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러느냐고? 이 자식아, 뱃속에서부터 17년을 어미 곁에서 지켜봤던 놈이 그걸 질문이라고 물어?! 내가 어찌 멀쩡히 있을 수 있겠어. 울지도 못한다면 산산이 부서지고 말 것 같은 어미가 너는 뵈지도 않는 거냐?!‘ 아들에 대한 섭섭함까지 더해져 부질없는 말들이 목구멍 밖으로 솟구치려 했다.
조금만 기다리라던 남편의 약조는 17년 동안 되풀이될 뿐 지켜지질 않았다. 함께했던 어느 순간에도 휴식처가 되어주지 못한 남편은 가장이라는 울타리조차 가족에게 심어주지 못했다. 그와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던 순간을 거슬러서 이 자리까지 왔다. 제대로 된 생활비를 받은 적 없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먹이고 입혔다. 친정이 없었다면 가당치도 않을 일이다. 자식들은 아비가 오지 않는 시간을 걱정하지 않았다. 으래 술과 함께 하려니, 여겼다. 궁핍함 속에서도 가정을 그런대로 꾸려가고 있으니 남편이나 아이들은 가정사의 미래에 대해서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급식비, 남편이 벌인 사업장에 대한 직장가입 의료보험, 남편이 처리하지 않은 세금에 대한 압류통보 고지서, 예견할 수 없는 앞날을 대비한 가족들의 보험료, 공과금, 작은아이의 학원비며 끊을 수 없다는 월간학습지와 그 외 잡비까지...아이들과 어떤 것도 무관하지 않았기에 그런 지출에 대해 느긋한 마음으로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었다. 수중에 지녔었던 제법 많았던 비자금의 전부가 모래알처럼 흩어져서 채워지지 않았다. 누군가 어미에게 모든 것에서 손을 떼고 지켜보라는 심심한 충고를 전했지만 아이들의 처량한 모습이 눈에 선해서 차마 따를 수가 없었다.
기둥서방에 지나지 않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헤어지려 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면 제 아비를 가엽게 여기며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자식들은 어미가 참아주기를 바랬다. 그런 통일된 마음을 직시한 순간 그마저도 접게 되었다. 어미가 인정할 순 없지만 무능하고 무정한 아비라도 저희들에겐 젓가락 두 짝이나, 실과 바늘처럼 없어서는 안 돼는 한 세트로 여겨졌던 게다. 그 순간 아비를 벗어나지 못해 발버둥치는 어미 곁에서 위로했던 놈들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사기 당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엄마, 울지만 말고 말씀해 보세요.”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하다는 듯 아들이 어미의 대꾸를 재촉했다. 그때 잠이든지 얼마돼지 않은 딸이 짜증스런 움직임을 하면서 일어나 앉았다.
“엄마, 그만 우세요. 왜 자꾸만 우시는 거예요?!”
조금만 울라고 일러주던 딸마저 다그치듯 뱉어낸 말투에 인정머리라곤 없었다. 어쩜 그도 이기적인 슬픔에 빠진 어미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식들이 입을 열수록 살아야할 이유가 타들어가는 종이 장처럼 사라져갔다. 그것이 울분을 더욱 부채질 했다. 어미 된 사람이 어린자식들 앞에서 그보다 더한 어린아이의 모양새로 울음보를 터트렸다. 엎드렸던 자세를 바꿔 앉아 우는 얼굴로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었지만 더 이상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마음에서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엄만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어!”
철부지 어린 것이 선잠에서 깬 짜증일 수도 있는데 그 순간 이성의 반 이상이 자취를 감춘 어미는 반 광녀였다.
제가 긁은 카드 값에 대해선 사명감을 지닌 듯 갚아나가면서도 가계 빚이 많다는 아내의 말엔 여전히 ‘낼 모레 된다.’는 말과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만 적절히 돌려가며 말한 남편에게 기만당하며 애를 태웠던 어미였다. 이틀에 한번 꼴로 술에 만취가 되어 들어오던 시간이 새벽 2시를 넘기던 것이 이제 4시를 넘기고 5시를 넘겨 들어왔던 제 애비의 별별 술주정 앞에서 진저리를 쳐야했던 저희들과 어미였다. 그런데도 ‘왜’를 묻고 있다니. 술이 깨면 순한 양의 탈은 쓰고 염치도 좋게 ‘미안해’를 연발하는 애비로 인해 콧구멍이 두 개라 숨을 쉬고 있을 뿐 질식할 순간들이 또 얼만데 ‘왜'라니. 17년을 하루같이 그리 살아왔던 어미의 울분 앞에서 ’왜‘? 그동안 어미의 아픔을 헤아릴 것이라고 여기며 늘어놓았던 수많은 얘기들은 간데없고 자식들이 어미의 좌절 앞에서 ‘왜’를 묻는다는 자체가 내편이라 여겼던 믿음에 대한 배반이었다.
저희의 애비 때문에라도 충분히 미쳐나갈 어미 앞에서 목숨 걸고 낳아 키운 자식 두 놈이 견원기간이 되어가는 것까지 지켜봐야 하는 제 어미의 절망의 눈물 앞에서 매정하고 뻔뻔스레 ‘왜’냐고 묻고 있다니. 어미의 심정을 백분의 일도 헤아리지 못하는 딸의 긴 머리채를 양손으로 쥐고 뜯어낼 듯이 흔들어댔다. 말리는 아들의 몸도 잡아 뜯었다. 내 마음대로 세상 밖으로 꺼내놓은 자식들에게 ‘너희만 아니었다면’ 하는 원망이 치솟았다.
“엄마, 진정하세요. 네? 아영아 너 오빠 방에 가서 자고 있어.”
어떤 대꾸도 없이 울부짖으며 극도로 흥분한 행동을 보이는 어미의 양팔을 잡은 아들의 팔 힘이 다부지다. 잠깐 동안 잡히고 잡은 모자의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엄마, 제발 왜 그러는 건지 말씀 좀 해 보세요, 네?”
도통 이해할 수 없다며 묻는 아들을 향해서 결국 힘으로 빼낸 손으로 주먹질을 해댔다. 녀석이 그대로 맞고 있었다.
‘통제 불능이 된 원인의 이유가 어디 한 둘이냐?! 말했어야 통하지 않던 소용없는 그것들을 또 쏟아내서 뭐해, 잘못 산 것이 분명한 모든 것이 내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울하단 말이야. 지나온 시간들이 허망하고, 존재감마저 사라져가는 처량한 현재의 내 신세와, 앞으로 무수히 많이 남은 가시밭길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더 많은 이유들이, 어미를 억울하고 두렵게 한단 말이다.’ 39년 동안 보고, 듣고, 겪은 시행착오의 경험으로도 인생의 깨달음이 미흡한 어미가 덩치론 웬만한 어른을 넘게 커버린 16살 아들과 11살 딸이 어미의 아픔을 완전히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나큰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깨달았기에 더는 토해낼 수 없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어미는 억울했다. 꿈쩍 않고 맞고 있는, 어미의 눈물을 납득하지 못한 아들은 더한 억울함을 지니게 되겠지. 문득 감정의 기복에 모터가 달린 듯 급물살을 타고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뻗쳤던 손을 거둬들였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우리가 뭘 하고 살아가는 거지. 내 잘못이 뭐였기에 이 모양새가 됐을까. 정착할 수 없이 방황하는 마음을 붙잡기라도 하듯 난동을 피웠던 두 손을 맞잡았다.
그동안 살아온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이었다. 모든 것이.
더는 굳건한 어미로서의 삶을 버텨나갈 자신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다.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지니래도 갖지 않았을 절망이었을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제 아비에 대한 한으로 괴로워하던 어미만 참아주기를 바라던 자식들도 더는 싫었다. 10년이 가까운 과거에 죽기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던 때의 그 마음의 병이 찾아들었다.
“더는 견뎌 낼 수 없을 것 같다.”
“뭐를요... 왜요...”
겨우 꺼낸 어미의 말이 뭐를 뜻하는 것인지 아들은 이미 눈치 챈 듯 했다. 잘난 부모를 만난 탓에 벌써부터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굳이 부모의 일에 있어서는 입을 빌어 말하지 않아도 눈치 100단을 소유하게 된 아들. 그것이 때론 어미에게 죄의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더는 보듬어줄 자신이 없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