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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추억


BY 박 진 2007-06-18

 

바닷가의 추억


박 영  애



  지난여름 우리 가족은 바닷가엘 다녀왔다.

  아이들이 방학중이었고 마침 남편 회사의 휴가가 8월 초로 잡혀 근사한 여름 후가 계획도 짰었다. 작년 여름에 갔던 울산의 한 해변에서 알뜰한 휴가를 보내기로 한, 정말로 가족 모두가 바라던 휴가계획이었다. 아이들은 미리부터 마음이 들떠서,

  “엄마, 여행 갈 때 저 어떤 옷 입을까요?”

하며 말끝마다 ‘여행’이었다. 그런 아이들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휴가 첫날부터 소나기가 억수같이 내렸다. 나는 괜스레 죄인이라도 된 듯 나의 실망감은 내색도 못한 채 아이들의 눈치만 살폈다.

  계속해서 내리는 비 때문에 나가 놀지도 못하고 아이들은 벙어리 냉가슴 앓 듯, 내리는 비만 원망했다. 그러나 하늘은 결코 무심하지 않았다. 5일간의 남편의 휴가 중 셋째 날, 비를 뿌리던 하늘은 말끔히 개이고 쨍쨍 햇볕이 났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비 때문에 망쳐버린 휴가를 조금이나마 되찾고 싶어 우리 가족은 남은 이틀을 어떻게 하면 가장 알차게 보낼까 궁리를 했다. 처음에 정했던 울산으로의 여행계획을 대천해수욕장으로 바꾸는 데는 망설임이 없었다. 잘못하면 이틀밖에 남지 않은 휴가가 그냥 밋밋하게 지나갈 지도 모를 일이었다. 각자 편한 차림으로 여행 준비를 끝내고 우리 가족은 차에 몸을 실었다.

  오후의 해변은 햇볕이 강했고,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비릿한 바다 내음이 물씬 풍겨 바닷가에 와 있음을 실감나게 했다. 밝고 고운 색깔의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도 시원하고 좋아보였다.

  오랜만에 본 해변의 풍경은 너무도 좋았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오는 파도를 피해 높이뛰기를 하는 사람, 멀어져가는 바닷물을 따라갔다가 다시 달려 나오는 사람들. 삼삼오오 떼를 지어 폭죽놀이를 즐기며 깔깔거리는 젊음이 부러웠다.

  아이들은 백사장에 주저앉아 모래성 쌓기에 한창이다. 대천해수욕장 특유의 조개 가루 해변. 아이들은 내가 어렸을 때 많이 했던 모래성 쌓기 놀이를 하고 있다. 두툼하게 쌓아 올린 모래성에 한 쪽 손을 넣고, 다른 한 손으로 모래를 두들겨 다져 가만히 손을 빼면 동굴처럼 빠꼼하게 구멍이 났다. 그 신기함을 즐기며 아이들은 이곳저곳에 구멍을 냈다. 깊이 파 들어간 곳에서는 물이 나와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또 옆에 더 작은 웅덩이가 생기고 아이들은 그 일에 몰두해 아빠, 엄마의 존재는 잠시 잊은 듯싶었다.

  오랜만에 바닷가에 앉아 가족들과 가지는 시간이 너무도 좋았다. 여기저기서 연신 폭죽이 터지고, 해변은 마치 한바탕 축제라도 여는 듯 들뜬 분위기였다. 해변의 밤은 점점 더 깊어만 가고 밤공기를 맞으며 모래밭에 앉아 있으려니 괜스레 마음이 촉촉해져 왔다. 파도 소리는 한 가락 노래인 양 귓가를 간지럽혔다. 마음속에서는 이런 기회를 자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하지만 바쁜 일상이 내 마음과는 다르게 생활하게 만든다.

  12시를 지난 시간에도 해변은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듯 초저녁의 열기보다 축제의 분위기가 한층 더 무르익어갔다. 철썩이는 파도는 모순투성이인 우리네 일상을 깨우쳐 주기라도 하듯 같은 높이와 같은 톤의 소리를 유지한 채 모래밭 위를 서성였다. 모처럼만에 가진 여유인데 얼마 후면 또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새벽 2시가 거의 다 되어갈 무렵, 해변은 조금씩 조용해졌다. 여기저기에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놀이에 어느 정도 만족을 했는지 졸린 표정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숙소로 돌아왔다.

  해변에서의 수면은 새로웠다. 멀리서 간간히 파도 소리가 들리고 두런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도 들렸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참을 뒤적이다 겨우 잠이 드는가 싶었는데, 해변가가 훤히 밝아온다. 새벽 6시, 밖을 내다보니 일찌감치 일어나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띄엄띄엄 눈에 띄었다.

  아직도 곤히 잠들어 있는 가족들 틈을 빠져 나와 혼자 해변을 거닐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였다. 일상에서 북적거리는 인간 군상들 틈에서 언제나 뒤채이고, 비교당하며 견제해야 하는 인생사. 적어도 그 순간만은 홀로 자유롭고 싶었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 모래밭 위를 맨발로 걸었다. 발가락 사이를 빠져 나오는 모래알이 부드러웠다. 울퉁불퉁 깨어진 조개껍데기를 주워 손바닥 위에 올려보았다. 잠시 동안이나마 유년 시절의 내가 되어보는 시간이다. 조개껍데기는 해변의 언어로 내게 말을 건네 왔다. 말고 투명한 언어로.

  그 짧은 시간이 내겐 너무도 소중하다. 잠시 후면 떠나온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전보다 더 새롭고 활기찬 생활을 해야 한다. 한 여름의 휴가는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휘한 재충전의 시간이다.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낼수록 더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리라.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반성의 시간이기도 하다. 반성의 시간이 지나면 더욱더 사랑스런 아내, 더욱더 좋은 어머니가 되어야 하리라. 문득 가족들이 보고 싶어졌다. 그렇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다. 그래서 나의 삶이 더욱더 의미 있는 것이다.

  한참만에 돌아오니 가족들은 깨어 있었다. 해변에서 맞는 아침이 즐거운지 밝은 얼굴들이다. 대충 세수를 하고 ‘맛있는 해물탕을 사주겠다’는 남편의 제안에 따라 음식점을 찾아 나섰다. 이른 아침의 해변 식당은 부스스한 손님들로 붐볐다. 전부들 먼 곳에서 찾아온 우리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인 듯싶었다.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탓인지 입맛이 조금 없었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해변 가에서 하는 식사시간이 즐거웠다. 매콤한 국물 맛이 입안을 개운하게 했다. 날씨가 후텁지근했지만 여름은 더워야 제격이다. 자주 오지 못하는 해변의 더위는 견딜 만했다.

  아이들의 희망에 따라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모터보트도 타고, 물놀이도 했다. 오랜만에 저희들의 소원을 다 이룬 아이들은 룰루랄라 즐거운 표정이다. 끝으로 우리 가족은 해안선을 따라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다며 즐거워 까르륵거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1박2일 간의 일정을 끝내고 발길을 돌렸다. 아이들은 못내 아쉬워 달리는 차 안에서도 뒤로 돌아앉아 한참 동안이나 해변을 바라보았다. 내년의 휴가를 기약하며 바쁜 일상이 있는 곳을 향해 남편은 힘차게 엑셀을 밟았다.

  몇 차례의 태풍으로 선선해진 초가을 날. 지난여름의 추억을 가만히 꺼내보았다. 추억은 되새겨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먼 훗날 낡은 앨범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추억이 되리라 세월이 흘러 검은 머리보다 흰 머리카락이 더 많아질 무렵 나는 바닷가의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띠우리라.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있는 것도 즐거운 삶이다.

  추억은 아름다운 것. 추억은 남는 것, 추억은 꺼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것. 그래서 추억은 더 추억다운지도 모른다.

  내년에 만들 또 하나의 추억을 생각하며 잠시나마 여유로운 마음이 되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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