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짱 나의 선생님
ꡒ와, 예쁘다.ꡓ
사람들은 꽃가게 앞을 지나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예쁜 레이스가 달린 작고 앙증맞은 꽃바구니에서부터 타원형의 큰 꽃바구니까지 참으로 예쁜 꽃들이 보는 사람들의 눈을 황홀하게 한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두고 꽃가게들마다 경쟁적으로 꽃바구니를 만들어 내놓아 축제 분위기다. 그 앞을 지나오며 나는 잠시 여고시절의 스승의 날을 떠올려 본다. 요즘은 스승의 날만 되면 촌지 파문으로 학교분위기가 술렁인다. 내가 여고에 다닐 부렵만 해도 지금처럼 촌지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없는 형편에 학교 수업료 내기도 빠듯했기에 촌지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착하기로 소문이 난 우리 삼남매는 선생님들로부터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평소에 잊고 지내다가 스승의 날에야 생각하게 됨이 죄송스러운 나의 스승님. 인기짱 K선생님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여자들에게 영원한 향수로 남아 있는 여고시절. 여학교에서 남자선생님의 인기는 요즘 아이들이 말하는 ‘짱’이었다. 초임발령을 받은 잘 생긴 총각선생님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나의 여고시절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3때 우리반 담임을 맡으셨던 K선생님. 총각은 아니었지만 여학생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다. 선생님의 성함 끝자가 ‘순’자인 까닭에 남자임에도 남학생들로부터 러브레터를 많이 받으셨다는 선생님. K선생님은 세련되지 않은 소박한 외모에 구수한 입담이 인기의 비결이었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까닭에 학생들은 선생님을 참으로 좋아했다. 스스럼없이 학생들을 대하시는 선생님의 까다롭지 않은 성격에 아이들은 가끔씩 가벼운 농담도 건네고, 선생님의 말씀에 삐지기도 하면서 선생님과 많은 추억을 만들어갔다. 특히 비교적 키가 컸던 뒷 번호의 친구들은 선생님과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권위적이기보다는 너무나 인간적이셨던 선생님은 포용력 있는 가슴으로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시며 우리를 이해하고 감싸주셨다. 그래서 남자선생님 대하는 것을 유난히 어렵게 생각했던 나도 선생님을 편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도 선생님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야간자습시간에 종종 감독을 하시는 선생님을 위해 학교부근에서 자취하는 친구들은 고구마 등 간식거리를 장만해 갖다드리기도 했다. 선생님께서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학생들의 성의를 생각해 맛있게 잡수셨다.
K선생님은 국어를 담당하셨는데, 국어선생님답게 감성적이었고 가끔씩 시도 지으셔서 종례시간에 우리들에게 낭랑한 목소리로 낭송을 해주시기도 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절이라 그런 선생님의 모습은 너무나 멋져 보였고 나는 마음 속으로 ‘나도 선생님처럼 시를 짓는 시인이 될거야’라는 야무진 꿈을 꾸게되었다. 선생님은 우리들의 좋은 본보기였다. 내가 지금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인기 짱 K선생님의 영향이다.
지금도 그때 선생님께서 낭송하셨던 싯귀 한 구절이 생각난다. ‘사랑이 되고 싶다.’ 지금에야 한 교실에 삼십 명 정도가 수업을 받고 있지만 그때는 한 반이 보통 65명 정도가 되는 콩나물 교실이었다. 말만한 여자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어찌 쉽기만 했으랴! 삐죽삐죽 개성이 강한 아이들을 다스리시느라 교실은 늘 누군가 혼나는 소리로 정적이 감돌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지금 아이들보다 순진했던 우리들은 종종 선생님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잘못을 저지른 친구를 앞에 두고 선생님께서
“○○○ 손바닥 몇 대 맞아야 될까?”
하시면
“선생님 그냥 봐주세요!”
라며 반 아이들전체가 코 먹은 소리로 아양을 떨어 친구가 체벌을 면할 때도 많았다. 선생님은 그 때마다
“느이들 때문에 봐준다!”
하시면서도 은근히 체벌을 하지 않게 된 것을 기쁜 마음으로 즐기셨다. 감성적이고 사려 깊은 선생님이셨지만 가끔은 틈도 보이셨다. 그런 일들이 선생님의 인기를 더해주었다.
가을의 어느 날. 우리분단이 청소당번이 되어 친구들과 함께 쓸고 닦고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내가 맡은 청소구역의 청소가 다 끝나서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친구와 장난을 치고 있었다. 청소검사를 하러 오셨던 K선생님은
“야, 너 하라는 청소는 안하고 장난만 쳐!”
날카로운 화살이 나한테 날아와 비수처럼 꽂혔다. 나는 너무나 억울했다. 사실을 확인도 안 하시고 혼부터 내시다니. 나는 너무도 속이 상해서 종례시간 내내 고개를 푹 떨구고 속을 바글바글 끓이고 있었다. 뒤 늦게서야 내가 청소를 열심히 했다는 것을 아신 선생님은
“야, 임마! 말을 해야 알지. 미안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혼부터 내서”
그 말을 듣고 나니 내 마음은 금세 지옥에서 천국으로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일도 아닌데 그때는 그렇게 나와 친구들은 종종 샐죽해지기도 하고 때론 펑펑 울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학창시절이었다. 사춘기소녀들의 감정상태까지 일일이 배려하셨던 선생님은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그렇게 즐거웠던 여고시절은 끝이 나고 우린 졸업을 하게 되었다. 방학동안에 아이들은 진로가 어느 정도 정해졌고, 뿔뿔히 흩어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사연도 많았던 여고시절의 막을 내리며 우리들은 헤어짐이 아쉬워 펑펑 눈물을 흘렸다. 졸업식장을 나서는 우리들을 한사람씩 악수하던 선생님께서는
“울지마라! 사회에 나가서도 너희들은 잘 할거야!”
하시며 등을 토닥거려주셨다. 눈이 빨갛게 되도록 울었다. 헤어지면 다시는 선생님과 친구들은 못 만날 것 같았다.
우리 키큰 친구들 십여 명은 졸업 후에도 선생님을 모시고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가졌다. 사회인이 된 친구들은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학창시절에 그렇게 입고 싶었던 정장차림으로 선생님을 만났다. 지난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선생님과 멋진 포즈로 사진도 찍었다. 어느 날은 모임이 끝나고 일어서려는데 선생님께서
“영애 너, 나좀 보자!”
짤막한 말씀 한 마디에 잘못한 것도 없이 긴장부터 했다. 아이들이 왁자지껄하며 무리지어 나간 후 나는 선생님 앞에 앉았다.
“너, 선 볼래?”
“예 선이요?”
나의 머리 속은 갑자기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해졌다. 정식으로 선을 본적이 한 번도 없고, 이성적인 감정으로 남자를 만난 적은 더더군다나 없는 나였다. 내가 만날 사람은 선생님께서 남학교에 계실 때 그 반 반장이었던 사람이라고 했다. 현재 탄탄한 직장을 가지고 있는 성실한 사람이니 일단 만나서 사귀어보다가 결혼적령기가 되면 결혼을 하라는 것이었다. 당장 결혼을 하라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일주일 후 나는 선생님 댁 안방에서 선을 보았다.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우리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다. 지금도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이따금씩 잊을만하면 나는 선생님께 동인지를 한 권씩 보내드리며 열심히 잘 살고 있음을 확인시켜드린다. 몇 년 전에는 백화점에 쇼핑 갔다가 우연히 선생님 내외분을 뵙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뵌 지가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한 사모님께 정식으로 인사를 시켜주셨다.
“이 친구가 내가 말했던 그 글 쓰는 친구야!”
“안녕하세요?”
여고를 졸업한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선생님께서는 예전보다 더 건강해 보이시고 여유가 있어 보이셔서 참으로 뵙기가 좋았다. 현재 모 고등학교의 교감선생님으로 계시는 선생님. 나의 여고시절의 추억 속에는 인기 짱 K선생님이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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