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간에 쥐새끼 드나들듯 부엌을 오가며 둘째 시숙이 계속해서
술잔을 기우렸다. 어머님께선 걱정 섞인 작은 목소리로 궁시렁
거렸다. 거실에서 험악한 분위기가 벌어지고 있을 때 안방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까지 타고 넘쳤다. 어른들이 계신 집안에서 과하게
여겨질 정도로 어수선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넷째형님 후보 아들에 대해서 언젠가 가끔 그녀와 통화한다는 셋째
형님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학교를 빼먹고 가출까지 일삼는 문제아라는
얘기를.
녀석이 들어섰을 때 깡마르고 훤칠한 몸에 꽉 끼는 갈색 가죽점퍼가
인상적이었다. 타이트한 청바지도 눈에 띄었다.
전에 봤을 때보다 성숙한 녀석 또한 제 엄마만큼이나 거침 없어보였다.
부산스런 그 녀석이 언젠가 식구들이 보는 곳에서 내게 혼났던 적이
있었다. 내가 있는 동안에 녀석이 경우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길
바랬다.
그런 어수선하고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저녁상 차릴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쌀을 씻어 앉히고 명태 국을 끓이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들리는
험악한 둘째 시숙님의 목소리에 의식적으로 뒤돌아보게 되었다.
어머님 곁으로 바짝 다가가서 트집을 잡던 시숙이 침 튀기며 한다는 말이
“씨팔! 내가 조심하라고 몇 번을 말했어! 콱 때려 부술랑께... 좃도 내가
한두 번 말했소? 내 말이 말같지 않나... ”
차마 자식으로써 낳아주신 어머니께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서슴없이
뱉어내고 있었다. 아들의 폭언에 잔뜩 움츠러든 어머님이 위축된
목소리로 “내가 안 그랬다.”라고 하셨다.
끓어오르는 속을 겨우 눌러 참아야 했다.
밖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넷째 시숙을 기다릴 수 없어서
어머님과 아이들의 밥상을 먼저 차려주었다. 먹어도 먹어도 술만 고픈지
둘째 시숙님은 연거푸 술을 마시고 또 마셔댔다.
친정식구들을 비롯한 나조차도 한 술 하는 사람들이지만 시숙의 경지를
따를 자는 없었다.
저녁상을 치우고 나서 분위기 파악 못하고 떠들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코코아를 타들고 들어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불손함이 묻어버린 졸지에
조카로 맞아들인 넷째시숙의 이부아들이 한껏 들떠서 떠들더니 갑작스레
들어선 나를 보고 시치미를 떼고 앉아있었다.
긴 말을 하지 않았다. 코코아를 건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른들이 계신 집안에서 어린 것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린다는 것은
잘못된 거야. 분위기 좋게 노는 것은 좋다만 소리를 좀 낮추고들 있어.“
이구동성으로 ‘네’하는 대답을 듣고 나서 방밖을 나왔을 때
거실 한쪽에 앉아있는 둘째 시숙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님은 그 옆에서
꾸부정하게 누워서 눈을 감고 계셨다.
기름기 빠져서 바스락거리는 마른 낙엽소리를 낼 것 같은 야매로
했을 법한 짧은 파마머리엔 군데군데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가죽만
남은 검버섯 핀 피부들 사이로 깊게 패인 주름들이 골짜기를 이루고 있었다.
17년 전 내가 처음 뵈었을 때부터 어머님의 등은 잔뜩
굽어있었다. 꼿꼿했던 몸이 얼마만큼 몸을 굽혀 밭과 들로 일을 다녔으면
할미꽃마냥 잔뜩 휠 수가 있는 것일까... 감히 짐작할 수 없는 가엽은 분은
굽은 허리와 같이 가슴뼈도 심한 새가슴으로 변형되어버렸다.
1년 전 쯤, 어머님이 무릎수술하고 광주병원에 누워계실 당시 이틀 동안
병간호 해드린 적이 있었다. 씻고 싶다는 몸을 물수건으로 닦아드리며
진즉 봤었던 가엾은 알몸이 누워계신 어머니 모습과 교차되어보였다.
박복한분... 내 주변에는 왜 불쌍한 삶을 살아가는 여인들만 있는 것일까,
원망스러웠다.
내 집이 아닌 지하철역에서 구겨져 자는 노숙자 모습으로 누워있는 어머님
곁으로 다가가서 이불을 덮어드렸다. 그리고 곁에 계신 둘째 시숙님께
작심했던 말을 건넸다.
“제가 있을 때 드시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씀 하세요. 실력은 없지만 정성을
양념삼아 만들어 드릴게요, 시숙님.“
활짝 웃으며 건네는 내 말에 시숙도 따라 웃었다.
“됐어요... 많이 먹었습니다.”
운을 띄운 말에 요점을 실어야 했다. 나는...
“저는 시숙님이 정이 많으신 분이라고 믿어요. 누구보다 어머님을
생각하실 거란 것도 알구요...“
“하긴, 내가 성질은 지랄 맞아도 정은 많은 놈이오.”
“시숙님, 제 아이들이 나날이 커가는 걸 보지만 엄마 눈에 자식은
어린 자식일뿐이더군요. 제 아무리 머리 컸다고 떠들어도 부모는 보모,
자식은 자식이에요. 저는 아빈이가 장가가서 잘못된 행동을 한다면
용납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있어요.“
내 말에 한동안 말없이 응시하던 시숙이 입을 열었다.
“자식도 하나에 인격체요. 요즘 세상엔 길에서 젊은 것들이 내놓고 담배를
피고 있어요.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물으면 뭐라는지 압니까? 저 성인입니다,
합디다. 그런 세상이란 말이오. 자식이라고 해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인정해야지요. 우격다짐으로 찍어 누른다면
튕겨 나가요.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에요.
예를 저버릴 수는 없지요. 바깥세상이 변했다고 우리 가정까지 변해야
된다고 생각지 않아요. 제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할 수도 없지요. 하지만
제 자식 일에 있어서는 바로잡아 보려구요. 아이를 바로 잡기위해서는
어른이 모범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름은 저도 노력을
하고 있구요.“
“제수씨가 아직 몰라서 그럽니다. 묵을 손으로 꽉 잡아 봐요, 손가락
사이로 모두 흘러 나가지. 받아드릴 것은 받아드리고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뭐가 생겨도 생기는 것이고 있어도 있는 겁니다.“
나름 살아오며 느낀 개똥철학을 내게 늘어놓고 계신 시숙의 말도 고스란히
들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입을 여는 시숙의 말이 천상유수여도 내가 느끼기엔
어패가 있었다.
“제가 아직 시숙님만큼 살아보지 않아서 하룻강아지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세상에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에요.
길거리에서 담배를 태우는 젊은이들이 성인이라는 말을 운운했을 때
수긍했던 마음이시라면 시숙님께서는 세상 살아가시며 누구와도
부딪힐 일이 없으실 거란 생각이에요. 그렇다면 아까 어머님께 하셨던
말씀도 하지 마셨어야 해요.“
“내가 어메한테 무슨 말을 했다?(했어요?에 사투리)”
“기억 안 나세요? 화내면서 하신 말씀? ”
“... 어메한테 한 말 않이오... 혼잣말이지...”
“그렇다면 제가 오해한거였네요. 그렇지요, 아무렴 시숙님께서
어머님께 함부로 말씀하셨을가라구요...죄송해요, 오해해서...
시숙님께 크게 실망할뻔 했어요.“
1시간가량 주고받은 얘기들이 그렇게 마무리 지어졌었다.
변명에 지나지 않는 시숙님의 말이었지만 어쨌든 앞으로 말에 있어서
신중해주겠지, 마음을 놓고 싶었다.
4째 형님 후보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애교가 넘쳤고 시숙이 들어서
좋아할 얘기들을 주절거렸다. 그리곤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한쪽으로 슬며시
빠져나갔다. 눈치가 100단이었다. 때론 나도 그런 눈치가 부럽다.
늦은 시간이 돼서 잠이 들도록 나갔던 넷째 시숙과 남편이 들어오지 않았고
형님후보는 연결되지 않는 전화버튼을 수없이 눌러대고 있었다.
다음 날 알람을 맞춰놓았던 아침 7시가 돼서 일어나보니 좁은 침대에
우리식구 4명이 자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쩐지 비좁았었다.
특혜라면 특혜랄까, 유일하게 둘째시숙 방에만 침대가 있었고 내가 올 때마다
시숙님은 내게 방을 감사하게도 양보해주셨다.
살며시 나간 주방에서 조심스레 아침상을 준비하는데 어머님이 다가오셨다.
“뭐 이렇게 빨리 일어났냐.”
새벽잠 없으신 노인 분들 특성을 알았고 이른 식사를 하시는 시골 분들
습성을 익히 알았기에 피곤해도 누워있을 수 없던 아침이었다.
그런 며느리가 고마워서 어머님이 빈말을 건네신 말씀으로 여겨졌다.
내가 시골에 내려와서 볼 때마다 형님들은 늦잠을 잤었다. 그런 아침
바스락거리는 것은 늘 어머님이셨다. 남도지방과 경기지방의 입맛이
다른 통에 전에는 일찍 일어나서 어머님이 하시는 일을 도울 뿐이었지만
앞으로는 내 손으로 모두 할 마음이었었기에 곁으로 오신 어머님께
좀 더 주무시라고 권해드렸다.
준비해간 꽁치 통조림으로 신 김치를 지지고 냉동실에 얼려놓은 병어와
굴비를 굽기 위해 손질했다. 해장을 위한 북어 콩나물국도 끓였다.
이것저것 꼼지락 거리다보니 훌쩍 8시가 넘어갔다. 그때서야 형님후보가
나와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모두를 깨워서 밥을 먹은 시간이 9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상 차리는 것을 돕겠다며 아빈이와 아영이가 다가왔을 때
접시에 담은 반찬들을 건넸고 대식구의 수저를 쥐어줬다.
몸에 벤 아이들의 행동이 생소한 어른들이 대견하다며 한마디씩 했다.
내게 당연한 것이 그들에게 감동으로 느껴졌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뿐이었다.
4째 형수 후보가 안방에서 손톱과 발톱에 매니큐어를 칠하고 있을 때
나는 집안을 치웠다. 뿌옇다 못해서 검게 내려앉은 창틀에 먼지까지 모두
닦아 내고 오랜 시간 젊은 여자 손이 닫지 않아 곰팡이로 뒤덮인 욕실을
청소하는 것만 한 시간이 족히 걸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당을 쓸었다. 그런 내게 4째 형수 후보가
부지런하다는 입을 놀렸다.
무슨 일을 조금하고 곧 죽을 듯한 목소리로 생색을 내는 큰 형님이
싫었고 늘 신경성으로 죽을 것 같다고 앓아대는 3째 형님도 못마땅했었다.
그들과는 다르고 싶었다.
내가 일을 한다고 어떤 인간이 알아주길 바라지 않았다.
그저 잠깐 동안이라도 어머님이 하셔야 하는 일을 덜어드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매니큐어 예쁘게 칠하고 거실을 거니는 형님후보에게
이렇게 말했다.
“밥 먹고 할 일 없는데 운동한다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어요.
할 만한데, 함께 해보실래요 형님?“
내 말에 그녀가 대답하길 허리가 아파서 움직이기 힘들단다.
척추 대수술만 3번 받은 내게, 그걸 말이라고 했다.
등이 굽은 어머님을 두고도 죽는 소리를 해댔다.
그녀를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달인으로 인정할 수 밖에...
꾸부정한 자세로 발톱 손질을 한참동안 해던데 그것은 괜찮냐고
따져 묻고 싶은 말을 침을 삼킬 때 함께 넘겨버렸다.
일주일에 한번 변비차를 먹고 나서야 힘겹게 볼 일을 보는 내가
시댁에 내려갔을 때 화장실을 못 간지 6일째였다.
약을 먹고 종일토록 들락거려야 하는 상태라 식구 많은 그곳에서
약을 먹을 수도 없었다. 그런 이유로 뱃속이 불편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겨우 하루 한끼 먹고 버티고 있는 내게 그녀가 또 식구들 많은 곳에서
걱정하는 듯이 말을 건냈다.
“동서는 밥도 종일 먹지 않더만...”
그 말에도 웃으며 말했다.
“제가 요즘 다이나마이트보다 무섭다는 다이어트 중이에요.
하지만 음식 만들면서 이것저것 집어 먹은 것이 많아서 허사가
될지도 몰라요...“
준비해간 떡볶이를 잔뜩 만들어서 어머님이 놀러 가신 회관에
가져다드리라며 아빈이 손에 들려 보냈다.
저녁에 출발하자던 남편에게 다음 날 아침상까지 차려드리고 가자고
고집을 부렸다. 고작해야 이틀이었다. 내가 어머님께 해드릴 수 있는
고생이... 공든 탑을 쌓아 놓은 나름의 생각으로 마무리도 좋게
짓고 싶었다. 그렇게 되길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