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팔 총각
엄마는 아빠서재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지요.
그 시간 유뽕이는 침실 앉은뱅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습니다.
저녁 먹은 후 거의 같은 시간에 벌어지는 우리 집 풍경입니다.
인터넷 속을 들여다보느라 엄마의 눈은 모니터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눈여겨 두었던 상품을 비교분석해야하고 여기저기 글도 읽어야 합니다.
갑자기 거실 화장실 쪽에서 물줄기소리가 시원하게 들립니다.
평소에도 물장난을 좋아하는 유뽕인지라 달려가지 않고 말소리만 냅니다.
“유뽕아! 옷 젖는다. 물장난 그만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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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이어지는 샤워기소리만 이따금씩 들립니다.
욕실바닥에 쏘아대든지 거울에 마구 뿌리고 있을 그림만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휴! 녀석이 또 얼마나 난리굿을 쳐놨을까. 신나게 하게 내버려 두자구. 옷은 빨면 되니까’
유뽕이 말썽에 단련된(?)엄마는 뭐든 쉽게 체념하거나 단순해지는 법을 배웠답니다.
몇 분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쏟아지던 물줄기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다 놀았다보다 생각했지요.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뒷정리를 하러 나간 엄마.
화장실엔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뽕이를 찾아 나섰습니다.
앉은뱅이 컴퓨터 앞에 앉은 녀석의 머리모양이 끝내줍니다.
그 옛날 포마드 발라넘긴 머리 이대팔 비율로 가르고 신작로 앞에 나선 마릿골 아저씨가 안방에 떡하니 있지 뭡니까.
유뽕이 혼자서 샤워기 들고 머리를 감았답니다.
샴푸는 풀었는지 못 봤으니 알 수 없고 하여간 머리모양이 작품이었어요.
누나가 쓰던 빨간 고운 빗으로 정확하게 이대팔로 갈라 빗어 넘겼나봅니다.
물기 가시지 않은 머리카락인지라 동백기름이라도 듬뿍 발라놓은 듯 했습니다.
웃음을 참을 수 없어 깔깔대고 말았지요.
밤낚시 간 아빠에게 보여주려고 휴대전화기로 사진도 찍어두었습니다.
스스로 잘 한다는 칭찬을 받고 싶었나봅니다.
“우와! 유뽕이 대단해. 혼자 머리감았어? 이제 진짜 헝아되었네?”
손뼉을 쳐주며 꼭 안아주곤 뽀뽀까지 볼이 뚫어져라 여러 번 해주었답니다.
씩 웃으며 좋아라하는 표정이 엄마에게도 훤히 보입니다.
문제는 다음날인 오늘 또 벌어졌지요.
빙어낚시를 다녀오느라 가족들 몸이 피곤하게 풀어지고 있었습니다.
역시 엄마는 아빠방을 독차지하고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묘한 소리가,
귀에 익은 물줄기가 또 같은 박자로 쏟아집니다.
이번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갔지요.
이런! 유뽕이녀석.
애기 때 쓰던 샴푸 모자 눌러쓰고 웃옷을 벗어던진 채 샤워기로 머리를 향해 쏘아대고 있습니다.
어제의 칭찬이 생각나 연거푸 사랑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벌써 거품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머리를 대충 헹궈냅니다.
엄마가 따라 들어가니 손도 못 대게 합니다.
곁에서 지켜보다 반강제로 씻겨주고 수건으로 탈탈 털어주니 빗 통을 쳐다봅니다.
역시나 누나의 빨간 고운 빗으로 갈라 넘긴 비율 이대 팔(2:8).
연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이쪽저쪽 번갈아 고개 돌리는 폼이 이발소에 온 아저씨 같습니다.
물기 덜 말라 착 달라붙은 머릿결 덕분에 얼굴이 더욱 통통해 보입니다.
이대팔 헤어리더 유뽕이로 인해 오랜만에 배를 움켜쥐고 웃어봤던 저녁이었습니다.
녀석의 머리에선 마릿골 포마드아저씨와 비교도 할 수 없는 꽃향기가 폴폴 풍겨 나옵니다.
오늘밤은 팔베개 해주고 코끝으로 아들냄새나 흠뻑 맡고 잠들렵니다.
아! 정말 졸리는 봄날입니다.
하긴...., 입춘이 어제였네요.
2009년 2월 5일... 이대 팔 유뽕이를 쳐다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