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분수
사냥에서 승리를 한 사자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사냥감을 주저 없이 물어뜯었다. 뚝뚝 살점들이 떨어져 나간 사냥감은 이미 세상과의 인연이 다했는지 심장박동을 멈추고 힘없이 축 처져 있었다. 끝없는 초원의 나무 아래서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는 사자의 입가에는 붉은 피가 전리품처럼 묻어있었다. 화면을 통해 피비린내가 전해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동물의 세계’를 거의 빠짐없이 보며 강자의 무소불위 권력에 몸서리를 치면서 난 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걸까?
볼 때마다 조금씩 약에 취하듯 몽롱한 기분이 들며 지금의 내 모습을 사냥감에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서히 서서히 강도를 높여 가는 약발에 어쩌면 스릴을 동반한 쾌감을, 아니 열에 들뜬 오르가슴을 갈구하며 밤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이 시간이 나에게는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이 증폭되고, 두려움에 불안이 커져 동공이 흔들리고, 입안이 메말라 갈라져가는 긴장의 최고조였다. 조금 후에 일어날 일을 기다리는 심장은 이제 지칠 때도 되었건만 박동수가 빨라지고 숨이 가빠지고 얼굴의 근육도 굳어졌다.
시계를 바라보니 7시의 문턱을 아슬아슬하게 넘고 있었다. 순간, 방문이 야수의 비명처럼 거칠게 열리며 시커먼 얼굴의 한 남자가 시뻘겋게 충혈 된 눈으로 먹이를 향해 숨 가쁘게 돌진해 왔다. 언제 온 걸까. 발자국 소리도 나지를 않았는데…….
“이년이 서방이 왔는데 나와 보지도 않아! 서방을 도대체 뭐로 보는 거야. 쓰벌”
술 냄새가 방안에 퍼지며 비위를 상하게 했다. 취기가 오른 얼굴에는 오늘은 이걸로 시비를 걸어 널 때릴 거야라고 적혀있었다. 그랬다. 무슨 건수를 잡아서라도 내 몸 구석구석에 손과 발을 갖다 대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말을 하면 한다고, 안 하면 안 한다고, 쳐다본다고, 운다고 잔다고, 밥상 늦게 차린다고, 심지어는 화장실 간다고.
손가락이 부러지고 코뼈가 내려앉고 온몸에 피멍이 들고 구석에 나뒹굴어 신음도 못 낼 정도가 되면 어김없이 바지의 지퍼가 내려갔다. 짜인 순서가 진행되듯 꼬투리를 잡아 구타를 하고 일방적인 혼자만의 성(性)의 배설이 이어진 게 2년째였다.
남편의 몸이 위로 올라오자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고 다리에는 마비증상이 생겼다. 비릿한 바다냄새가 묻어있는 몸과 역한 김치냄새가 나는 입이 훑고 지나가는 곳마다 얼음처럼 세포들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몸 안의 반응은 뜨거운 오르가슴에 미칠 듯이 경련이 일어났고, 희열을 주체할 수 없어 절정의 신음들이 쏟아졌다.
맞을 때는 오히려 가슴이 펄떡거리며 쾌감이 느껴졌다. 언제부터인가 난 머리와 육체가 분리된 기형적인 인간의 삶을 살고 있다. 머릿속은 ‘정말 끝내고 싶다 이제는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를 끊임없이 되뇌면서, 육체는 벗어나지를 못하고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갔다.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남편이 사냥해주길 기다리며 초원에 서성거리는 나를 발견하며, 이성과 본성 사이에서 방황하며 떠나지 못하고 살아갈게 될 것이라는 것을 또 느낀다.
미친 새끼! 입안에 맴도는 말을 입술에 피멍이 맺히도록 씹으며 참았다. 배설을 끝낸 미친 새끼는 대자로 뻗어 코를 천장이 무너져라 골며 승리자의 포만감을 즐기고 있었다. 벽을 타고 얕은 한숨이 기어올랐다. 형광등 불빛이 기어오른 한숨을 마시며 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눈이 시리다. 밝은 빛이 눈 안으로 들어와 아픔 한 덩이를 던져주었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방안에 듬성듬성 널려 있는 머리카락을 주웠다. 금방 몸의 일부였는데 떨어져 나가서는 철수세미처럼 돌돌 꼬여서 나에게 욕을 했다.
‘이 바보 병신아. 네년이 미친년이지 누구를 원망하고 탓할래. 네 눈 까리 네가 찌른 거지. 네 몸의 일부였다는 게 부끄럽고 창피하다.’
손안에 가득 잡힌 그들의 욕지거리가 싫지 않음은 하나도 틀린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쓰레기통에 마지막 남은 하나까지 구석구석 찾아서 모조리 넣고 천천히 일어서서 거울을 보았다. 차라리 보지 말 것을 그랬나보다. 누가 나를 서른이라고 할까. 목이 아파 왔다.
군데군데 머리카락이 뽑힌 머리는 벌초 잘못한 산소처럼 볼썽사납고, 시퍼렇게 멍이 들어 부어오른 눈은 개구리 눈처럼 툭 튀어나와 버렸다. 초점 없이 흐린 눈에는 생기라고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뼈가 몇 번이나 내려앉았던 코는 움푹 패여 무섭기까지 하고, 새까맣게 기미가 낀 얼굴에는 바닷바람에 그을려 땟국이 줄줄 흘렀다.
옷은 또 어떤가. 6,25 때나 입었음 직한 똥 색 월남치마는 색이 바래고 군데군데 뜯어져 걸레도 쓰기도 힘들어 보이고, 진한 고동색 니트 사이로 금방이라도 가슴이 튀어나올 듯 단추 몇 개가 불안하게 간신히 붙어있을 뿐이었다. 갈라 터진 손과 기형인 듯 짧은 엄지발가락은 보면 볼수록 소름이 끼치고 흉했다. 도저히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여자가 거울 속에서 머리를 산발하고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표정으로 자꾸만 흐려졌다. 이게 아닌데 정말 이게 아닌데…….
삶이란 놈은 언제나 내가 원했던 바람대로 되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지평선과 수평선처럼 만날 수 없는 묘한 선을 긋고 서로 쳐다만 볼뿐. 가벼운 눈인사 한번 나눈 적이 없었다. 아마도 10년 전 그날 예감으로 알았다. 나에게 행복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았음을.
방향을 잃어버린 나침반이 되어 거리를 헤매던 그날 밤.
어둠에 가려진 달을 보며 피 울음을 울었을 때부터 내 인생은 끝이 났다는 걸 알면서 애써 도리질하며 부정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억울하고 분해 가슴이 터져 죽어버릴지도 몰랐기 때문에 쉴 새 없이 도리질을 하며 내 것이 아니라 절규했었다.
이불 밑에 숨어있던 담배를 찾아 불을 붙였다. 빨갛게 타들어가는 영혼이 연기로 방안을 나른다. 마른 재가 바닥에 떨어지며 타버린 잔해의 숨소리가 멎는다. ‘씨발!’ 담배도 제 영혼의 마지막을 남기는데 나는 도대체 무언가.
비어 버린 가슴과 욕망으로 가득 찬 동물적 본능만 남은 몸뚱이가 이성적 판단이라곤 전혀 할 수 없는 멍청한 머리와 함께 나를 채우고 있을 뿐이다. 담뱃재보다 못한 인생을 허덕거리며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연기 한 모금을 들이키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며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눈에서 작은 서러움들이 흘러내려 입안으로 들어왔다. 짭짤했다.
눈에서 나오는 물은 소금기가 많아 먹으면 먹을수록 목이 말랐다. 영혼이 맛이 있다면 아마도 지독히 짤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입 안 가득 들어찬 영혼을 지금 맛보고 있다. 서러움과 더불어.
바닷가마을. 옹기종기 모여 고기잡이로 생활을 엮어나가던 그물 같은 삶들이 대부분인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여상도 아니고 인문계를 나왔기에, 다른 친구들보다 많이 배웠다는 어쭙잖은 콧대에 웬만한 직장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다른 집 가스나들은 중핵교 졸업해도 공장에 취직해 돈도 꼬박꼬박 잘 보내고 집안에 보탬도 된다카는데 니는 도대체 뭐 하는 기고 잉? 고등핵교꺼지 어렵게 보냈더니 대가리에 먹물 들었다고 힘든 일은 안할라꼬 그라제. 집구석에서 밥만 축내재. 인간이 우째 그 모양이고. 말 좀 해보 거라 니도 생각이 있을꺼 아이가. 내가 저놈의 가스나 땜에 미치고 환장하겠다.”
오징어 배를 따며 엄마는 입버릇처럼 잔소리를 시작했다. 잘려 나온 내장들이 소쿠리에 담기기 시작하면 비릿한 냄새가 코끝에서 온몸을 휘감았다. 유난히 비위가 약한 나는 구역질을 하기 일쑤였고 ‘이 정도도 못 참으면 뭐해먹고 살끼고’ 라는 가시 돋친 말이 또 날아 들어왔다. ‘외동딸이라 고생 안 시키고 키웠는데 애를 바보 만들었다’며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찼고, 골칫덩어리가 된 나는 집보다는 바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차 많아졌다.
바위에 앉아 갈매기를 보았다. 몸에 날개가 달리는 상상을 하며 백사장을 바다 위를 날았지만 지긋지긋한 비린내를 탈출할 수가 없었다.
학교 때는 제법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뻐 인기도 많아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했었는데 스무 살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는 게 피곤하고 혼란스럽고 짜증만 났다. 꿈을 꾸어도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꿈만 꾸었다. 숨 막히는 하루하루에 종지부를 찍는 일은 결혼이라는 비상구뿐임을 자각한 나는 그곳으로 향하는 문을 과감하게 열었다.
친구의 오빠. 나는 영악하게도 부모님이 안 계신 친구의 오빠를 골랐다. 고깃배를 타지 않는다는 게 중요했고 마음이 착한 사람이었다. 나이가 조금 많은 게 흠 이였지만 이곳을 탈출할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반대를 하셨던 아버지와 엄마도 남편의 성실함과 심성을 보고는 결국 허락을 하셨고 순서대로 결혼식은 진행되었다. 스무 살의 신부와 서른네 살의 신랑은 마을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행복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주례를 맡은 이장님은 연방 이마의 땀을 훔치며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에 또. 결혼은 두 사람만의 약속이 아닙니다. 여기 오신 분들과의 약속입니다. 에 또.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고 아껴주고 살아야 합니다. 에 또.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내 인생은 보랏빛으로 가득하리라 믿었다. 바닷가를 벗어나 읍내의 아파트에 신혼의 보금자리가 꾸며 질 때만 해도 영원히 함께 하자며 손가락을 걸 때만 해도, 삶은 탄탄대로의 연속이라는 착각 속에서 말도 안 되는 부푼 꿈을 꾸었다. 웃기지도 않는 일이었지만. 사랑! 그까짓 거 개에게나 던져줄 먹다버린 뼈다귀보다 못한 것이었다.
사랑. 애당초 나에게 그런 감정은 필요가 없었다. 필요에 의해 택한 결혼이었기에 사랑보다는 비린내 나는 사슬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이 깊게 지배를 했고, 엄마의 잔소리에서 해방된 마음이 너무 편하고 좋았다. 단 세 번 만나서 한 달 만에 결혼을 했는데 가슴 시린 사랑을 어떻게 알 수가 있었을까. 그저 어리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유로 적당한 잘못은 용서가 되고 남편은 노총각 딱지를 떼 준 내게 부담스러울 정도의 애정공세를 가했었다.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우리색시가 어디 숨었다 이제 온 거니? 정말 내색시가 맞니? 어디 보자. 응”
회사 마치기가 무섭게 달려와서는 얼굴에 뽀뽀를 하며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며 끌어안고 빙빙 돌리고 입이 째져라 연방 웃었다.
엄마는 바쁜 와중에도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딸 덕분(?)에 김치며 밑반찬들을 가져다 날랐고 어린 딸의 철없음을 얘기하며 잘 부탁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박 서방. 아직 아무 것두 모르는 걸 데려와서 고생이 많을 끼다. 그래두 이해하고 싸우지 말고 잘살아야 한데이. 알겠제.”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친아들처럼 잘 모시고 연희 영원히 사랑해 줄 테니 안심하세요. 이 사위만 믿으십시오.”
“아이구, 착하기도 하재. 법 없이도 살 우리 박 서방. 우째 이리도 착하노.”
법 없이도 산다던 사람. 가만히 생각해보면 법 없이도 산다는 말은 법이 없으면 못산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법 없이도 산다는 건 법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천하무적이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하늘과 땅에 적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에 적이 많다는 뜻이다. 쉬운 예를 들어보면 축구를 제일 잘하는 브라질이 축구에 관해서는 천하무적이라는데 왜 다른 나라에서는 브라질을 깨려고 난리를 치는 걸까? 왜 이기려고 수많은 노력을 하는 걸까? 적이 없다는 것은 아주 많은 적을 곁에 두고 있다는 말이다. 언제나 양면성을 가지고 세상은 돌아가는 거니까.
법이 있었기에 남편과 엄마는 사람들에게 돌팔매를 맞아서 죽지 않은 것이고, 나에게 찔려 죽지 않은 것이다. 엄마와 남편은 말 그대로 법 없어도 살 사람이었다.
집에서 하는 일 없이 노는 게 너무 지루해서 작은 사무실의 경리로 취직을 했다. 공교롭게도 남편은 다니던 회사에 문제가 생겨 당분간 집에서 쉬게 되었다.
“미안해. 다시 나갈 수 있을 거야. 너 볼 면목이 없다.”
“괜찮아요. 지금까지 수고했으니 푹 쉬다가 다시 일하면 되니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다행히 직장 다니고 있으니 어떻게든 생활은 될 거에요. 엄마가 자주 반찬이랑 김치 가져다주시니 아무 염려 말고 이번기회에 편히 쉬어요. 알았죠?”
쉽게 생각했었다. 사람이 걸어가는 인생의 길 위에 나타난 작은 걸림돌이니 치워버리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삶을 송두리째 흔들 거대한 바윗덩이가 되어 현실에 나타났을 때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어 정신을 놓아 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선택한 남편에게서 사랑 없는 결혼의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알고 나니 세상이 무서웠다. 나는 어이없게도 내 꾀에 속아 넘어간 바보여우가 되고 말았다.
사랑. 그 질긴 탄식의 늪이여.
어장 일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도 엄마는 집에 자주 왔다. 딸이 걱정이 되고 사위가 집에서 놀고 있으니 못 미더워 오시는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이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엄마와 남편과 내가 모인 자리의 분위기가 왠지 어색하고 껄끄러웠다. 썰렁함에 시선을 마주치기 불편해 하는 두 사람. 여자의 직감은 빗나간 적 없이 정곡을 찌르니 이 또한 하느님이 주신 필요 없는 기능의 하나인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 박 서방한테 무슨 기분 나쁜 일 있어?”
“아니. 와?”
“그냥. 요즘 엄마랑 준식씨 사이가 예전 같지 않은듯해서. 아들처럼 좋아했잖아. 근데 두 사람 다 영 말도 없고. 나 없을 때 싸우기라도 한 거야?”
“참말로 못하는 말이 엄따. 일은 무슨 일. 박 서방이 일 안하고 집에만 있으니 마음이 좀 거시기 하니까 그래 보이는 갑지.”
엄마는 얼굴까지 빨개져가며 입에 침을 튀기며 부정했다. 손을 내저으며 목소리까지 높이고 화를 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두 사람의 나이차이가 7살밖에 안됐다. 누나와 남동생이라고 해도 되는데 사위와 장모이니 남들의 눈에는 우습게 보일수도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 오후. 비가 내렸다. 회식이 있어 늦어진다는 전화를 하고 모처럼 친정에 전화를 했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저 연희예요. 잘 지내시죠? 자주 연락 못 드려 죄송해요. 엄마는요?”
“엄마. 너거 집에 갔다. 니가 육개장 묵고 싶다고 했다매. 요즘은 아예 거기서 산다 살어. 니 걱정도 좋지만 기다리는 내는 허기져서 쓰러지겄다. 니는 시집 간지가 언젠디 매일 엄마를 부르고 난리냐. 참말로.”
“죄송해요.”
전화를 끊고 돌아서니 빗줄기가 세져 우산도 소용없었다. 이상하게 묘한 기분이 들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낙엽들이 질척하게 신발에 달라붙었다. 칙칙한 느낌에 슬그머니 짜증이 일었다.
현관문에 키를 넣으니 ‘딸각’하는 소리가 났다. 평상시와 같은데 왜 이렇게 벌떡벌떡 심장이 요동을 치는지 알 수가 없다. 조용히 신발을 벗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거실에 들어서는데 방안에서 가쁜 숨소리가 뒤엉켜 귓가를 때렸다. 둔탁한 망치로 얻어맞은 듯 정신이 가물거리며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정상을 향해 달리고 있는 신음은 끝이 없는 녹음테이프처럼 끊어질 듯 말 듯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클라이맥스를 향해 정신없이 뒤엉킨 남녀의 육체가 머릿속에 그려지며 왈칵 비린내가 목으로 올라왔다.
구역질이 터져 나오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 텅 빈 머릿속에는 물음표만이 셀 수 없이 떠다니고, 방안에선 귀에 익은 목소리의 여자가 ‘나 미쳐. 나 미치겠네’ 교성을 지르고 있었다. 흥분에 들뜬 쉰 목소리가 아파트 안을 유령처럼 떠다니며 피부에 소름이 돋게 만들고 괴기한 분위기까지 만들어 주었다.
상황판단이 서지 않으니 오금이 저려왔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천장만 바라보는데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시원하게 질펀하게 싸고 나면 정신을 차려 올바른 판단이 될 것만 같았다. 심한 요의를 느껴 손으로 다리를 잡아당겨 억지로 일어서는데 방문이 열렸다.
만족감에 젖은 엄마와 남편은 알몸이었다. 배설을 끝낸 남편의 성기가 허공에서 흔들흔들 춤을 추었다. 반주도 없는데 일정한 리듬을 타고 흔들리며 제 역할을 훌륭하게 끝낸 기쁨을 신나게 표현하고 있었다.
‘바보. 넌 나에게 속은 거야. 젖비린내나는 널 좋아했다고? 천만에. 나 역시도 널 사랑하지 않았어. 약은 고양이. 넌 밤눈 어두운 약은 고양이일 뿐이야. 알아!’
금방이라도 끈끈한 액체를 쏘아대며 소리를 지르는 건 아닐까? 나는 그 상황에도 뚫어져라 남편의 성기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남편의 뒤에서 무언가를 말하려 자꾸만 입을 들썩거렸지만 말은 나오지 않고 허공에 힘없는 헛손질만을 해대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순간, 가슴속에 죽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생겼다. 피가 사방에 튀고 벌렁 나자빠진 알몸의 시체 두 구가 거실바닥에 놓여있는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동네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아버지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연상되니 가슴 끝이 칼에 베인 듯 아려왔다. 만신창이가 된 영혼은 이미 죽음을 맞고 있었다.
영원히 멈추어 있을 듯 한 시간을 먼저 깬 건 나였다.
간신히 손으로 다리를 잡아 걸음을 떼었다. 현관문으로 가는데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왜 이리 멀게 느껴질까. 억지로 문을 잡아 마지막 남은 기력을 모아 손잡이를 돌렸다. 그것이 끝이었다.
계단을 미끄러지다시피 뒹굴어 내려와 무작정 걸었다. 맨발인데도 발에 박히는 돌멩이며 유리 조각들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피가 터져 걸어온 발자국마다 도저히 용서받을 수없는 주홍글씨처럼 새겨지기를 빌었다. 비가 내리는 지도 몰랐다. 세포마다 아픔과 배신의 화살들이 수없이 박히는 데도 느낌이 오지를 않고 눈물도 말라버려 미친년처럼 실없는 웃음만 났다.
얼마를 걸었을까. 낯선 거리에 서 있는 나를 발견 했다.
비는 어느새 그쳤고 구름에 가린 달이 을씨년스럽게 쳐다보며 인생이 어긋났음을 조심스럽게 알려 주었다.
‘너, 인생에 실패했어! 바보!’
그날 밤. 고향과 엄마와 남편을 나는 버렸다. 무작정 버스에 올랐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었다. 여기서 벗어나기만 하면 문제되지 않았다.
삶의 다른 출발이든 끝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시작과 끝은 언제나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였다. 정해진 톱니대로 정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인간만이 그 속에서 발버둥을 치며 아니라고 발악을 해대고 있다. 결국은 비명도 못 지를 만큼 힘 빠지고 지쳐야 고개를 끄덕이며 삶의 톱니바퀴를 인정하게 된다.
시작도 끝도 없는 톱니바퀴여. 인생이여. 삶이여. 인간의 굴레여.
시작도 끝도 없다면 나를 영원한 어둠 속에 가두어 줄 수 있는지 신에게 묻고 싶었다. 지옥의 끝에 데려다 줄 ‘카론 영감’을 만나면 영혼이라도 팔아 시간의 감옥에 갇히고 나면 더 이상의 고통은 없을 텐데.
신은 나에게 그런 사치와 허영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만큼 나라는 여자의 삶은 부서지고 조각나 산산이 흩어져버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톱니바퀴였다.
비린내가 싫어서 도망을 쳤는데 결국은 바닷가 선착장에서 생선의 배 따는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서툴러 날이 선 칼에 손도 베이고 일손이 느려 욕도 많이 얻어먹었다. 바쁜 날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비린내로 범벅을 하고 고픈 배를 채워야했다. 적응해 간다는 건 그만큼 사는데 익숙해진다는 뜻일 것이다. 내 몸에는 씻어도 씻어도 생선 비린내가 가시지를 않았다. 강력본드를 붙여놓은 것처럼.
“나이도 어린기 무슨 고민이 그리 많노. 얼굴이 우거지 죽상 아이가. 도대체 그 입은 얼어붙었는가 말을 안 하니 그 속을 우찌 알겠노. 답답다. 참말로.”
이곳에서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영덕댁은 버스에서 내려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맨발에 거지꼴을 한 나를 집에 데려다 옷과 신발을 주었다.
남편이 선박사고로 바다에서 죽고 아들 하나만 키웠는데 아들 역시 교통사고로 잃고 혼자 살고 있다했다. 하룻밤만 재워 달라는 것이 인연이 되어 3년째 여기서 살고 있으니 이제는 친자매처럼 눈빛만 봐도 어느 정도 얘기가 통했다. 그러나 나이와 이름 정도만 말했을 뿐 아무것도 털어놓지 못하고 열쇠를 꼭꼭 채운 자물쇠처럼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다.
고향을 떠나고 얼마 후 바람을 타고 들려온 소식에는 엄마와 남편이 도망을 갔다고도 하고, 아버지가 두 사람을 고소했다고도 하고, 엄마 혼자 집을 나갔다하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쫓겨났다하기도 했다. 생선 배를 가르며 수백 수천 번 남편의 배를 가르는 상상을 했다. 튀어나온 내장들을 통에 쓸어 담으며 잘려나간 생선 대가리를 보며 그에게 저주의 말을 주문처럼 쏟아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의 창고에 쌓였던 썩은 기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삶에서 불필요했던 부분이라 여기며 잘라내려 애를 썼다.
기억을 뭉텅뭉텅 잘라낼 때마다 습관처럼 술과 담배가 필요했다. 소주를 한잔 마시면 몸에 찌르르 전기가 흘렀다. 말초신경이 자극을 받으면 동맥과 정맥으로 알코올 기운들이 숨 가쁘게 달리기를 시작했고 결국에는 서러움의 눈물로 도착점을 맞았다. 알코올이 사람을 마실 때쯤이면 몸이 깊은 바다 속에 빠진 듯 움직이지가 않았다. 헤어날 수 없는 수압에 못 이겨 생을 포기한 익사자처럼 몸도 마음도 절망이었다. 손가락 사이에 하얗게 변해가는 담배만이 살아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빨간 불꽃조차 사그라지면 주위는 천천히 죽어갔다.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캄캄한 방에서 조금씩 기억을 죽이는 작업을 시간과 함께 진행해 왔던 거였다. 울음이 복받치면 입에서 터져 나오는 흐느낌을 수건으로 막으며 막혀가는 가슴을 주먹으로 부서져라 때리고 또 때렸다. 그러다보면 날이 새고 생선 배를 따러 비늘이 묻은 장화를 신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