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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503

유뽕이 시리즈 53 - 따라오지 말라니까!


BY 박예천 2010-09-09

         따라오지 말라니까!

 

 


 


유뽕이네 학교에서 내일 봄 소풍을 갑니다.

강릉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정동진까지 다녀온답니다.

돌아오는 길, 오죽헌에 들려 점심도시락을 먹는다고 합니다.

지난 주일부터 녀석은 신이 났습니다.

평소에도 교통기관 장난감을 좋아 하는데, 직접 뿡뿡 기차 탄다니 날마다 들떠 지냈지요.

“너 김밥도 싸 갈 거야? 뭐 넣고 해줄까?”

손가락 하나씩 접으며 속에 들어갈 재료를 정해줍니다.

“햄, 참치, 계란, 치즈, 오뎅.......끝!”

“뭐야? 오이랑 당근도 넣어야지!”

“싫어!”

편식이 심한 유뽕이는 김밥도 느글느글 맛으로 결정했나봅니다.

“그럼 간식은 뭘 살까?”

“망고 쥬스랑 미쯔 살 거야!”

초코과자와 달큼한 망고 쥬스를 선택했습니다.

엄마는 조목조목 제 생각을 말 할 줄 아는 것만으로도 기특해서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맘먹었지요.


어젯밤 잠자리에 들며 슬쩍 떠보았습니다.

“유뽕! 기차여행가니까 좋아? 엄마도 가면 안 될까?”

“안 돼!”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물론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막상 거절당하고보니 녀석이 좀 괘씸해집니다.

언제는 엄마만 있으면 땡이라는 듯 혹처럼 매달려 다니더니 말입니다.

덩치 큰 녀석을 업고 안고 치료실로 몇 년이나 뛰어다녔는데, 까짓 기차 좀 얻어 타겠다니 단칼에 거절입니다.

진짜 치사빤스입니다.

 


수업이 일찍 끝나는 수요일 오후.

인지치료실 가는 길에 엄마는 또 장난기가 발동합니다.

조수석에 앉은 유뽕이 눈치를 살피며 물어봤지요.

“유뽕아! 엄마도 기차여행 가고 싶다. 너 따라가면 안 될까?”

언제나 그렇듯이 듣든지 말든지 엄마는 혼자 여러 말을 합니다.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녀석은 의아한 표정으로 엄마를 쏘아보며 짧게 말합니다.

“왜?”

왜라니요. 엄마가 가고 싶다는데 뭘 물어 보냐구요.

“응...., 나도 소풍갈래! 유뽕이 따라가고 싶어!”

“따라오지 말라니까. 집에 있어!”

엄마는 정말이지 유뽕이가 그런 대답을 하리라고 손톱만큼도 생각 못 했습니다.

속으로 마구 놀라며 가슴이 뛰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엄마와 유뽕이의 대화를 들었다면, 그저 평범한 녀석으로 보았을 정도였지요.

주거니 받거니 얘기가 오가는 것만으로도 흥분되어 엄마는 유뽕이 심기를 또 건드립니다.

“엉엉엉...!  나보구 집에 있으래. 엄마만 두고 간대......엉엉.”

거짓으로 우는 척하며 곁눈질만 했습니다.

조금은 난감해지는 표정인가 싶더니, 반쯤 화난 목소리로 톤을 높여 소리칩니다.

“미안해! 미안해!”

전혀 미안한 억양이 아니라 화가 엄청나게 묻어있는 음성이었지요.

이쯤에서 접을 엄마가 아닙니다.

“그래도 가고 싶어. 나두 따라 갈래. 기차 탈래!”

“친구랑 갈 거예요. 재원이, 주호, 종호, 희성이, 예지, 효진이.........”

손가락을 또 꼽으며 반 친구 전체 이름을 떠올립니다.

마지막으로 세게 한마디 유뽕이에게 던지는 엄마.

“치이! 너무해, 나 삐칠 거야 흥!”

당황한 유뽕이는 순간 어쩔 줄을 몰라 하더니, 핸들 잡은 엄마의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팔 아래 손목까지 주무르기 시작합니다.

“엄마, 주물주물 해줄게. 자! 주물주물!”


기차여행 따라가고 싶은 엄마를 달래려 팔이나마 주무르겠다는 효심 지극한 유뽕이.

엄마는 갑자기 속성으로 꿈을 꿉니다.

자기혼자 기차 타겠다며 엄만 따라오지 말라고 하지만,

나중에 혹시 압니까.

늘그막에 녀석이 보내주는 효도관광 얻어 타고 팔도유람 다니게 될 지요.

그날이 오길 학수고대하며, 지금은 그냥 말 잘 듣는 엄마가 되렵니다.

따라오지 말라면 그냥 집에 착하게 있어야지요.

 


(유뽕이가 직접 인터넷에서 복사한 후 오려 만든 손가락 인형입니다. 집에서 저렇게 끼고 노래부르며 놀지요^^)


 

헌데, 녀석이 언제 저렇게 커버렸을까요?

섭섭함과 대견함이 교차되는 지금은,

유뽕이 배낭 챙겨야 할 소풍 전야랍니다.

돈은 얼마면 되느냐고 물으니, 오천 원만 달랍니다.

가계부에 적어놔야겠습니다. 나중에 이자 쳐서 꼭 받으려면.

오늘따라 녀석의 떡 벌어진 어깨가 듬직하게 보입니다.

업어 달라 말하고 싶을 정도로.







2010년 5월 19일

유뽕이 봄 소풍 가기 전날에.

   


 


0개
헬레네 2010.05.20 21.12 신고
그봐요 ,,,,,, 예천님 내가 뭐랬어요 ??
유뽕이가 줄줄,,,,, 달변을 늘어 놓으며 엄마를 얼르고 달래려나 봅니다 .
하하하 ~~~너무 기분좋은 저녁 입니다 .
오늘 유뽕이 때문에 웃습니다 . 걍 ~~집에있써어 ~~~ㅎㅎㅎ  
  박예천 2010.05.20 22.14 수정 삭제 신고
헬레네님!
지난 날....울고 가슴저미던 그 순간들은
오늘을 보여주기 위한 유뽕이의 작전이었나 봅니다.
물론...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도 알지요.
또 그렇게 울고, 웃으며 걸어가렵니다.

집에 박혀(?) 있으라는 유뽕이의 말을 착실히 듣고,
오늘은 종일 텃밭 열무 뽑아 김치 두 통 담궜어요.
잘 놀았는지 지금껏 기분이 좋더군요.
덩달아 저도 가볍습니다.....몸은 무쟈게 피곤해요...ㅎㅎㅎ  
물뿌리개 2010.05.20 10.39 신고
이제 유뽕이가 엄마치맛자락이나 붙잡는 마냥 어린애가 아니라니까요~~ 이제 엄마보다 칭구가 더 좋기도 하구 그렇다니까요.. 유뽕어머님 앞으로도 유뽕이 한테 자주 자주 서운해 지실 거예요.. 하지만 많이 삐지지 마시고 기다리세요 언젠가 유뽕이가 허리굽고 다리아퍼 오래걷기 힘든 엄마 엎고 효도관광 시켜 드릴테니요~~ 유뽕이 오늘 무지 신나겠네요.. 날씨도 참 ~좋아요  
  박예천 2010.05.20 11.46 수정 삭제 신고
희망을 놓지 않고 삽니다.
너무나도 천천히 걷는 녀석이기에 작은 발전에도
감동이지요.
소풍가서 네시쯤 올 것이라서 텃밭에 열무 잔뜩 뽑아서 절여 놨는데,
아....봄이라 그런지 자꾸 졸리네요.
그냥 시원한 살구나무 그늘에 돗자리 깔고 침흘리며 자고 싶습니다요..ㅎㅎㅎ
정말 날씨 죽여주네요...캬~~~  
새로미 2010.05.20 01.35 신고
정 많고 잘 생긴 아들이네요.
주물주물...하하하... 우리 아들도 어릴 적에 내 어깨 주물러주며,
입으로는 주물주물 그랬답니다. ^^
아고, 하는 짓이 하도 귀여워 옆에 있으면 뽀뽀해주고 싶어요.
그렇게 많이 컸으니 이제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소풍 가는 날이네요.
친구들과 어울려 잘 다녀오리라 믿어요.
아들 사진 잘 보았습니다. 잘 생긴 아들!
그런데 참 이상하네요, 제가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예요. ^^  
  박예천 2010.05.20 09.08 수정 삭제 신고
새로미님....!
님의 댓글을 읽는데 왜 눈물이 날까요? ㅠㅠ
잠시 시큰해집니다.
어쩐지 님은 제 처지를 다 아실듯.....마구 기대고 싶기도 하고요.
이심전심이라 울 아들 생김도 예견하셨을 겁니다.
근데....이렇게 뚱뚱해졌답니다...ㅎㅎㅎ

오늘 드뎌 소풍 길 떠났어요.
엄마가 기차운전 하고 가겠다며, 아침식탁에서 말하니
자동차나 끌고 다니랍니다...ㅋㅋㅋ
정말 많이 컸어요...여기 아컴 님들의 성원 덕분이기도 하고요.
만감이 교차하는 아침이네요.

헌데...새로미님!
건강 생각하셔서 일찍 주무세요.
댓글주신 시간보니 너무 늦었네요...아셨죠? ^^
누옥을 다녀가심에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