쐐애앵~ 찬바람만 종횡무진 나다니는 바깥 날씨였다.
도둑괭이 꼬랑지 하나 보이지 않는 길목에서 놈과 나, 총은 없었지만 서부영화의
한 장면처럼 마주한 상태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넌 뱀도 물고 다닐 것 같어, 같어, 같어...’
내게 향한 녀석의 모독적인 발언이 귓가로 메아리쳐댔다.
녀석 또한 두 동강 난 가래떡을 양 손으로 나눠진 채로 역시나 불끈 쥐고 서 있었다.
그깟 돌덩이처럼 딱딱한 가래떡에 목숨 건 녀석처럼.
“개소리 집어치고 덤벼 새꺄, 넌 첨부터 맘에 들지 않았어.”
녀석을 향해 악다구니 치는 입안으로 입막음이라도 할 듯이 찬바람이 한 움큼
몰려 들어왔다. 녀석이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오기가 발동해서라도
그냥 물러설 수 없던 심정이었다.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는데 맘에 안 들어?”
녀석 역시 뒤지지 않을 만큼 목청을 높였다. 그리곤 갑자기 불에 대인 듯 놀란 표정이
되어 요새처럼 건물을 둘러쌓고 있는 담장 안으로 몸을 돌려 내달렸다. 내가 뭐라고
대꾸할 새도 없었다.
녀석과는 매번 싸움이 원만하게(?) 이뤄지질 않았다. 밍밍한 결말에 찝찝함을 씻어버릴
수 없는 심정이 되기 일쑤였다. 동생들 찾아 나선 길목에서 우연찮게 만난 녀석과
시비를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가래떡 하나로 불거질뻔한 충돌, 그리고 역시나 나 혼자
생쑈 한 것처럼 되어 버린 상황에서 우두커니 홀로 남겨져 이것이 바로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거야 뭐야? 살짝 빈정 상한 상태로 집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려서
발짝을 뗬을 때였다.
“야! 가지 마봐...”
바람결에 또박또박 내 귀로 타고 들어온 녀석의 목소리에 환장하겠는 표정으로
뒤돌아보니 어느 틈엔가 녀석이 다시 담장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저게 진짜, 너 자꾸만 왜 그래? 빨랑 가야하는데!!!”
“조금만 우리 집에서 같이 있자. 심심해서 그래...”
“내가 심심풀이 땅콩이냐? 우리 할머니가 그러는데 심심하면
소금 먹으랬어. 니네 집에 있는 소금이나 왕창 먹어라, 새꺄.“
-난, 그 말을 끝으로 갔어야만했다. 그랬다면 지금껏 맛난 가래떡을 앞에 두고서
보랏빛 작은 추억 한 자락에 휘말려 궁금해지는 누군가가 없었을 테니...
부쩍 찬 내음이 온천지를 뒤덮는 겨울을 벗어나지 못한 계절이면 그랬다.
유난히 창문이 바람에 흔들릴 때도 그랬다. 게다가 내 곁에 희고 말랑말랑한
가래떡이 곁에 있을 때면 증상이 심해져 살짝 몽롱한 상태에서 넋을 빼고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세월의 때가 묻지 않은 키가 껑충한 녀석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어디서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곤 했다.-
나는 녀석의 고작 말 한 마디에 1시간 가까이를 놈과 붙어있고 말았다.
간첩이나 나병환자가 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음침하고 습한 분위기로 데코레이션한 오싹한 건물 안을 탐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강한 호기심이 발동했기에. 하지만 호기심 충족과 상관
없는 <엄마 없는 하늘 아래>와 같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게 될 줄
이야...
녀석의 집은 불이 안 들어오는지 작은 창문 하나로 빛을 의지한채 어스름했다.
어렴풋이 보인 작은 단칸방 안에는 장롱과 같은 가구도 없이 조촐함 자체였다.
당연히 TV도 없었다. 작은 방 한가운데 두툼한 이불을 누군가가 뒤집어쓰고
누워있었다. 그 사람은 숨이 넘어갈 듯 요란한 기침을 해댔다. 기침하다가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처음해본 생각이 걱정으로 바뀌었고 겁이 나고 말았던 심정으로
알루미늄으로 된 현관문 안으로 연탄아궁이가 있는 2평 남짓한 부엌이라 불릴 공간에
서서 단칸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녀석이 기침하는 사람에게 ‘아빠’라고 불렀다. 그리고 ‘괜찮아?’ ‘물줄까?’ 살갑게
묻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내 귀로 녀석의 묻는 말은 들렸지만 녀석의 아빠라는
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요란한 기침소리 외에는...
소문난 깡다구, 겁이 없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던 나였지만 쾌쾌한 냄새와 내장이라도
토해 낼 듯 심각하게 해대는 환자의 기침소리로 비위가 상하는 것은 물론이요, 왈칵
겁까지 났기에 딱,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 되고 말았다. 그런 내 마음을 녀석이 눈치라도
챘을까, 제 아빠에게 나를 소개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곧 ‘조금만 기다려.’라는 양해의
말까지 듣게 되었다. 졸지에 순한 친구가 되어 버린 나의 입에서 나온 말이 있었다.
“으응...”
10여분이 흐른 뒤에 녀석이 방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곤 낡은 찬장으로 다가가서는
둥근 스텐레스 찬합을 꺼내더니 뚜껑을 열어보였다. 그곳에 녀석이 소중하게 들고 있던
것과 같은 돌처럼 굳은 가래떡이 뱀인냥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녀석이 그중 하나를 떼어내더니 반 토막을 냈다. 그리곤 김을 피워내는 양은솥을
뭔가를 덧대지도 않고 익숙한 행동으로 들어내고 알맞게 타고 있는 연탄 위에 가래떡을
올려놓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어 밖에서 쥐고 있던 토막 난 가래떡을 주머니 속에서
꺼내더니 함께 연탄불 위에 올려놓는 것도 지켜보았다.
나는 할 말을 잊고 녀석이 앉으라고 가리킨 아궁이와 연결된 구들장 같은 곳에서
가만히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1년이 다되어서야 녀석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그동안
놈의 행동이 이해하고 말았다.
점심때마다 아버지를 챙기기 위해 부리나케 집으로 향했던 녀석은 입을 옷이 없었던
거였다. 수돗물에서 나오는 찬물에 걸레를 빨아대는 뻘껀 손놀림이 우리 엄마와
외할머니의 손처럼 능수능란했다. 제 옷도 매번 그 손으로 빨았을 테지...
녀석의 실체를 알게 되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뻘쭘하기도 했다.
“야, 너 왜 갑자기 조용해졌냐?”
군데군데 검게 탄 가래떡을 녀석이 내게 내밀며 말했다. 식욕을 진즉에 잃어버린
나였지만 그것을 마다할 수 없었다. 녀석이 씩씩한 어투로 내게 말하는 것이 나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녀석은 내가 바닥으로 팽개쳤던 것과 제가 들고 있던 떡이 구워지자
양손으로 나눠 쥐고 내 곁으로 앉아서 탄 부분을 떼어내지도 않고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내가 오늘 인심 쓴 거다. 이렇게 구워먹으면 더 맛있어서 많이 먹게 되는데...
하지만 오늘은 손님으로 널 불렀으니 큰마음 먹고 만들어 준거니까 이건 버리지
말고 먹어봐.“
“너... 밥도 네가 해?”
빤스 하나 제대로 벗어놓지 못한다고 할머니께 구박받는 나는 당연히 양말조차
내 손으로 빨아 본 적이 없었다. 녀석의 행동에 그동안 어찌 살았을지 떠오른
추측들, 내상황과 비교하게 되었고 여러 가지로 부끄러움이 밀려들고 말았다. 녀석을
향해 품었던 오해와 내가 그 동안 어리광 한번 제대로 피우지 못하고 살았다며
품었던 불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녀석과 외할머니와 엄마에게 사과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문뜩 들기도 했다.
“물론이지. 1학년 때도 밥했는데? 우리 아빠 오래 못 사실 것 같아서 늘 무서웠어.
그런데 오늘은 다른 때보다 더 그러더라. 더 많이 안 좋아 지셨어...”
“넌, 아빠 말고 아무도 없어?”
“친척들은 있는데 아무도 우리한테 신경 안 써.”
외롭고 슬픈 얘기를 하는 녀석은 여전히 메마른 눈을 하고서 떡을 씹고 있었지만
나는 식어가는 떡을 들고 입에 넣지 못했고 눈가가 젖어가는 것과 콧 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녀석은... 여러모로 대단한 놈이었다. 나보다 더한 독종이었다.
마지막 자존심을 끌어안고 맘속으로 녀석에게 사과했고 무릎을 꿇었던 나였다.
“난 내가 살아가는 것을 굳이 숨기고 싶지 않지만 자랑하고 싶지도 않아.
왠지 이곳을 곧 떠나게 될 것 같은데 그동안 너희랑 잘 지내려고. 네 동생이랑은
축구도 차고 몇 번 놀았는데 얘기 못 들었냐?“
“응...”
“너, 학교에서처럼 집에서도 동생들한테 빗자루로 때린다면서?”
“!... 그게 뭐 어째서?”
“그냥 웃겨서. ㅎㅎㅎ”
그날 뒤늦게 들어 간 집안에서 평소와 다른 풍경이 벌어지고 말았다.
늘 동생들을 찾아 나섰던 내가 귀가했을 때는 동생 3놈이 푸짐하게 식사를
끝마치고 따뜻한 아랫목에 너부러져 누워있었고 나를 기다리는 것은 빤스 속에
넣는 노란 고무줄만큼이나 크게 퍼져 커다란 대접을 비집고 나올 상태가 된 밥상
위에 칼국수와 할머니의 가자미눈이었다.
“이제 허다허다 네 년까지 밥상머리서 속 썩여?! 니미널, 서방복 없는 년은
자식복도 없다는데 손주 복은 있을라고, 예부터 외손주를 위하느니 방아괭이를
위하랬다고.........“
할머니께 옴팡지게 먹은 욕으로 배가 터질 지경이었다.
녀석의 짐작대로 봄방학을 맞기 전에 아버지를 여의게 되었다. 그리고 머잖아
녀석도 전학을 가게 되었다. 녀석이 고아원으로 갔는지 친척 집으로 가게 됐는지
나는 모른다. 당시에 녀석도 모른다고 했었다. 녀석의 사정을 알게 된 후 나는 할머니께
사실을 알려드렸고 간간히 먹을 것을 챙겨다 줄 수 있었지만 매번 반가워하기보다 비참한
얼굴이 되어 쭈뼛되는 놈을 대하곤 했다. 떠나기 전까지 녀석은 변함없이 까불거렸고
계집애들을 울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평소처럼 정의의 사도가 되어 나서서 녀석을
응징할 수 없었다. 떠나기 전날 저녁에 녀석이 내게 ‘고맙다’는 말을 했었지만 뭐가
고맙냐고 묻지 않았다.
지금껏 녀석이 내게 고마워했던 이유가 친구들에게 입을 닫고 있어줘서인지 아니면
먹을 것을 챙겨줬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녀석을 좋아하기보다 존경(?)했던 마음으로
떠나기 전까지 대했던 것 같다.
오랜 세월이 흐른 현재, 희한할 정도로 근간의 일을 까맣게 잊는 정신머리가 그 옛날
일들을 어제 일처럼 뚜렷하게 기억해대는 내 기억 창고가 불가사의하다.
썰렁한 날씨에 갑작스레 입이 궁금해졌고 떠오른 것이 말랑말랑한 가래떡이었다.
아영이에게 시켜 사온 천원짜리 가래떡 한 줄을 씹으며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쓰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