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왕
유뽕이 엄마가 사 오신 돼지는 연두색입니다.
속이 텅 비어있는데도 배는 축구공만큼이나 불룩합니다.
연두돼지는 큰길가 사거리 옆 문방구에서 유뽕이네 집으로 이사를 온 것입니다.
엄마는 거실문갑위에 있던 물건들을 치우고 그 위에 돼지를 올려놓습니다.
“유뽕아! 여기 구멍 있지? 이제부터 돈은 돼지만 먹게 하는 거야 알았지?”
듣는 둥 마는 둥 딴청 하는 유뽕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눈 마주쳐가며 또박또박 일러주십니다.
지난번 가구 틈에 끼워두었던 돈 때문에 집안을 발칵 뒤집은 일이 생각나는 듯, 엄마는 몇 번이나 유뽕이 귀에 대고 같은 말을 속삭이십니다.
“자! 이게 백 원짜리야. 돼지 밥 먹어라 해봐”
말로 당부한 것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으셨는지 직접 시범까지 보이십니다.
유뽕이 손에 동전 몇 개를 쥐어주고 넣어보게 합니다.
돼지몸속에 떨어지는 소리가 재미있었는지 싱긋 웃으며 좋아합니다.
유뽕이가 연두돼지를 높이 들고 흔들어봅니다.
찰찰 동전소리가 거실에 가득 차게 울립니다.
다음날 오후 다섯 시.
현관 밖에서 쿵쾅거리며 계단 오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드디어 유뽕이의 귀가시간이 된 것이지요.
혼자 집을 찾아 올수 있도록 연습한 보람이 있었는지, 요즘은 유치원차에서 내려 집까지 스스로 옵니다.
“딩동!” 초인종소리가 들립니다.
엄마는 태연하게 인터폰 수화기를 집어 듭니다.
“누구세요?”
“누구세요!”
앵무새처럼 엄마말만 따라합니다.
자기 이름을 말할 때까지 열어주지 않자 이젠 발로 문을 쾅쾅 두드립니다.
“너 이름이 뭐야?”
인터폰 속에서 울리는 엄마의 물음에 울먹울먹 대답을 합니다.
“유뽕이입니다!”
문을 열자 엄마는 본체만체하고 발에서 신발을 털어내고는 쏜살같이 안방으로 달립니다.
두리번거리며 무엇인가 찾는가싶더니 엄마의 가방 속을 뒤집니다.
지갑을 꺼내고 동전을 한줌 쏟아 손에 쥐고는 거실에 배고픈 연두돼지에게로 갑니다.
제 돈 인양 돼지 밥을 줍니다.
하루 종일 유치원에서 배고픈 돼지생각만 한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늦은 밤이면 엄마는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나이는 많지만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어서 날마다 글쓰기 연습을 합니다.
컴퓨터자판 두드리는 엄마를 보면 꼭 낯선 사람 같습니다.
밥을 짓거나, 청소 할 때와는 다른 눈빛이 됩니다.
모니터불빛이 뿌옇게 비취는 방안에 잠든 유뽕이만 이따금씩 침대위에서 굴러다니지요.
‘저러다 떨어지고 말지.’
곁눈질로 보던 엄마는 얼른 일어나 모서리에 가있는 유뽕이를 데굴데굴 침대가운데로 굴립니다.
쓰던 글이 거의 완성되어갈 무렵. 갑자기 모니터화면이 깜빡거립니다.
“어라? 이거 왜이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급히 글을 저장합니다.
곧이어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화면이 시커멓게 변해버렸습니다.
당황스런 목소리로 아빠를 부릅니다.
“여보! 이리 좀 와 봐요. 컴퓨터가 이상해.”
“왜 또 그래? 뭘 또 엉뚱한 걸 건드린 거 아니야?”
“글 쓰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이 사라지네.”
“허허 그것참.....,저리 비켜봐.”
아빠는 컴퓨터 곳곳을 눌러보고 마우스를 클릭해보십니다.
쉽게 고쳐질 것 같지 않은지 컴퓨터를 분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연두돼지 뱃속에서 들리던 소리가 컴퓨터 몸속에서도 납니다.
드라이버를 돌려 열어보니, 세상에!
글쎄 동전 한주먹이 들어있는 게 아니겠어요.
범인이 누구일까요?
맞습니다. 바로 우리의 악동 유뽕이 짓입니다.
디스켓 넣는 구멍, 시디 들어가는 곳에까지 저금을 한 것이죠.
연두돼지 한 마리로는 부족했나봅니다.
컴퓨터를 자기만의 비밀금고로 정하고 돈을 모을 작정 이었나봅니다.
그날이후, 컴퓨터의 모든 구멍들에 노란색 접착테이프가 붙여졌습니다.
엄마 아빠는 유뽕이가 혼자만 재산 모으는 일을 절대 허락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족이란 함께 나누며 살아야하는 것이니까요.
오늘도 유뽕이는 동전을 찾아 헤맨답니다.
연두돼지가 꽤 여러 날 굶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