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반을 넘기고 살아오면서 너무도
큰 희생과 헌신의 요구를 받으며 살아왔었다.
때로는 미치고 싶도록 아프게 살아오면서도
내 자신의 삶이란 눈꼽만큼도 없을 만큼
그렇게 기막히게 살아왔다.
너무도 억울하고 억울해서 하늘에 님들께
따지고 들며 캐물었다. 아니 간절하고 간절할 정도로
여쭙고 또 여쭈었다.
그런데 나는 그 개보다 못한 사람과 맺은것이
하늘에서는 우리 둘 사이 악연중에 악연이라고
하시며 절대로 맺어져서는 안되는 최악이라고 하셨다.
그 사람과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그에 조상인 그사람의 할머니의 아버지의
욕심으로 나를 억지로 보쌈하여 등치 큰 남자로
하여금 지키게 하고 도망가지 못하게 하면서
억지로 역거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는 연애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그로 하여금 수없이 도망을 가려고 하였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남자의 조상이 나를 지키고 있었고
그 남자도 나를 끝없이 지키다 시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래서 나는 모든 삶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끌려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자식이 생겨 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쳐해 졌고 나는 인생에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상태로
살아갔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 내 부모가 그렇게 나를 대하는데
어느 누가 어느 곳에서 사람대접 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너무도 아픈 생각에 젖어 들기도 했었다 .
나는 그와의 삶을 살면서도 부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날이 갈수록 ,,,,,,
그래서 나는 그 남자에게 할말 조차도 할수 없을 만큼되었다.
내 삶은 피폐해져 갔지만 자식이 있어 도망을 갈수도
없었다. 그 세가닥의 찍찍 달라붙은 거미줄로
뗄래야 뗄수 없는 그런 관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바보 같은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쩔수 없는, 장녀라는 것에, 맞이라는
것이, 너무나 내 어깨를 무겁게 하는 삶이었다.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쳐도 내 삶에는 변함이 없었고
날이 갈수록 내 주위 모든 이들이 날 아프게만 하였다.
그남자의 형제들도 대단했다.
나는 길에서 돈을 주워 오는줄 아는 것 같았다.
그기에 또 한사람 친정 엄마 였다. 어느날 갑자기
내 옆으로 이사를 와서는 참 나를 기막히게 만들어 갔다.
그러다 전라도 광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나는 숨을 쉬고 살아갈 줄 았았다.
그런데 나를 힘들게 하는것은 여전했다.
아니 더 심했다.
친구들은 나를 바보라고 했다. 아니 너무 착해서
그렇게 당하고만 산다고 했지만
내가 바보로 살아온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 나는 그 남자가 너무도 무서웠다. 끔찍했다.
단 한마디도 대꾸도 할수 없었고 누가 뭐라고
해도 바보처럼 그저 예예 알았어 알았어요
그런 말 뿐이었다.
그 남자에게는 말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 남자는 11명중에 막내이다. 끔찍한 막내,,,,,
그런데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어느 설날
그 남자는 내게 한마디 말도 없이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고 왔었다.
나는 그때 몸이 아파 가지 않았다. 아니 못갔다.
그런데 시어머니라는 양반이 설날부터 큰아들
큰 며느리와 싸워 한마디 말도 없이 자신의
옷을 왕창 싸 가지고는 아침밥도 먹지 않고
집에서 떨어진 곳 길에 앉아서
막내 아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들차를 타고 우리 집에 왔었고
그 남자도 내게 말한마디 없었다.
너무 당연한듯이 ,,,,,그때는 내가 물로 보이나 하는 생각이었고
그리고 시어머니 너무 당당하게 나와 같이 살려고 왔다고 한다.
난 예 잘하셨어요 . 하고는 말문을 닫아 버렸다.
나와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고 하시는
데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내가 잘 해 주었다고 해도 마음이 편했다고
해도 이것은 아니지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남자에게도 말한마디 하지 않았다.
일말의 기본 조차도 없는 것 같아서 ,,,,,
그래 , ,
어디 내가 이해 안되는 것이 한두가지 였던가
일주일 열흘 지나고 나니 그사람의 큰 형수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집에 안오면 영원히 못오실 줄 알라고 엄포를
놓아도 그사람 어머니는 안간다고 큰 소리 친다.
도대체 내게 뭘 해 주었다고 저렇게 큰 소리칠수 있을까 싶었다.
정말 아무것도 해 준것도 보태준것도 없는데 당당해도 너무 당당했다.
1년에 두번 연례행사처럼 한번 오시면 20일 정도
먹고 자고 그렇게 쉬다가 가셨다
정말 삼시 세끼 따뜻한 밥상 받으며 있으니
오죽좋겠는가 마는
참,,,,,
설 첫날부터 아들 며느리와 싸우고 왔으면
나중에 다시 오시더라도 큰 며느리에게 못 이기는척하고
집에 가야하는데 안간다고 버티고 있으니 나중에
큰 며느리 모시려 그 사람 큰 누나 집으로 오니까 내게
온다간다 말도 한마디 없이 뒤돌아 보지도 않고 아들
차 타고 가버린다.
나는 뒤 따라 갔다. 큰 며느리 시어머니한테 화풀이 못하고
애꿎은 내게 화풀이 하면서 경상도 여자가 들어와서
집안이 시끄럽다고 하는데 참 어이가 없었고 하나같이 어쩌면
저러냐 싶고 말도 하기 싫었다.
다들 나이 먹어도 나이 값도 못하는 한심한 사람들이었다.
옆에 서 있던 큰 시누이가 미안한 얼굴로 나를 쳐다 보는 것이다.
싸움은 자기들이 해 놓고 ,내가 물 어쨌다고,,,,
언제나 그런식이다.
아,,,,,,,,
내가 어쩌다 이런 남자를 만났지 ,,,,
나는 하늘에 뜻으로 님의 뜻으로 님들
앞에서 하나 하나 여쭈며 파고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깊이 파고 들고 보니 그 남자의 돌아가신 할머니가
주 범인이었다.
나를 욕심내어 억지도 정말 당치도 않게 개보다 못한
그 사람과 엮이게 만들고 내 눈과 입을 가리고
귀를 막고 두손 두발 다 묶어서 등치 큰 남자가
나를 흰 자루에 넣어 어깨에 메고 가고
그에 할머니는 뒤를 따르고 있었으며
나중에 그 남자의 방에 나를 내려 놓는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어이 없게 악연 중에 악연으로
엮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기에는 돌아가신 그 남자의 아버지도
단단히 한 몫했었다.
그리고 하늘에 님께서는 하시는 말씀이
절대로 엮이면 안되는 악연이라고 하시며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워 졌다고 하셨다.
이후, 최씨 조상들은 내게 끝없이 자신들을 좋은
곳으로 보내 달라고 종용하고 힘들게 하였다.
나는 도대체 내게 뭘 해 주었다고 그렇게 큰 소리 치냐고
저 개보다 못한 인간이 당신네 후손이라고 지금 내게
큰 소리 치냐고 따지고 물으면서 나는 돈이 없다.
돈을 벌게 해 주던지 끔찍하게 여기는 후손에게
돈을 내게 주라고 하세요 그럼 내가
좋은 곳으로 보내 주겠다고 했다.
그 사람의 조상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다.
나는 생각했다. 제수 없게 , 복이라곤 다들 눈꼽만큼도
없으면서 무슨 염치로 그렇게 큰 소리치나 하는 생각이었다.
아직 친정 조상들도 좋은 곳으로 보내 드리지 않았는데,,,,,
그 전에 이미 하늘에 님들께서 양쪽 집 조상들에 대해서
다 보여 주시어 알고 있었다.
이후 친정 조상들을 위해서 먼저 조상 정리를 해 드렸다.
너무나 날씨가 맑고 쾌청한 봄날이었다.
그리고 친정 조상들은 너무나 많은 복을 내게 리어카로
차로 실고 오시기도 하고 들고 오시기도 하셨다.
정말 기분 좋은 하루였다. 할머니는 하늘에서 그림과
붓글씨 꽃꽃이를 가르치시고 계셨다 내가 유체이탈을
해서 하늘로 갔을때 "할머니 저도 그런것 배우고 싶어요"
했을때 웃으시며 "그래 너는 나중에 나중에 너가 할일
다하고 오면 그때 가르쳐 줄께"하셨다.
그리고 최씨 조상들을 정리를 해 주었을때는
친가와는 극와 극이었다.
너무나 캄캄하고 어둡고 그 조상들이 있는 곳에
빛이라곤 찾아 볼수 없었다.( 기도금도 배로 많이 들었다. )
복을 가진이는 나를 자신들을 위해서 자신들의 후손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하며 살라고 억지로 그사람과 맺어지게
한 조상 할머니었다. 복이라고 해 봐야 국 그릇 크기인데 보자기에
싸 가지고 온 것이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내게 주지 못했다. 친가 할머니께서
나를 그렇게 살게 한 것을 억울하게 여기시며 또 그 사람이
하는 짓이 사람이 아니라서 화가 나시어 그에 할머니를
내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며 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의 조상 할머니는 자신들을 좋은
곳으로 보내 준것도 모잘라 나를 최씨 가정에
뒤딤돌로 만들어 자신의 후손들을 밟고
올라가게 만들고 또 나를 희생시켜 후손들을
부자되게 만들어 주려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 모든 계획을 알고 난 후 이가 갈릴 정도였고
어떻게던 이혼을 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식 때문에 그 지옥을 탈출하지 못하고
매알 같이 내가 왜 자식을 낳았을까
그나마 아들만 낳고 말 것을 왜 자식을 나아서는
이렇게 내 인생을 진흙탕에 쳐 밖은 것일까 미치도록 후회와
울고 울음 속에서도 자살을 수 없이 생각하고
산을 올라가기를 몇번이었지만 그 자식이 뭔지,
엄마라는 그 자리가 또 자식이라는 그 자리가 내게는
정말 고통 그 자체였다.
아들이 무릅 꿇고는 내게 울먹이면서
"엄마가 우리 때문에 희생하는것
잘 알고 있다면서 그래도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참아 달라고 애원하듯 하는데 또 나중에는 딸 까지 ,,,,
나 혼자 얼마나 잘 살 것이라고 이런 자식을
두고 가겠나 싶어 내 삶 자체를 아예 포기를 하고,
그래 졸업할 때까지만 참고 살자 귀머거리 되고
눈먼 장님이 되고 벙어리가 되어 살자는
생각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나는 딸의 도움을 받아 이혼을 했다.
그 집 조상의 욕심대로는 절대 해 주지 않으리라
아니 되게 해 줄수 없다는 생각과 내 가슴 속에는
5, 6월에 서리가 내릴만큼 쌓인 한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 어디 두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만큼 억울하고 억울했다.
그런데 이혼을 하고 나는 타 지방으로 이사를 왔을때
그 남자의 조상인 할머니가 내게 와서는
조금만 더 참지 하기에
참 염치라곤 없는 그 후손에 그 조상이구나
싶어 그만큼 참았으면 됐지,,,
얼마나 더 얼마나 더 참아야 하는데 ,,,,,,
말을 놓았다. 한이 서린 마음이었다.
그 할머니 그러게 ,,, 하고는 소리 없이 가버린다.
나는 이후 지금까지도 하늘에 님들께 빌고 있다
절대로 그 남자도 그에 조상도 그에 형제도 후손도
내 주위에 아들, 딸 주위에 근접하지 못하게 해 주십사고'
빌며 오직 하늘에 뜻 님에 뜻으로 따뜻한 훈기로만
감싸 주시기를 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5,6 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말
거짓말이 아니리라,
그 가정을 망하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남자가 적어도 사람이었다면 그렇게까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 쓰레기였다.
나는 모든 것을 하늘에 님들과 스승님들의 힘을
빌려 잘라내고 도려내어 모든 것을 정상적으로 해 놓은
다음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휴우증은 너무도 심했지만 다행히 너무도 착한 딸이
엄마를 위해서 참 많이도 애를 써 주었고 마음에 치유가
될수 있도록 남 몰래 아파하면서고 못난 엄마를 많이
생각해 주는 효녀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 인생 망하지는 않았다. 자식이 너무도 착하고 착하니 ,,,,,
그기다 참으로 마음 착한 친구도 있고 친구 남편이
우리 둘 사이를 정말 부러워 할 정도로,,,,,
셋이 식사를 하면서도 정말 부럽다고 하시며 오래 오래
둘 사이 변하지 말고 살라 하신다.
그 남자는 죄를 받고 있는 중인지 오래전에 뇌출혈고
쓰러져 사람 노릇 못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나는 지금 너무도 행복하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만큼
하루 하루가 너무도 즐겁고 웃는 날이 많아진다.
예전에는 혼자라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둘이라서
죽을 만큼 외로웠고 고통스런 나날이었다.
친구가 매일 같이 카톡으로 좋은 글도 보내 주면서
살뜰하게 나를 챙겨주고 나를 웃게 만든다.
친구는 자신이 행복한만큼 내게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말을 자주로 한다.
그는 교회 아주 절실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 축복해 주면서
서로 고마워하고 감사하면서 타치 않고 잘 살아가고 있다
딸과도 둘도 없는 사랑 나눔을 하면서 살아가니
참으로 행복하다.
행복이 무엇인지 이 나이에 알게 되다니 참으로
아프기도 하고 친구 말대로 그래도 감사 한 일이라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