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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1,612

유뽕이 시리즈 30 - 똥 싸세요!


BY 박예천 2010-09-09

      똥 싸세요!

 


 

변비대장 아빠가 안방화장실에 앉으셨습니다.

한참이나 시간이 걸려야 한다는 것을 엄마는 잘 알고 있답니다.


유뽕이는 거실에서 자동차 굴리거나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습니다.

뭔가 생각났는지 신호등 세우고 버스터미널을 만들기도 합니다.

종이로 크게 오려 간판에 ‘버스터미널’이라고 써 붙였습니다.

보조의자 옆에 장난감 버스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네요.

먼 길로 출발하려는지 부릉부릉 시동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한쪽 귀퉁이에는 비행장도 있습니다.

가끔 연료부족인지 유뽕이가 손으로 높게 쳐들어 비행을 시켜줍니다.


갑자기 바지춤을 움켜쥐던 유뽕이가 안방화장실에 갑니다.

저런! 아까부터 아빠가 변기를 독차지하고 앉아계신걸 잊었네요.

다시 밖으로 나와 거실 화장실로 달려갑니다.

볼일을 마친 후 자동차놀이에 몰두하지 않고 안방으로 갑니다.

유뽕이가 생각하기에도 아빠의 볼일(?)이 참 오래 지났다 싶었나봅니다.

열려진 화장실 문 앞으로 가더니 아빠를 빤히 쳐다봅니다.

아빠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지 얼굴이 벌겋게 변한 아빠를 향해 한마디 합니다.

“아빠, 응가해요!”

쑥스러운 아빠는 딱히 할 말이 없었는지 짧게 답하십니다.

“어!”

 



아빠 얼굴 쳐다보던 유뽕이는 멋쩍게 웃더니 벽에 걸린 커다란 거울 앞에 섭니다.

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저녁설거지하다 멈춘 엄마도 몰래 훔쳐봅니다.

거울 앞에서 열과 성을 다하여 춤을 추면서 노래까지 합니다.

직접 가사 바꿔서 진심을 다해 부릅니다.

“아빠, 똥 싸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똥 싸세요, 우리가 있어요.

힘-내-세-요!”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래오래 힘만 주는 아빠가 안쓰러워 아들 된 유뽕이가 응원가를 부른 겁니다.


유뽕이의 응원가 덕분인지 경쾌하게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온 집안에 들립니다.

하여간 유뽕이 녀석 때문에 엄살 피우며 아플 수도 없고 심각하게 변기에 앉아 맘껏 힘을 줄 수도 없답니다.

녀석은 날마다 우리가족 위해 활력소가 됩니다.

 

더디게 크는 유뽕이 덕분에

엄마는 더디게 늙고 슬픔도 더디게 배워갑니다.

유뽕이에게 많이 고마워하고픈 날입니다.


 


 

2009년 6월 8일에

유뽕이의 응원가를 들으며.




0개
헬레네 2009.06.15 19.47 신고
유뽕이는 천재로군요 .
힘내는 응원가를 적용시키는걸 보면 혹시 예천님의 천재성과 끼를 닮은것은 아닐런지 ,,,,,,,,,,  
  박예천 2009.06.16 09.37 수정 삭제 신고
제발 엄마의 예민하고 지랄맞은 성격은 닮지 않았으면 하는데....
점점 유뽕이에게서 저를 발견한답니다.
의미없이 내 놓는 녀석의 말 속에서 가끔 위안을 받기도 하지요.
천사가 맞는 모양입니다.  
라리 2009.06.10 11.00 신고
유뽕이의 건강하고 재미있는 삶을 들여다보면서...
얼마전 내 아이에게 일어난 일이 생각이 나서...눈물이 납니다.
아이...가...무슨 죄가 있나요?...
"아이를 왜 그렇게 빨리 낳았냐"
는 시댁식구들에게
"아이는 후회없습니다!"
당차게...정확하게... 확언했건만...
"누가,니인생 얘기래? 아이인생 말이다!
니 고집에 의해 태어난 저 아이인생말이다..."
뒷통수가 멍했습니다.
... ... ... 아이인생... 아이도 하나의 인격체이거늘...
내가 낳았다고 내 소유물이 아니거늘...
내 분신이지만...아이도 하나의 사람인것을...  
  박예천 2009.06.10 11.41 수정 삭제 신고
라리님!
참으로 오랜만에 뵙는군요.
삶이 많이 버거우시지요? 악다구니 써가며 버텨야 하는 현실이
제발 타인의 것이기를 바라며 살게 되겠구요.
어쩌지요. 당신과 저의 죄라면,
어미가 되었다는 것 밖에 없습니다.
님의 꽁쥬도 태어난 죄 밖에 없답니다.
세상을 살아 가야 할 것도 그 아이의 당당한 몫이구요.
누가....우리 아이들에게 돌을 던지겠습니까.
아파도 울지 마세요. 깨물 어금니 상했다면, 아랫입술 피나게 물자구요.
라리님.....꼭 버텨주세요. 저도 힘낼게요.  
패러글라이딩 2009.06.10 01.40 신고
유뽕이 덕분에 저도 웃어봅니다.
더디게 크지만 그만큼 튼실하게 자랄 유뽕이겠지요 ^ ^
  
  박예천 2009.06.10 09.25 수정 삭제 신고
아들은 시시각각 다양한 이름으로 제 곁에 남습니다.
살아가야 할 분명한 이유이기도 했다가, 살아있기 힘든 절망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기운내고 터벅터벅 걸어야 하는 것은......, 남아 있는 시간이 기다리게 해줍니다. 버티게 해주지요.
댓글 고맙습니다.  
살구꽃 2009.06.09 17.48 신고
ㅎㅎ 유뽕이 덕분에 웃을일이 많을거 같아요..어째 소식이 안올라오나 했지요.
요즘 바쁘셨나봐요. 글이 뜸하길래요. 이렇게 무사히 나오셔서 반갑네요.ㅎ
좋은저녁으로 마무리 되시구요..  
  박예천 2009.06.10 09.22 수정 삭제 신고
여러가지 소소한 일들이 많았더랬습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휘청이기도 했고요.
어쩌면 영영 글을 쓰기 싫어지는 것은 아닐까 두렵던 날들이었지요.
아들 덕분에 겨우 부여잡고 흔적을 남겨봅니다.
관심주신 살구꽃님의 정겨운 맘....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