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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43 - 만두대장


BY 박예천 2010-09-09

          만두대장

 


 

원주 할머니 댁에 김장하러 갔었지요.

커다란 무쇠 솥 아궁이가 훨훨 불꽃을 내밀자 유뽕이는 부지깽이 휘저으며 좋아합니다.

마당가운데 놓인 솥단지 곁에 오전 내내 바짝 붙어있습니다.


할머니 댁은 신기한 것들이 참 많지요.

담벼락에 기대고 서있는 감나무엔 까치밥 달랑 두 개가 떨어질듯 달려있네요.

뒤란 바닥은 얼마 전부터 새로 들어온 강아지 별이네 집이 되었습니다.

양 볼이 홍시처럼 발갛게 얼어도 방안에 들어오지 않고 놀고 있습니다.

할머니 댁 이층 방에서 두 밤을 잤지요.


속초로 돌아오는 날.

주섬주섬 옷가방을 챙기는 엄마 곁으로 슬며시 다가오더니 한 마디 던집니다.

“엄마, 감자만두!”

덜렁이 엄마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유뽕이 머릿속엔 만두 알이 데굴데굴 굴러다녔네요.

쫄깃한 감자만두 챙겨갈 생각을 다하다니요.


유뽕이는 만두대장입니다.

특히 찐만두를 좋아하지요.

큰 접시에 담아놓고 가족끼리 먹을 때면 없어지는 만두 숫자에 눈물이 고일지경입니다.

엄마는 유치원 선생님 간식 주듯이 아빠와 누나, 유뽕이 접시에 정확하게 나눠주지요.

그래야 안심하는 녀석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답니다.

원주 할머니 댁 근처에 감자만두 잘 하는 곳이 있어요.

돌아오는 길에 몇 봉지 사오자는 말을 아빠와 주고받았는데, 유뽕이가 먼저 입력해 놓았나 봅니다.

만두대장의 일침에 힘입어 다섯 봉지나 사서 짊어지고 속초로 왔지요. 


녀석은 돌아온 날부터 냉동실문을 확인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행여 누가 집어갈세라 지킵니다.

밥 먹을 생각도 않고 만두만 쪄달라고 성화입니다.

오늘 저녁에도 마찬가지로 만두 소리를 합니다.

“만두 주세요!”

유뽕이의 볼록한 배를 지켜보자 한숨부터 나옵니다.

살살 달래보기로 했지요.

“아프리카사람들은 만두를 좋아해! 만두를 많이 먹어 배탈이 났어. 호박 같은 간호사가 주사를 놨어. 아야, 아야, 난 싫어!”

신나게 유뽕이가 아는 만두노래를 불러주었지요.

“유뽕아! 만두 많이 먹으면 배탈 난대. 이따만 한 주사 맞아야 하는데 괜찮어?”

“만두 먹을래! 열 개 먹을래!”

몇 번을 달래 봐도 밥 먹고 만두까지 먹겠답니다.

엄마는 묘안을 짜냈습니다.

“그럼 다섯 개만 먹기!”

다섯 개라도 준다니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찜통에 만두를 올려놓으니 녀석은 젓가락 챙겨들고 냄비 옆에 서있습니다.

“유뽕! 기다려야 돼. 시계보자! 일곱 시 사십 오 분 되면 먹는 거야. 알았지?”

엄마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다가 세탁기 살피러 베란다에 다녀왔지요.

정말 아주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엄마를 향해 유뽕이가 크게 말합니다.

“일곱 시, 사십 오 분!”

손가락으로 가리킨 부엌 벽을 보니 정말 시계는 그 시간이 되어있는 게 아닙니까. 

‘뭐야....? 요즘 내가 왜 이 모양이지? 정신을 어디 놓고 사는 거야. 큰일이네!’

엄마는 자신이 한심한 사람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합니다.

유뽕이 표정도 예사롭지 않다고 여겨졌지요.

“거실 시계는 삼십분인데 이거 왜 이러지? 유뽕! 네가 시계 만졌지?”

유뽕이는 대답도 없이 생글거리기만 합니다.

아뿔싸! 녀석이 시계바늘을 돌려놓은 것입니다.

역시 만두대장다운 발상이네요.

엄마는 아주 표독스러운 얼굴로 녀석을 째려봤습니다.

“너! 그런 게 어딨어? 엄마가 ‘기다리는 마음’ 하라고 했는데, 이게 뭐야?”

실실 웃던 유뽕이는 갑자기 와락 엄마 품으로 달려옵니다.

“엄마, 사랑해!”


요즘 유뽕이의 새로운 방패는 시도 때도 없이 외치는 “사랑해!”랍니다.

누군가 혼내는 어조로 언성을 높이면 달려와 안기며 사랑한다고 한답니다.

뭔가 실수를 했을 적에도 무조건 사랑이면 됩니다.

남녀노소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유뽕식 언어이지요.

‘사랑해!’를 남발한 녀석이 쫀득거리는 만두피를 벗겨내고 아껴가며 다섯 개 몽땅 먹어치우네요.


세상에 모든 언어들이 사라지는 날이 와도,

이 한마디만 남아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해!


사실은....,

덜렁이 엄마도 만두대장 유뽕군을 무지무지 사랑한답니다.






2009년 11월 17일

만두대장님 시계바늘 돌려놓은 날에.



3개
접시꽃 2009.11.18 15.32 신고
나, 하남댁이네! 니 글 잘 보고 있다! 우리집 신모군도 만두 킬런데..
그냥 만두도 좋아하는데 감자만두는 더 좋아할듯....!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 찐빵의 계절이 왔군! 먹고싶당!  
  박예천 2009.11.18 20.17 수정 삭제 신고
아~~! 접시꽃님.
제 글을 보고 있었다니......많이 부끄럽습니다.
허접한 글 줄이나마 엮을 수 있도록,
제게 가장 큰 영향력을 주신 분.
날이 꽤 추운데....건강 잘 챙기세요.
더불어 귀 댁 신뽕국(?) 군에게도 안부 전해주시구요...ㅎㅎㅎ  
모퉁이 2009.11.18 08.08 신고
아침에 두 식구가 밉상을 부리고 나가길래 순간의 감정을 여과없이 적어놓고 만두대장을 읽으니 이건 또 뭐..? 밉상 중의 한 명이 만두대장이거든요.
유뽕이의 장난스럽고 재치있는 행동이 슬그머니 웃음을 주네요.
유뽕이의 사진을 보아온 터라 예천님의 글만 봐도 녀석의 행동이 떠올려집니다. 우리집 만두대장은 오늘 완전 밉상이었는데 댁의 만두대장은 아주 귀여운데요? 날씨가 춥습니다. 간간히 올리는 글로 안부 대신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고요..  
  박예천 2009.11.18 09.54 수정 삭제 신고
방금 님의 글을 읽고 왔습니다. 읽는 내내 웃었지요...ㅎㅎㅎ
집집마다 귀여운(?) 밉상이 있네요.
아마도 사랑받고자 하는 몸짓들이 아닌가 합니다.
투정같습니다. 맘 넓은 우리네 아줌마 들이 싸안아야 하나봐요..ㅎㅎㅎ
알콩달콩 사는 얘기 글로 풀어가라고,
우리집 유뽕이나 모퉁이님 댁의 밉상(?)들이 배역에 충실하고 있다고 여깁시다요.
다녀가심에 감사드리며, 모퉁이님도 반짝 추위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혜영 2009.11.17 23.52 신고
음..유뽕이가 만두대장이었군요..우리집 아이들도 만두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하지요..감자만두는 아직 안먹어봐서요...맛있을거같네요..
빨리 먹고 싶어서 엄마몰래 시계를 돌려놓고 생글 거리면서 웃는 모습이라..생각만 해도 귀여울거 같아요~ 엄마! 사랑해 !하면서 달려들면 얼마나 이쁠까요  
  박예천 2009.11.18 09.40 수정 삭제 신고
혜영님 반갑네요.
작가글방에서 자주 뵙게 되어 더욱 그러하답니다.

유뽕이의 꾀가 늘어갈수록 엄마는 골탕을 먹지만,
그래도 행복하답니다.
일반아이들과 같은 일상을 맛보니까요.
지금보다 더 많이 개구쟁이 짓을 해도 다 용서해줄 겁니다.
아직....유뽕이와 누려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요.

유뽕이는 아무때나 자기 쪽에서 꼬리를 내릴 일이 있으면,
무조건 '사랑해!'를 외칩니다.
혼내주려다 맥없이 무너지고 말지요.
사랑한다는데.......뭔 답이 있겠습니까? ㅎㅎㅎ 안그래요?
에효~~ 울 신랑은 그런 거 자주 해주면 안되는지...ㅠㅠ
댓글 감사드려요!  
아트파이 2009.11.17 23.47 신고
'사랑해'란 말 한마디면 정말 모두 눈 녹듯 녹을것 같아요. 유뽕군 너무 귀엽네요. ^^
옛날 저희집에서도 그랬어요. 귤 한상자가 이틀을 못 가고.. 삼형제 똑같이 나눠져도 저는 늘 빼앗기고 동생은 엄청 먹고... 오빠는 저의 용돈 털어가고.. 중간에 끼어 이래저래 모두 빼앗기자 엄마가 엄청 속상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ㅎ 동생은 나중에는 저의 감기약까지 대신 뺏어 먹었었는데...
그러던 동생, 오빠가 이제는 어른이 되어 자식을 두고 이렇게 살고 있답니다. 가끔 우리 아이를 보면서 옛날 그렇게 서로 뺏어 먹으면서 자란 것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좋은 추억인데 그땐 얼마나 서렵던지... ㅋㅋㅋㅋ

감자만두...저두 먹고 싶어요. ^^ 따뜻한 글 읽고 저는 이만 자러 갑니다. ^^  
  박예천 2009.11.18 09.36 수정 삭제 신고
늦은 시간까지 글방을 찾아 댓글 남겨주시는 님! 고맙습니다.

자식은 아무리 봐도 선물입니다.
살아 갈 목적도 방향도 녀석이 있기에 분명하니까요.

가끔 생각합니다.
처음엔....녀석 때문에 힘들어 나자신 찾겠다는 일념으로 글을 썼지요.
요즘 돌아보니 어느 것이 정답인지 아리송 하답니다..ㅎㅎㅎ
글을 써 가는 에너지로 녀석과 버티는 것인지,
녀석이 내게 주는 행복함 때문에 글을 쓰게 되는 것인지요...^^
고로, 유뽕이와 글은 떼어 낼 수 없는 관계이지요.

감자만두...정말 맛있어요.
인터넷 판매도 한답니다. (꼭...감자만두 홍보대사 같네요..ㅋㅋ)
만두피가 쫄깃하고 떡국과 먹으면 훌륭한 만두국이지요.
날 추워지니 따뜻한 국물이 그립네요.
님도 건강 잘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