요. 그러거나 말거나 청소는 할 수 없노라고 버팅겼지요. 점점 손님부르는 일이 뜸해지더니...요즘은 손님을 부르면 당연히 자기가 청소는 하는 것으로 알아서 별 불만이 없네요. 사실은 남편보다 내가 더 집에 누가 오는 것을 좋아하지만...ㅎㅎㅎ  
  박예천 2010.08.10 08.41 수정 삭제 신고
ㅎㅎㅎ 낸시님도 저 같네요.
저도 실은 사람 좋아하거든요.
남편이 많이 도와준답니다.
청소며 요리까지 옆에서 조금씩 나눠 해 주니
할 수 있겠지요.
폭염 더위는 좀 사라진 듯 합니다.
아침 저녁 기온이 선선하게 느껴집니다.
댓글 감사드려요^^  
정자 2010.08.09 19.21 신고
헤헤..우리집에 오시는 분들은 셀프입니다..제가 워낙 못하니까 다들 알아서 해먹고 돌아 갑니다..전 안녕히 가시라고 다음에 또 오라고 하는디..대답을 안합니다. 뭐 그렇거나 말거나 있는 거는 쌀이고 반찬은 각자 집에 있는 거 챵겨오라고 했더니 알았답니다..헤헤..나름 사는 것이 각각인가 봅니다..울 유뽑이 올 여름 잘 지내라고 전해주셔유~~~ 헤헤헤  
  박예천 2010.08.09 20.34 수정 삭제 신고
정자님!
오랜만에 뵙네요.
셀프라는 것도 젊은 사람이거나 동기간이면 가능하겠지요.
시어른과 친정부모님께는 할 수 없는 순서 같습니다..헤헤
저는 그래요. 좀 보수적이고 막힌 사고방식을 지녔는지 모르지만요.
유뽕이는 사람을 좋아해서 엄마 힘든 것도 모르고 자꾸 불러댑니다.
다 오라고....ㅎㅎㅎ  
살구꽃 2010.08.09 16.20 신고
ㅎㅎ 유뽕이 엄마야 힘든건 아랑곳도 없이 그저 사촌들하고 놀고 싶어서..ㅎ
더운데 세팀씩이나 치루셨다니..땀을 얼마나 쏟았을지 ..ㅎ 식구들 해먹기도 벅찬 여름에..ㅎ 암튼 고생 많았네요..이젠 푹좀 쉬셔요..에전엔 저희집도 사촌들이 방학만하면 왔었는데..이젠 애들이 학원 다니랴 올시간이 없어요..ㅎ 덕분에 저도 편하구요..ㅎ 형님이 친정에 갔는데 올때 들러서 가라고 제가 빈말이래도 그리했는데..ㅎ 모르겠네요 다녀 갈런지..ㅎ 여름 손님은 진짜 사양여요..ㅎ  
  박예천 2010.08.09 20.29 수정 삭제 신고
아! 살구꽃님 어찌 지내시는지요.
언제쯤 또 병원에 가셔야 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무슨 검사였나 결과를 보셔야 한 것 같은데.....아닌가요?
가만 보면 살구꽃님도 그넘의 정이 많아 고달프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 거칠게 하는 듯 하지만, 속은 여리고...그쵸?
저는 여름 손님들 때문에 힘든 것 보다....더운게 싫어요.
손님 오는 것은 괜찮은데 말이지요. 정말 더위는 못 참겠어요.
입추도 지났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