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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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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1막 저주받은 운명은 끝났다.,(1) ,,,, 내 손잡고 꽃길로만 ,,님에 말씀


BY 행운 2024-02-04

"인생 1막 저주 받은 너에 인생은 이제 끝났다는" 님의 말씀에
 그 동안의 아픈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그 괴로움이 되새겨져,,, 가슴 밑바닥에서 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 내리며 나도 모르게 
아픈 고통에 몸서리 쳐진다. 

끔직하다는 말이 해당이 안 될만큼 
내 삶이 바늘로 찌르는 고통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님들께서 말씀하셨듯이 눈물강을 이루었고 때로는 
피눈물울 흘려야 하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자식으로 인하여 자식을 나처럼 
버려지게 할 수 없어 이를 악물고 잇몸에서 피가 
흐를만큼 깨물며 참고 또 참아 내어야 했던 지난날 들이다. 

얼마나 울어야 눈물이 마를수 있을까 
얼마나 더 아파해야,, 때로는 자식을 끌어안고
미안해 미안해 하면서 ,,,,
왜 엄마가 미안해 저 인간 때문인데
왜 엄마가,,,, ,,,,,,,,,,,,,,,,,,,,,,,,,,,

얼마나 더 울고 울어야 어디까지 ,가야
 눈물을 끝맺을수 있을까,,
하늘에 님들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씀 그대로 
너무도 기막히고 파란만장한 삶 기구한 운명
그 자체였다. 

최씨 가정 조상의 욕심으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고
한 여자의 인생을 죽 쑤어 개 주는 그런 삶으로 만들어졌다.  

어떻게 이렇게 뻔뻔한 조상이 있을수 있는가. 
 이렇게까지 뻔뻔함이 극치에 닳을 만큼 
후손이라는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에서도 나 하나 지키기가 너무 힘들다고 할 만큼 
내 인생에 있어 태산 같은 파도는 끝없이 밀려오고 
때로는 그 파도에 휩쓸려 죽을 것 같았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났다는 생각에서 모든 것을 정리할 정도로 파도는 
덮치고 덮쳤지만 그 어느 누구 하나 손 내밀어 주지 않았다. 

이 넓은 세상에 이 작은 몸 하나 기댈곳 없어 얼마나 
울음 울어야 했던가 차디찬 겨울꽃 동백은 동박새가 
찾아주지 않은 그 긴세월을 한겨울의 추위도 부족한듯 

눈,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아무 일도 없는듯 하면서도 
남몰래 울음을 삼키는 고통으로 꽃잎은 새빨갛게 물들여지고 
밤바다 작은 저승새 마중이라도 온듯이 울어 재치면

구슬프고 애닮은 그 소리에 여인의 가슴은 찟어짐을 
느낀다.  자식은 날이 새면 또 어미의 눈을 마주치며 웃는데, 
어떻게,, 버려둘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는 기막힌 현실 

앞에서 망연자실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었다. 
하여 여인은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래 자식을 위해서 살자 
내 인생은 삶은 없는 것이다." 

아니 "태어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며 살자" 
그래야 저 자식이라도 건질수 있을 것이니 
제대로 자랄수 있게 만들수 있을 것이니까 
나처럼 가슴에 피멍 들게 만들지 말자 ,

평생을 살아도 버려진 아픈  삶속에서도 
자식 노릇은 혼자 다 해야 했던 그 한은 
가슴 속에서 지울수 없었고 지워지지 않을만큼
 아프고 고통스런 흔적으로 남아 있으니 
나는 그러지 말자 . 그래야 잠시라도 집안이 조용할 것이고 
두 자식이 불안해 들 떨떼니까
나는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아니 하지 않는
 벙어리가 되었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되었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당달봉사가 되어 살아가자는 생각으로 그렇게 살아왔다. 

자식은 내가 쳐 놓은 사랑에 울타리만 
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키웠고 그 남자로
 인하여 내 삶에 힘든 것은 절대로 두 아이에게 
그 감정 표출하지 않을만큼 내 자신에게도 철저했다. 

감사하게도 자식은 엄마의 사랑이 가슴으로 전해졌는지 
어느날 아들이 그 남자로 인하여 집을 뛰쳐 나가고 싶은데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봐 튕겨 나갈수 없어 답답한 마음에 
제발 그 사랑한다는 말 좀 그만 할수 없냐고 했었다. 

나는 아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미안했다. 
언젠가 딸도 대학생활을 하는 어느날 내게 말했었다. 
자신도 몇번이고 집을 뛰쳐나가고 싶은데 
엄마가 마음 아플까 봐 반항을 할 수도 없었고 
그런 행동은 더더욱 하지 못했다고 했다.  

엄마가 우리 때문에 헌신하고 희생하는 줄 
알고 있기에 그럴수 없었다고 했다. 
아들은 대신 친구집에 자주로 갔었다.

너무 감사하게도 아들 친구 둘은 순천고에서 
전체 1, 2등을 차지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방황하려는 아들은 오히려 
공부에 매진 할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아들에게 어떤 친구 집을 가더라도 절대로 
빈손으로 가면 안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럴때마다 아들은 알고 있어요, 한다.

나는 언제나 공부를 잘 하기보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사람 교육을 우선으로 
생각했다. 

공부는 나도 해 보았다. 공부는 핵교에서만 필요했지 
사회에서는 사람됨이 더 중요했고 복이 있냐 없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님의 뜻으로 살아가면서 알수 있었다.  
,,,,,,,,,,,,,,,,,,,,,,,,,,,,,,,,,,,,,,,,,,,,,,,,,,,,,,,,,,,,
나는 그때서야 알수 있었다. 
아들이 나쁜곳으로 빠지지 않게 바로
 잡아 주신분은 하늘에 님들이시라는 것을 ,,,,,,

어느날 스승님께서 내게 꿈으로 보여주시고 기도 
드릴때도 여지 없이 아주 세세하게 보여 주셨다. 

삐둘어지는 아이들 방황하는 아이들이 허공중에 
아주 촘촘하고 넓게 그물이 쳐저 있는 
그 곳에 다 갖혀 있었다. 

어떤이도 어느 누구도 빠져 나갈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내가 정말 개미 한마리도 빠져 나갈수 
없겠구나 하고 말했었다. 
그물 속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있었고 빠져 나올 수 
없을것 같았다. 


하늘에 뜻이 아니면 미륵 부처님 뜻이 아니면 안될것 같이 
보였다. 다행히 아들은 하늘에 님께서 건져 올려 주셨고 ,,,
가장 먼저 아들이 가슴으로 책 가방을 안고 가는 것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책가방을 머리게 이고 가게 하셨고, 세번째는 책가방을 
등에 메고 가게 하셨다. 이는 먼저 가슴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신 것이고, 두번째는 학교에 가면 
엉뚱한 생각을 하지 말고 공부에 대한 생각만 하게 하신것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등에 책가방을 메고 학생다운
 생활을 하게 만들어 주신 것이다. 
이는 행여 내가 자식 때문에 또 마음 아파 하실까 
하늘에 님들께서 빈틈없는 사랑으로 돌보아 주신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기될곳 없는 나를 님께서는 너무도 불쌍하고 
애처롭고 안타깝다는 말씀을 내게 몇번이고 하시며
 나를 안고 우신 적도 한두번이 아니시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죄인같은 마음이며
그토록 높고, 깊고, 넓은, 사랑과 은혜를 갚을 길
없어 죄송하다며 눈물 말고는 받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로 갚을길 없어 그저 죄송하고
 죄인된 마음 뿐이라고 말씀 드렸을때
오냐 오냐 알았다. 알았어 걱정 말거라 
하신적이 있으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