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전이었다.
남의 편인지 남편인지한 사람이 출근을 한 것인지
외출을 한 것인지 여러모로 아리아리한 상태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간 뒤였고 휴일이면 더없이
바지런해지는 청개구리 아들이 친구의 컴퓨터를
봐준다며 외출을 한 뒤였다.
집에는
교정치료 받으러 일찌감치 치과를 다녀와서 숙제 삼매경에
빠진 아영이와 안방 침대에 누워 시체놀이중인 내 곁으로
함께 뒹구는 해피만 남아있었다.
“&@#$#@$#$^%$^*()_()$##$&*(!#@$%#%..."
옆집여자의 목소리가 창문을 통해서 흘러들어왔다.
그 일은 며칠에 한번씩 벌어지는 흔하디흔한 일상이었다.
남의 사생활을 염탐하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TV를 얼른 켰다. 아영이가 숙제하는 방의 문을 닫아
놓기도 했다. 좀 하다가 말겠지, 평소처럼.
며칠 참았던 울화통의 한계가 다시 초과수준인가
보구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머리를 풀어헤치고
길바닥을 누빌지도 모를 것 같은 미칠 노릇, 나 또한
간간히 맛보는 바기에 감수해줄 요량, 충분했다.
<목청 큰 것이 죄는 아니지요,
멀쩡하게 생겨서 의뭉스럽고 달린 고추 값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인사를 낭군으로 두고서 차마 벗어나지
못하고 살며 성질 포악한 여자로 낙인찍힌 것이 어디 하루
이틀이던가요? 사정모르는 남들은,
‘저 집 여자, 또 불쌍한 남편을
잡는구나. 쯧쯧... 남자는 여전히 조용히 당하구만 있어, 안됐다.‘
마른 혀를 차며 험담하기 충분할 상황이겠지만,
벌써 우리가 이웃으로 산지가 횟수로 5년으로 접어드는 걸요.
살기위해 바둥 되는 것, 난 이해하니까 끝나고 나걸랑 내게 미안해
말아요, 신경 쓰지 말아요, 후에 내가 그러거든 나도 이해해줘요.>
속으로 그녀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이웃여자의 심정을 헤아리는 마음이 되어 눈에 들어오지 않는
TV를 끄고 세탁할 것들을 챙겨서 동작버튼을 눌렀다.
“니가 해준 게 뭐야?! 지금까지 우리한테 해준 것이 뭐냐고?!...”
여자는 분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었다. 좀 더 커진
목소리가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 11년 동안 살면서 니가
생활비를 제대로 준 적이 있어? 뭐? 얼마 전에 준 돈, 고작?!...“
주변을 인식한 남자의 말이 내 귀에 들리지는 않았지만
여자에게 쏟아져 나오는 말들로 짐작컨대 가만히
잔소리를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 듯 했다.
졸지에 염탐꾼이 된 듯, 찹찹하고 복잡한 마음으로
무시하려 애쓰며 또 다른 일을 찾아내서 집안청소를 시작했다.
“아아~! 그만해요~!... 안돼~!”
“앙앙앙... 엄마...”
“앙앙앙앙앙아...”
세탁기의 소음을 뚫고서
초등 6학년, 6살, 4살 딸들의 공포에 질린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지반이 흔들리는 진동소리가 느껴졌다.
이제 육탄전이다. 좀체 없는 일이었는데 상황의 심각성이
전해졌다.
“그래~! 더해 봐라~!!@#!$%%#%%%...”
억울하고 분한 여자의 발악엔 물러설 기미가 없어보였다.
그런 상황은 한때의 내 모습이기도 했다.
1시간 남짓 그런 상황이 계속되었다.
오전 9시를 넘겨서 시작된 싸움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이웃여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경찰에 신고할까?
성질 같아서는 그 집으로 당장 쳐들어가서 얌전빼고 살아가는
이중적인 이웃남자에게 내 새끼들 훈계할 때 사용하는
몽둥이로 매질을 가해주고픈 심정이었다.
하지만 어떤 것도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음을 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왜 때려~ 개XX야... 말로해도 될 것을... 성당을 다니면서....”
매를 맞은 듯 한 여자의 기는 여간해서 꺾일 것 같지 않았다.
작년부터 절실한 가톨릭신지가 되어 성당에서 살다시피 하던
그녀는 내게 진즉부터 시어머니의 권유로 새벽마다 잠을
이룰 수 없을 때 성경책을 베껴 쓴다고 했었다. 벌써 2번을
완성했고 다시 시작한다는 대단한 열의를 자랑했었다.
다행이라 여겼다.
나이 50이 멀지않은 성질이 보통 아닌 그녀와 나,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비슷한 자존심과 성향을 지녔다는 것을 이웃으로
살아가게 된지 얼마돼지 않아서 알게 되었다.
내가 그녀에게 먼저 다가갔던 날도 그녀의 거성이 한번 휘몰아
쳤던 후였다. 마음이 가라앉고 나면 이웃이 신경 쓰일 그 심정을
헤아리겠기에 집에 들어 온 막걸리와 안주를 들고 찾아갔던 후부터
간간히 술벗이 되어 이런저런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들어주며 보냈던
시간 속에서 그녀의 멍에, 숨겨진 아픔과 열등감을 알 수 있었다.
언젠가 그녀는 내게
첫 남편의 술과 폭력을 감당하지 못해서 딸을 데리고
탈출을 감행한 후, 몇 년 지나지 않아서 그의 객사를
전해 듣게 되었다고 했다. 두 번째로 만난 남편은 두 살 연하에
초혼이라 부담되어 멀리했다지만 장난같은 운명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함께하기 시작한 후부터 사업자금을 조달하느라고
주변의 손을 빌리지 않은 곳이 없다고 했었다. 그것이 지금껏
이어져 온 것이었다.
사 십 넘어 낳은 두 딸과 큰 딸의 성이 다르다는 것을 조심스레
알려주며 꺼낸 말들로 인해서 그녀가 왜 남편이 술 먹고
외박한 날이면 과민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린 두 아이로 인해
꼼짝없이 집안에서만 갇혀 살던 그녀가 작년부터 어린 두 아이를
어린이 집에 보내고부터 성당을 다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듯하여
다행이라 여겼던 차였다.
내가 알콜과 거리감을 두게 된 것이 2년쯤, 그 안에 간간히
피치 못 할 술 자석에서 우린 만나곤 했다. 분위기 맞춰주는 것에
소홀하지 않으려 애쓰는 내게 술잔 기우리는 것에
게을러진 것이 섭섭하단 마음을 비췄지만 양해를 구하곤 했었다.
그러면서 서로 볼 기회가 자연스레 줄어들게 되었다.
여전히 여자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간간히 악다구니를 쳐대곤
했지만 곧 잠잠해졌기에 그냥 흘려버리곤 했다. 곧 신앙으로
다듬어질 마음일거라고 여기며.
그런 속에 토요일의 전쟁,
세상 끝날 듯이 싸워대던 부부가 오후가 되어 기분이 잔뜩
업이 되어 까르르 웃어대는 딸들을 데리고 외출을 하는 듯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가 되어 귀가 하는 듯 했다.
점점 세상을 ‘시트콤’에 비유하게 된다.
남의 집이나 우리 집이나 할 것 없이 비슷하게 살아가는 모습들,
끝인가 보다, 싶으면 시작이고 절망인가하면 희망을
찾아낸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살아가는 우리 내
모습을 들어 내놓고 남들이 탓하지 못하는 것이,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
남의 일만 같지 않아서 일게다. 내가 그러하듯...
이웃여자가 오늘 아침에 편안해진 목소리로 어린 딸들이 어린이집
봉고차에 타는 것을 배웅했다. 방음이 되지 않을 만큼
가까이 붙어사는 그녀에게 따로이 전화를 하지 않았다.
‘ 마음이 괜찮아졌나요? 몸은 어때요?...’
하는 등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갑작스런 배려가 오히려
안 하니만 못할 듯하여.
며칠 새 결코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을 그녀일 것이다.
모든 것이 내 탓이오, 안쓰러운 새끼들, 함께 산 세월에
들고만 측은지심 남편을 이유로 살아야 할 이유거리를
찾았을 그녀 일게다.
어쩜 그 마음은 그녀를 비춰 본 나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살면 살수록 남을 흉볼 것이 없고
내 삶을 너무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을 것도 같다.
이 나이에 이 깨우침들, 조만간에 구름을 타고 다니는
도인이 되는 것이 아닐는지...
이 깨침을 깊이 새기고 실천만하면 될 것을,
이맘이 내 마음이거늘, 내 몸에 지닌 하나이거늘,
어찌하여 그것을 내 맘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