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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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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골곰국할머니-2편


BY 그린플라워 2008-10-05

어제와 오늘 이틀 열심히 고운 사골곰국 두통을 들고 할머니께 갔다.

출발할 때 전화를 드리니 기다리셨던 듯 반기신다.

 

말벗이 필요했던 할머니는 손수 끓여 두신 대추차를 마시라고 주신다.

찻잔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할머니는 내가 금방이라도 돌아서서 갈까봐 두서없는 말을 자꾸 이으신다.

"애들에게 고구마를 날마다 먹여. 멜라닌이나 중금속에 오염된 아이들에게 정화가 된다구. 이 말을 꼭 하려고 했어."

"네. 그럴께요."

"얼마 전까지 이 동네에 살던 꼬마에게 날마다 내 야쿠르트를 줬었는데 그 부모는 이사를 가면서 인사도 안하고 가버렸어."

"그리고 그 집에 외국에서 온 이가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와서 공부를 한다는데 그 집 아이가 놀러 오면 내가 과자를 주곤 했더니 추석날 아침에는 세식구가 들이닥치면서 아침밥도 안 먹었다는 게야. 내가 기가 막혀서 밥도 안 주고 훈계만 해서 보냈지."

"내가 도의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신원조회차 우리 친정집에 형사들이 들이닥치니까 친정엄마가 딸이 빨갱이짓이나 한줄 알고

혼비백산한 적도 있었어. 국회의원도 하라고 했지만 정치인들이 어디 상종할 인간들이야? 거절 했지."

"우리 바깥양반 친구가 정계에 높은 사람으로 있었어. 그 끈으로 내가 납품을 크게 하는 바람에 돈을 벌게 된 거야."

"얼마 전까지 뭘 연구하느라고 신문을 여덟가지를 본 적이 있었어. 사람들이 날 국민학교나 나왔나 싶어 하더라구. 내가 이런 곳에 사니 우습게 보는 거야. 가사선생한 걸 누가 알겠어?"

난 네네 계속 응수하다가 이따금 질문도 하고 감탄도 하곤 한다.

 

부엌 싱크대에 있는 설겆이를 해 드리고 오려는데 한사코 말리셔서 무거운 압력밥솥만 씻고 물러나왔다.

성격이 별나셔서 손힘도 없으시면서 밥은 가스렌지에 올려야 하는 압력밥솥을 사용하시고

대추차는 무거운 비전냄비에 끓여 드신다.

일주일에 한번씩 오는 가사도우미도 수시로 바뀌고 그나마 이제는 아예 아무도 오려 하지 않는다 하셨다.

 

"애들 기다릴라. 어여 가."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도 현관에 세워둔 채로 또 말을 이으신다.

"참 생년월일시가 어떻게 돼?"

손으로 꼽으시더니

"에구 어쩌면 좋아. 사주에 착한 게 둘이나 들었네. 그러니 이렇게 살지. 장사 해도 별로 이문도 못 남기지?"

"애들 아빠도 말해 봐."

"아이구~ 겉으로는 순한데 고집이 대단하겠구먼."

이따금 맞는 말씀도 하신다.

"맹모는 삼천지교를 했지? 난 애들 교육을 위해서 구천지교를 했었어. 변두리에 살 적에는 쌀도 질이 떨어지고 사람들도 후줄근 했었는데 가회동으로 이사를 가니 쌀이 여간 좋은 게 아니더라구... 애들을 위해서는 좋은 곳에서 살아야 해."

 

다리가 아파올 무렵 지팡이를 짚으신 할머니께서 어서 가라고 하신다.

 

사람이 얼마나 그리우시면 그러실까.

할머니는 곰국을 사시는 게 아니라 말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신 거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다시 할머니께서 전화를 하실 게다.

그럼 또 말씀 들어드리는 품앗이를 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