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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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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4)-왜 낳았냐구?


BY 솔바람소리 2009-12-03

“엄마가 저희를 낳았을 땐 어떤 마음이셨는대요?”

아들이 따져 물은 건지도 모른다. ‘낳았으면 책임을 지셔야지요. 책임도 못질 거면 왜 낳았어요. 누가 낳아 달라고 했다고’ 라며. 가정을 돌보지 못하는 가장으로 인해 피폐할 때로 피폐해진 희생자들만 남은 집안, 아이들과 어미는 바람 앞에 촛불이었다. 언제 꺼져버릴지 모를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시간에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은 여전히 감감무소식. 그 상황이 어미는 늘 어이없었다.

“그걸 몰라서 질문이라고 물어?”

“다시 듣고 싶어서 그래요. 대답해 주세요.”

따뜻한 가정에 태어나서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영위했다면 자식들의 성향이 그리 까칠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 더 늦기 전에 바로잡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론 늘 역부족이었다.

“너랑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했던 말들도 넘쳐나. 네 방으로 들어가.”

“엄마 힘든 것 알아요.”

“알아? 그래서 그 모양이야?”

“저도 잘못을 아는데 잘 고쳐지지 않아요.”

어떠한 상황에서건 어미만 입 다물고 있으면 천하가 태평할 거라고 여기는 남편이나 아이들. 벙어리도 입 열지 않고는 못 버틸 상황에서 그건 무리다. 나름은 버티고 버티다 입을 열었고 견디고 견디다 떨었던 지랄병이었다. 그마저도 안하면 남편이란 존재가 더욱 안일해질 것만 같아서. 하지만 늘 피해자의 자리에서 고통 받는 사람은 불안으로 떨고 있던 아이들과 좌절로 일그러진 어미뿐이다. 어쩜 이마저도 나약한 여편네의 피해망상일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좋았다. 희망 없는 세상이 정말 더는 싫으니까. 마음의 정리가 되었는데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멈춰지질 않았다. 바닥으로 흥건하게 떨어진 눈물이 보였다. 어미에게 그 눈물은 세상 살아서 흘리는 마지막 눈물로 여겨졌다.

“고칠 필요 없어. 안 돼는 걸 너나 나나 알았으니 그대로 살면 돼. 이제 그만 들어가서 자.”

“엄마한테 효도할 거예요. 정말이에요. 힘내세요.”

아들을 남편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했다. 남편의 씨를 받았을 뿐 품고, 낳아서 끼고 산 것은 어미였다. 아비를 닮을 까봐 전전긍긍하며 엄한 어미의 자리에서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견뎌왔음을 모르는 이가 없다. 어미는 결코 나태할 수 없었고 나약할 수도 없었다. 목표를 세웠으면 결실을 맺어야 했다. 혼자라도 그러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피를 속일 수 없는지 아들 역시 말이 앞섰고 행동이 뒤따르지 못했다. 순간은 진심이었을 마음의 의지가 나약하기 짝이 없었다. 아들의 멀지 않은 미래가 그래서 더한 걱정으로 남았다.

“힘을 낼 수 있게 도와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었어. 니들 때문에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오래 전부터 사정했었어. 널 왜 낳았냐고? 글쎄, 살아갈수록 그것이 후회될 줄 모르고 낳았겠지. 널 가졌던 내내 낳는 것을 갈등했었어. 네 아빠 빼고 모두가 반대했던 임신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게 온 생명을 죽일 수가 없었다. 아이를 낳다가 잘못 될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도 널 포기하지 않았어. 널 제왕절개로 낳던 날, 대학병원 산부인과가 발칵 뒤집힐 정도로 많은 하혈을 했었어. 피를 흘린 엄마보다 그 모습을 지켜봤던 네 외할머니의 얼굴이 더 백지장 같았지. 결코 둘째를 낳지 말라는 할머니 당부에도 아영이를 낳은 이유에 대해선 네가 어린 날부터 얘기 했었어. 널 버리게 될까봐. 족쇄하나를 더 만든다면 죽어도 너희들 곁에서 마음잡고 있게 될 줄 알았다고. 어쩜 버리게 되더라도 하나보다 둘이기에 의지할 수 있는 힘이 될 거라고 여기고 낳았던 거야. 그런 두 놈이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게 될 줄을 상상인들 했겠어?”

그랬다. 아들을 품은 열 달 동안 심한 입덧으로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작은 뱃속에서 아기가 커갈수록 장기들이 눌려서 배변이 원활하지 않았다. 뼈마디마디가 벌어지는 통증으로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몸이 붓고 늘 숨이 가빴다. 제왕절개를 들어가기 전 중절수술에 대해서 의사가 물었을 때 아내의 건강을 이유로 자신이 하겠다며 애처가인양 반대했었다. 그 약속마저 지켜지지 않았지만. 그로인해 어미는 아들 이후로 두 번의 낙태를 받아야 했다. 아니, 아들 위로 하나까지 모두 셋이다. 각방을 썼던 무늬만 부부인 두 사람이 어쩌다가 성관계를 맺으면 틀림없이 아기가 들어서곤 했다. 합의하에 받았던 낙태 후면 머지않아 술에 취한 남편에게 강탈을 당했고 흔적처럼 아기가 들어서 있었다. 낙태 후면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빠져서 한동안 우울증에 허덕였다. 그런 중에 가졌던 둘째였다. 첫 째를 가졌을 때보다 더한 고통으로 몸부림쳤던 것을 당시 5살이었던 아들이 지금껏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힘겨웠다. 둘째가 두 살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남편의 진심이 나왔던 것이. 한창 아양으로 이쁜 짓을 떨던 딸에게,

“내가 정관수술을 왜 안 받았게. 하나는 더 낳았어야 하는 건데.”

하며 입이 귀에 걸렸던 남편의 표정엔 장모의 고집으로 아내가 받아야 했던 중절수술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다. 생명체의 종족번식이 본능이라서 제 새끼를 만들고자 했다면 책임감과 보호본능 또한 지녀야 함을 그는 알아야 했다.

모두 부질없음을 숙지하고 마음을 정리했으면 그만이지 주책없이 말이 이어졌다. 아직도 무슨 미련이 남았다고, 말하는 자신이 어이없었다.

“엄마... 정말 죄송해요. 이제 안 싸울게요. 믿어 주세요.”

눈물로 훔뻑 젖은 어미의 맞잡은 두 손을 아들이 감싸며 말했다. 그리고 뜯어온 휴지로 눈물과 콧물로 범벅된 어미의 얼굴을 닦아내었다.

“더 이상 말할 필요 없어. 싸우겠다는 각오로 작정하고 싸웠던 것 아니었을 테니... 늘 아영이가 시비를 걸었고 넌 참을 수가 없었을 뿐이었잖아. 보고 배운 것이 부모의 싸움이었기 때문에 그리 됐다면 그대로 살면 돼. 이제 가망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정말... 더는 이런 말하기도 싫다. 이런 악순환에 지쳤어.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제발 이제 그만 들어가서 자.”

“아뇨. 이대로 못자요. 엄만 강하셔요. 견뎌내실 수 있어요.”

“안강해. 못 견뎌.”

“제가 정말 잘할 거에요. 믿어 보세요. 엄마 없으면 저희도 없어요. 쉽진 않겠지만 아영이랑 안 싸우도록 노력할게요. 제가 잘못했어요. 오빠니까 좀 더 참아줬어야 했어요. 지켜보세요. 맹세할게요.”

그 순간 어미의 손을 꼭 잡고 놓지 낳는 아들의 손이 인적 많은 길가의 아이가 엄마를 잃을까봐 잡은 손처럼 간절하게 다가왔다. 오전까지만 해도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든 추슬러보자고 다짐을 했던 일요일이었다. 일주일의 수고를 풀 수 있고 또 다가 올 일주일을 위해 꼭 필요한 휴일인 일요일이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일주일중 제일 피곤한 날이 되고 말았다. 그런 시간을 만들어준 사람이 아이들을 위했다는 어미였다. 그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