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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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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했던 조조할인.


BY 솔바람소리 2009-07-27

지난주에 아영이와 약속을 했었다.

주일동안 제 할 일을 열심히 하면 주말엔 영화관을

데리고 가겠다고.

 

학창시절에 영화광이었던 내 피를 이어받아 그런지

자식 놈들 또한 영화보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값비싼

영화를 보기위해 매번 찾기가 부담스러워서 종종

DVD를 빌려서 함께 보곤 했다.

 

방송국에서 어쩌다가 한 번씩 문화상품권이 올적마다 필요한

학용품을 사서 쓰게 했던 언젠가 기분이라며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관을 찾게 되었다. 심장을 울리는 웅장한 사운드와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대형스크린, 결혼 전까지 부담 없이 즐기던

그것들이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내 아이들이 넋이 빠져 긴장하거나 웃는 몰입한 모습으로

즐기며 넓은 객석이 만원으로 들어찬 곳에서 팝콘과 음료수를

먹는 것을 지켜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결혼 후 알뜰을 넘어선 궁상 속에서 살아봤지만

늘어나는 것이라고는 한(恨)뿐. 지금부터라도

분수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즐기리라, 그 순간 다짐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후로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관을

찾게되었다. 가격의 부담감을 줄인 조조할인으로.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서 설쳐야 한다는 단점만 감안한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도 있을 듯하다.

 

영화 관람을 운운했던 내 제의가 아직은 천진난만한 아영이에겐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중 3이 되고부터 불만을 종종

토로하는 아빈이가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말을 한 후부터 잘 됐다며 혼자 있을 때면 늑대의 후예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이 울어댄다는 해피녀석과 집어 갈 것 없는 집이나

지키라며 제외시켰다.

 

<해리포터>가 보고 싶다는 아영이를 위해 지난 토요일

오전 8시10분 타임을 정하고 전날인 금요일에 인터넷예매를

시도하게 되었다. 그런데 4천원이던 조조할인표가 5천원으로

변해있었다. 천원이 주는 부담감과 살짝 실랑이를 벌이다가

천하없어도 지켜야하는 자식 간에 약속을 염두하고서 두 장의

표를 예매했다.

예매 전, 4km남짓한 거리를 자전거로 가야했기에 일기예보를

필히 확인했을 때 분명 흐릴 뿐 비가 오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런데,

요즘 살짝 신임을 할 수 있을 것 같던 기상청에서 또 다른 기계를

들여왔는지 새벽부터 예보에 없던 비가 쏟아지는게 아닌가.

잠이 깰 정도로 거센 소리의 비는 장대 같았다. 잠이 달아나고

말았다. 1주일을 기다린 아영이를 위해 소나기이기를 바랬다.

하지만 1시간이 지나도록 그칠 줄 모르는 비를 보고

새벽 4시가 가까운 시간에 컴퓨터를 켜고 예매최소를

해야만 했다.

 

이른 아침에 남편이 나가고 8시쯤 아침밥상 앞에 아이들과

함께 앉아있었다. 아영이가 흐릿하기만 할 뿐 비가 멈춘 밖을

내다보며 뾰로통한 입으로 말했다.

 

“엄마... 저 정도면 가도 됐잖아요...”

“좀 전까지 비가 쏟아졌던 것을 너도 봤잖아.

될 수 있으면 엄마도 가려고 했는데 지하철 타고 가면

많이 걸어야하고 택시타고 가기엔 부담스럽고... 엄마도

너와 약속 지키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만 어쩔 수 없어

포기한 거야. 담에 가자.“

 

불안정한 날씨의 장난질에 놀아난 나는 종일토록 딸의 눈치를

살펴야만 했다. 흐릿했던 하늘에서 어느새 햇살이 눈부시게

비취더니 다시 여우비가 내리기도 했다.

 

“봐봐~ 아영아, 저렇게 비가 오는데 안 가길 잘했지?”

 

가뭄 든 날에 비를 만난 농부처럼 그리 비가 반가울 수가

없던 날을 보내야 했다.

 

그날 일기예보를 다시 확인했을 때 하루 만에 날씨가 달라져

있었다. 구름만 낄 뿐이라던 날씨가 월요일까지 우산이

그려져 있었다. 다음을 기약했지만 언제가 될지 자신할 수

없었다. 그동안 방학과 주말이라고 변변한 곳 한번 제대로 데리고

다니지 못한 자식들에게 나는 자꾸만 죄인같은 심정이 되곤 했다.

 

그리고 맞이한 다음 날인 비가 온다던 일요일 아침이었다. 맑았다.

돈을 언제고 망태기로 가져다 줄 기적을 꿈꾸는지 일요일에도

이른 아침인 6시에 남편이 출타를 했다.

기회를 놓칠세라 컴퓨터를 켜고 영화표 2장을 예매했다.

발등에 불 떨어진 사람처럼 아영이를 깨워서 닦게 했고

팝콘을 대신해서 먹을 집에 있던 과자와 콜라를 대신해서

마실 매실차를 얼음과 함께 타서 보냉통에 담았다.

늦어도 집에서 7시에는 나가야 했기에 밥 몇 술을 어찌

뜨고 나왔는지도 모른다.

집을 나서기 전에 아직 한밤중인 아빈이에게 메모지를 남겼다.

 

<영화 보러 간다. 국 대펴서 밥 챙겨먹고 조용할 때 계획세운 것

하고 있어.>

 

번개 불에 콩 볶듯 하고나선 거리엔 등산복장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거리에 모여 있었다. 그들을 보며 아영이를

뒤에 태우고 자전거의 폐달을 밟고 달리며 생각했다.

 

‘저들도 나처럼 여가를 즐겨보겠다며 피(?) 튀길만큼

치열하게 자신을 들볶았을까?‘

 

“엄마, 날씨 정말 좋지요?.........................................

...................................................................................

..................................................................................."

 

참새처럼 뒤에서 계속해서 조잘거리는 아영이는 제 엄마의 심정도

모른 체 전날의 침울했던 마음과 달리 들떠있었다.

 

"좋니?”

달리며 물었다.

“네~!”

발랄한 아영이의 목소리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네가 좋으면 엄마도 좋아~”

 

불안정한 대기만큼이나 변덕스런 요즘 마음이 다시 불편

모드로 접어들려는 것을 몸을 스치는 바람결에 날려버리고

초속 10m로 달렸다. 살이 좀 빠졌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