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애가 고교에 입학한 첫날부터 야간자습으로 붙들려 있더니
갈수록 아이들 자습태도가 산만하여 도저히 공부를 못하겠다고 했다.
담임선생님과 상의하에 야간자습에서 뺐다.
안경쓴 얼굴만 보면 절대 딴짓 안하고 공부만 하게 생겼으므로
게다가 억지로 야간자습을 하라고 하면 역효과가 날까봐
빼준 게 화근이었다.
중간고사 시험결과가 스스로도 참담할 만큼 형편없는 점수를 맞았다.
도로 야간자습을 시키게 되어 학부모들이 돌아가면서 감독을 하기로 했다.
첫타자로 내가 걸렸다.
평소 복장보다 좀 단정한 복장을 하고 자습시간에 들어갔다.
흑판에 한자로 아들 이름을 적고 '누구 엄마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임'을 알리고
자습을 시켰다.
한시간 반 정도는 각자 문제집을 풀거나 책을 읽거나 했지만
십분간 휴식이 있은 뒤부터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유난히 내고
들락거리는 녀석까지 있었다.
어떤 녀석은 처음부터 끝까지 엎드려 자기도 했다.
게다가 아이들 교복바지를 보니 가관이었다.
우리 애를 포함해서 몇명만 빼고는 다들 스키니바지로 줄여입은 상태였다.
강남의 학교 예를 들면서 주의를 줄까 생각하다가 참았다.
아는 지인은 작년에 아들을 일학년 초에 강남으로 이사를 가면서 전학을 시켰다.
야간자습하고 나오는 아이를 태우러 갔더니
자습시간에 여학생들은 대부분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고
음악을 듣거나 딴짓을 하고 남학생들도 산만하기 이를 데 없어 보였단다.
게다가 끝나고 교실을 나온 아이들은 쌍쌍이 짝을 지어 수다를 떨면서 내려오는데
정신이 아득해지더란다.
전교에서 한자리수에 있는 아이를 강남으로 이사를 가면서 전학을 시키고 말았는데...
강남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쥐죽은 듯 조용히 하고 각자 알아서 공부를 한다고 했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 물도 조금만 마신다고도 했다.
전학간 그 애가 짝꿍에게 학원 어디 다니냐고 물었더니
뭐 그딴 걸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과외 해." 그러더란다.
며칠 뒤 같은 학원에서 그 짝꿍을 만났길래
"너 학원 안 다닌다며?" 하니.
"과외도 하고 여기도 다녀." 그러더란다.
정보를 알기 위해 엄마들 모임에 나가 봐도 알려 주는 이도 없고 묻지도 못한단다.
아버지 중에는 천기누설을 하는 이도 있으므로 되도록 아버지 모임에 내보내곤 한다고도 했다.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지 못하고 딴짓하는 애들을 보면서
과연 저 아이들이 언제나 정신을 차리겠는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 아이들 속에 우리 큰애도 속해 있다.
큰애가 아직 좌우명을 못 정하고 있다길래
"시간이 곧 돈이다. '시간을 황금같이 여기자' 로 하라고 했더니
그러겠노라고 했다.
오늘 덤으로 주어진 휴일 우리 큰애는 황금을 줄줄 흘려 보내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형보다 더 놀기 좋아하는 작은녀석이 합세하여 형제애까지 발휘하고 있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때려서라도 공부시키시지 그랬냐고 원망만 했단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