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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주변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있는 이 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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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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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장녀


BY 세번다 2025-02-20

몇해전 드라마에서 K장녀 컴플렉스 이야기하던 여주인공이 생각나네요
그 주인공 엄마의 재혼으로 본인은 엄마가 첫 결혼시 얻은 딸이고 그리고 동생 둘은 의붓아버지 사이에 낳은 아이들이여서 아버지다른 남매간이었죠
그러다보니 엄마를 위해서였을지 무조건 동생들에게 양보하고 살면서 스트레스 받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내가 재혼가정의 의붓 딸은 아니지만 울 엄마의 맏딸로
엄마의 힘듬을 너무나 잘알아서인지 엄마 만큼은 내가 위해주고 살아야지 했었습니다
사실 시간이 남아돌고 힘이 남아돌아서 한것은 아닙니다
시가의 맏며느리로 살아서 모든 것 다 내가 하여도 친정에서도 소신껏 중심적인 역활을 하고 살았지요
친정엄마 생일상 미역국 끟인 생일상 제가 해준 것이 거의 다이죠
항상 엄마는 아버지 생일이 곧 돌아오니 오지 말라고 하였지만 부득 부득 전 찾아가서 엄마 생일을 챙겨주었습니다
같이 사는 여동생은 미역국도 안끓이고 했을때 그리 했었습니다

이제 그런 나도 육십이 넘었고 퇴직을 하면서 소득이 줄었고 무엇보다도 딸애의 암투병으로
인한 간병으로 피폐해질 무렵 엄마의 허리 압박 골절과 연이은 담낭 시술로 두달 반의 엄마 병원생활 간병은 힘들었습니다
딸아이 점심 챙겨가면서 집과 병원을 정말 얼마나 잽싸게 왔다갔다 했는지 그 와중 어느때는 아버지 밥상도 차려주고 가야 할 때가 있었고 그나마 먹는 시차를 이용해서 그리 할 수 있었죠
워낙이 제가 행동이 빠르고 머리 속에 일할 동선을 생각하고 잽사게 행동하는 편이여서
간단 음식 해서 해줄 수가 있었습니다
오히려 아버지도 제가 챙겨줌 새반찬에 새국을 먹억서 더 좋아했었습니다
ㅇ여동생은 밥 한번 하는것도 힘들어하는 체질이지만 그걸 나무랄 수도 없었죠
워낙이 느리고 일머리도 없고 귀찮음이 먼저인 아이라 그나마 그래도 많이 노력한것이 그나마  아버지 세끼 챙겨주기 였을거에요
가끔 엄마 심부름 하느라 병원 좀 오면 힘들다고 투덜 투덜 그래서 아프다고해서 이주를 오지도 않기도 하였죠
아픔 오래가는 체질 알기에 웬만하면 오지않게 배려하느라 제가 좀더 신경쓰고 지냈죠

두달 반의 엄마의 병간호를 하면서 엄마의 옛날 이야기 들으면서 엄마의 변별력이 떨어져서일지 그저 옛기억과 혹시나 요양원 갈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예전 이모가 구십넘어서 큰아들이 못모신다고 하자 나머지 자식들은 오로지 큰아들과 큰오빠만 찾으면서 다 나 몰라라 해서
결국은 요양원에서 돌아가신 이모 이야기만 하셨고 아들이 다섯이여도 요양원에서 돌아가신 고모 이야기였습니다
아마도 본인의 나중 모습을 투영한것이죠
본인도 그리 되지 않을까두려워 하는 마음은 제가 알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확인하고 의심하고 그러면서 오로지 믿을 자식은 아들 그리고 같이 사는 결혼 안한
딸이 제일 편하다 여기게 되었나 봅니다
그러다보니 제 잔소리도 듣기 싫었을것이고 제가 잘하는것도 부담스럽고 불편했을까요
그러니 재산은 그둘에게 물려주면서 그 둘에게 위탁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래도 필요 한 것은 전부 제가 해다 주는데도 까다로운 식성 맞추어 주는 것도 저인데도
절 밀어내면서 상처를 주더구요
저도 질세라 그냥 듣고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죠
위험 행동 하고 허세 부리고 어쩜 아버지 모습과 닮아가는지 아니 아버지보다 더 심해지셨죠
아마도 초기 치매 증세 맞지만 동생들은 전부 제 말은 무시하고 설마 하면서
그래 욕먹을것 언니가 먹고 누나가 먹고 하던가 이식이었습니다
절 방패막이로 삼을려고 한 것이죠
은연중 엄마의 고집도 못꺽고 할것이니 엄마의 고집 꺽으면서 제가 해주던가 말던가 그 식이었습니다
결국 전 내쳐진 딸이 되었죠
그저 조용이 반찬이나 해다 줌 좋은 것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퇴원해서 제일 먼저 한일이 화분 때문 허리 그리 되었어도 화분 들어 올리기 였고
그걸 옆에서 보고도 '어어' 하고 쫒아 가지도 않고 야단도 안치는 제동생
아마도 제가 난리쳐주기 바란것이죠
제 동생은 항상 그런식입니다
오죽하면 남편이 하는말이 영혼없는 사람 같다고 하더군요
그저 아바타처럼 예 예 하고 느리게 느리게 하는것이죠
기껏 꾸며 놓은 엄마방도 고맙다는 말도 못듣고 보일러가 제대로 가동안되서 추우니 추운데서
자라고 했다는 원망만 들었습니다
반찬을 해가도 본인 좋아하는것만 딱 보시고 나머지는 밀어 놓으시더군요
"난 안먹어"
그 반찬은 사실 아버지 좋아 할것 해온 것이죠
이런 와중 엄마의 세입자 집은 나가서 십년을 엉망으로 써서 다 수리하고 해야 하는데 결국은 남편이 가서 며칠에가서 다해주었습니다
그리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기어코 해주고 와서 점심 저녁도 제대로 못 얻어먹고
여동생이 부모 밥상도 제대로 차리기 힘들어하는데 형부 왔다고 찌게라도 새로이 끓일 애는 아니니까요
라면 먹고 시어빠진 이주넘게 먹은 김치찌게 겨우 먹고 통닭 시켜먹고 그랬나보더군요
전 조용한 찬모역활
남편은 말없는 머슴역활이 되었네요
엄마는 며느리한테 뭘 시킬려고 하면 미안한데 뭐좀 해줘 하지만 ㅎㅎ
그리 의지 할거면 당당하게 내식성 맞추어 반찬도 해오라고 시키지
그리 눈치보면서도 믿는것 보면 참 이상하죠
아들이 예쁘니 며느리도 귀하게 여기는것이고 미안하게 여기는것이죠
항상 집안청소등 일들 사위불러서 시키는것은 당연하게 여겨도 아들 부르는것은 못하게 했던 분입니다

이제 제 마음의 상처도 치유 해야 하니 이제는 마음이 편해 질 때까지 멀리해야죠
이년전부터 가면 "왜 왔니" 소리를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때 부터가 절 밀어내는 시기였나 봐요

치사랑은 없다고 이렇게 상처받고 힘들어하면서 마음의 거리두기 훈련중 입니다
딸애한테만 더 집중하고는 있습니다만 마음은 사실 힘이 듭니다
걱정이 되고 이야기 들리는 바로는 먹을게 없어서 김에나 싸먹고 물말아 드신다는 소리가 들리니까요
여동생 태생이 엄마의 식성을 맞추어 반찬 매끼니 해주기 어렵겠죠
하루에 국하나 하고 반찬 한가지만 해도 되는데 살림한다고 하면서 그게 힘들죠
밥도 삼일에 한번 하는 스타일이고 또 그런 딸 두둔하는 엄마인데 그렇게 드셔야죠
전에는 그게 안스러워서 그리 해다주고 했는데 어차피 평생 제가 그리 할 것도 아니니 그만둠이 맞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 뻔질나게 전화하던 동생도 전화를 안합니다
아니 제가 전화해도 받지도 않더군요
잔소리 듣기 싫다는 이야기죠

이래저래 힘들게 장녀 노릇 했다고 했는데 결국은 의미 없는것이 되어버렸네요
친정이 없어진 느낌이 드는 것 요즘의 제 마음 입니다
몸은 울집만 돌보니 편해도 마음은 아직 힘드네요
그래도 K장녀 컴플렉스에서 어서 벗어나기는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