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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997

사투리


BY 통통돼지 2008-11-26

남편 따라 경북에 살던 시절,

이사 해서 얼마간은 이웃간에 왕래도 없고 친구도 없으니

아이는 거의 나와 둘이만 지냈다.

그러다 하나 둘 친구를 사귀고 

내집 네집 경계도 없이 아파트 현관도 열어놓고

고만고만한 나이의 아이들 무리가 놀이터고 집이고 몰려다녔다.

그러다가 놀리기만 할게 아니라 공부를 시켜보자 제안이 나왔고

단지 표준말을 쓴다는 이유로 한글을 가르치게 되었다.

우리 아이가 갖고 있던 낱말카드를 이용하기로 하고

아래 윗집 아이들 두 세명을 맡았다.

깍두기 공책(정사각형 줄이 쳐진 공책)과 연필은 각자 준비하고

첫수업을 하던 날 우리 아이는 옆에서 낱말카드를 들고 있었다.

뽀얀 살갖의 감촉이 느껴질듯한 '엉덩이'가 그려진 카드.

" 자!! 이게 뭘까요? 하나, 둘, 셋. 세글자네."

너무나 뻔한 대답을 기대하고 있던 내게 아이들이 입맞춰 한 말은

"궁디이"

뭐라구?  정말 생각지 못한 답이었다. 그래 진정하고..

"이야! 잘 맞췄는데 바른 말은 엉덩이야.

그럼 이건 뭘까?"

하고 보여준 것은 '등'이 그려진 카드.

아이들은 이번엔 정답이라는 표정으로 자신있게

"등거리"

아뿔싸!! ㅎㅎㅎ

 

하루는 아이 친구들이 놀러왔는데 간식으로 팝콘을 만들어 주었다.

커다란 그릇에 한가들 담긴 팝콘을 둘러 앉아 먹다가

그만 방바닥에 쏟아 버렸다.

"이모가 빗자루 가져올테니까  담어" 하고

베란다에 나갔다 오니 아이들이 그릇에 담을 생각은 않고

바닥의 팝콘을 주워먹느라 정신없었다.

"얘들아. 너희 뭐해. 그릇에 담으라니까?"

"이모가 다 묵으라 케잖아요?"

방바닥에 코박고 팝콘을 먹는 아이들 옆에 난 배를 잡고 뒤집어졌다.

 

부추가 한창일 때였을거다.

저녁을 하려고 장을 봐서 한참 정리중인데 전화벨이 울린다.

"언니야, 집에 전구지 있나? 우리 아한테 보낼게"

"어?  어엉... 근데 그거 어떻게 해먹어?"

"전구지 먹을줄 모르나? 부쳐먹음 된다"

아이가 손에 가득 들고 온것은 다름 아닌 부추였다.

에고!!  안그래도 부추전 하려고 부추에 조개살에 사 가지고 왔는데.

그날 저녁내내 부추전을 한없이 부쳐서 이웃에 돌렸다.

전구지를 만난 기념으루다가.

 

이웃들도 놀이방 선생님도 친구들도 모두 사투리로 말하고

엄마보다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가니까

자연스레 아들도 사투리를 배우게 되었다.

서울 시댁에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께선

지방에 내려가더니 사투리 배웠다고 야단을 치셨고

(시부모님이 전라도 분이시라 경상도 사투리를 못마땅해 하셨다)

아이는 몇번 혼이 난 후로 할아버지 앞에선 말을 잘 하지 않았다.

다시 서울로 이사 오면서 가장 걱정했던건

아이가 사투리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받지 않을까 하는 거였다.

하지만 아이들의 적응력은 대단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듯 사투리는 사라졌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들은 시치미를 뚝 떼며 눈을 흘긴다.

"제가 언제요? 기억 안나요."

오늘 따뜻해진 날씨 탓인지 유난히 사무실 앞에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가 끊임없다.

 

 

 

ps - 참새같은 아이들 소리에 웃음짓다가

        예전에 아컴에 올렸다가 방송탔던 내용을

        다시 한번 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