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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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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과 시숙이 없는 첫 추석


BY 그린플라워 2012-10-11

이번 추석은 참으로 홀가분했다.

시어머님에 대한 부담감도 없고 늘 화근이었던 시숙도 안 계셨으므로.

 

추석이 가까워지도록 형님에게 전화한통 한하고 버티고 있던 차에 형님이 못 참고 전화를 걸어왔다.

"오랫만이야. 잘 지내지? 이번 추석 어떻게 할 거야?"

"제가 장보기 다 해갈 거니까 아무것도 준비하지 마세요."

"그럼 내가 콩나물하고 두부 사 놓을까?"

"네~ 두부 반판하고 콩나물 조금 사 놓으세요."

시댁 집 앞에 두부공장이 있어서이다.

 

형님은 살림살이에는 취미도 적응도 영 안되는 사람이므로 집에 가보면 있는 게 거의 없다.

시어머님 계실 때도 파한단 사기를 아까워 했었으므로 갈 때마다 파나 양파 두부 한쪽도 다 챙겨가야만 했었다.

장보기를 하기 위해 몇달 전부터 사야할 품목을 조목조목 적었다.

그러던 중에 막내동서 전화를 받았다.

"형님~ 제사장보기 하는 것 중에 혹시 쌀도 넣으셨어요? 우리가 가서 이틀 쌀 축내고 오면 안되잖아요?"

"에고~ 내 그걸 깜빡할 뻔 했네. 품목에 쌀도 넣을께."

참 딱한 대화를 나눴었다.

 

추석 전전날 모든 장보기를 마치고 추석 전날 일찌감치 시어머님 사시던 곳으로 갔다.

약속대로 두부와 콩나물은 준비가 되어 있었다.

뺀질이 세째동서는 일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나 올 것이고 있다 해도 별 도움도 안 되는 건 마찬가지지만...

네째동서와 막내동서가 열심히 부침개를 할 동안 나는 탕과 콩나물무국 준비하고 나물을 장만했다.

형님은 내가 사간 햅쌀을 보더니

"난 쌀을 샀는데 햅쌀이 아닌가봐. 물을 엄청 많이 먹어."

"형님~ 쌀을 살 때는 가격만 보지말고 몇년산인가도 봐야 해요."

"그래에~ 난 몰랐지."

 

시동생들은 먼길을 왔음에도 불구하고 도착하자마자 걷어부치고 지난겨울에 땐 연탄재까지 버리느라 몇시간동안 분주했다. 작은아버지들이 우리가 하룻밤 자야할 잠자리를 마련하느라 분주한 동안 26세된 조카는 외박하느라 없고 29세된 조카는 전날 퍼마신 숙취로 늦잠 자느라 청소가 끝난 뒤에야 일어났다. 그런 조카를 에미(형님)는 깨우지도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새우잠을 자고 일어나 추석제사를 모셨다.

밥을 먹는데 형님이 또 한마디 했다.

"이 집 큰애 앞으로 해 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이렇게 살다가 언제 나가게 될지 몰라 불안하다." 가 골자였다.

우리는 절대 그런 일 없을 것이니 안심하고 살라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집앞 텃밭은 이미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빌려준 모양이었다.

팔만한 물건은 모조리 팔아서라도 명품 사 입고 먹고 싶은 것 다 사먹는 그 세사람에게 집을 준다면 제2금융권이나 사채업자에게라도 잡히고 돈을 빌려 쓰거나 남은 방들을 전세 놓아 돈을 탕진할 게 뻔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주더라도 이삼년 뒤에나 주기로 했다.

 

큰집 세식구 정신차리는 걸 언제나 보게 될 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