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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같은 휴식


BY 그린플라워 2006-08-27

 

장사를 시작한 후 가장 길게 편하게 놀 수 있는 때가 여름휴가다.

구정이나 신정, 추석 때는 엄청나게 많은 전과 나물을 해대느라 며칠 전부터 눈코 뜰새없이 바쁘므로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때는 여름에 며칠 쉬는 게 고작이므로.

그 황금같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장사를 마친 후 밤에 출발하기로 했다.

요즘 휴가철이라 정신없이 바쁠 일은 없는데 하필이면 같은 상가에 있는 이가 열무김치를 해 달란다.

휴가준비도 해야 하므로 안 된다고 했더니

자기도 그거 들고 휴가 가야 하므로 안 해주면 안 된다고 돈을 던지고 가버렸다.

목요일에는 수채화 그리러도 가야 하는데...

식재료상이 놓고 간 열무를 힐끗 쳐다만 보고는 그림 그리러 갔다.

숙제를 두고 갔으니 그림이 잘 그려질 리 만무하다.

그야말로 개발새발 시간만 간신히 떼우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가게에 오자마자 열무부터 다듬어서 씻어 절여 놓고 쪽파도 준비해 두고

밀가루풀을 쒀서 양념도 만들어 놓았다.

그러자니 아침도 못 먹고 나왔는데 점심식사까지 걸렀다.

옆가게 초밥집 동갑내기 친구가 초밥이라도 집어먹으며 하라고 한판 가져다 준다.

그냥 먹기 미안하여 꽁치조림을 주고 초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먹어가며 일을 했다.

남은 반찬은 모조리 싸들고 갈 요량으로 반찬을 넉넉히 만들었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많이 남을 듯 했다.

단골 손님들에게 열무김치나 반찬 가져 가라고 문자메시지를 일일히 띄웠다.

아홉시 가게 문을 닫을 시각을 넘기고도 비운 반찬통들이 산처럼 쌓여 갔다.

애들 아빠는 그 광경을 보더니 설겆이 하지 말고 떠나잔다.

삼일을 비울 텐데 도저히 그럴 수 없어 번갯불에 콩 튀기듯 설겆이를 했다.

동생네 아들이 우리 차에 편승하여 동생네보다 하루 먼저 가겠다고 왔다.

소형차라 더이상 실을 수가 없는 짐들을 더러 도로 내려 놓고 발치에까지 짐을 싣고 출발했다.

뒷좌석에 애 둘과 내가 앉았는데 얼마 가지 않아 두 녀석이 누워 잠이 들고 말았다.

그 틈바구니에 엉덩이를 반만 걸치고 가야만 했다.

다행히 혼잡하다고 연신 해대던 교통방송 덕분에 차들이 거의 나오지를 않아 도로는 한산했다.

휴게소도 안 들리고 논스톱으로 경북 봉화에 다다르니 새벽 한시. 세시간도 안 걸렸다.

더 늦을 거라 예상하시고 잠자리에 드셨던 부모님께서는 차소리에 일어나셨다.

대청마루에까지 모기장이 쳐져 있고 잠자리가 다 챙겨져 있었다.

아무데서나 자고 싶은 곳에서 자라신다.

애 둘과 난 엄마가 주무시는 안방으로 들어가고 동생아들과 애들 아빠는 대청마루에서 잤다.

 

시골의 아침은 왜 그리 일찍 시작되는지...

더 자고 싶은데 아침상 차리시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무슨 반찬을 이렇게나 많이 해 왔니? 이걸 누가 다 먹어?"

엄마네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냉동고까지 내가 가져간 음식들로 구석구석 채워둔 걸 보시고

걱정이 늘어지신다.

삼겹살도 오킬로나 사갔는데 며칠 전 외삼촌께서 다녀가시면서 남겨 놓고 간 삼겹살도

만만치 않게 남아 있다신다.

급히 가느라 옆집에 사시는 육촌할아버지 댁에 인사차 드릴 선물은 잊고 간 게 생각나

삼겹살과 반찬 몇가지를 챙겨 가져다 드렸다.

 

아침상 물리기가 무섭게 애들아빠와 애들이 석천계곡으로 물놀이를 간단다.

남아 있고 싶었지만 물살은 어떤지 사람들은 얼마나 와 있는지 궁금해서 따라 나섰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놀고 있었고, 물살도 제법 세었다.

아이들은 구명조끼를 입은 위에 튜브를 끼고 바위 사이의 물미끄럼에 빠졌다.

난 발만 담그고 있다가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시원한 대청마루에 누워 한숨 잘까 했는데 이게 왠 걸?

엄마는 풍기특산물인 인조견을 엄청나게 끊어다 놓으시고 남자들은 파자마, 딸들과 손녀들에게는 원피스나 치마바지를 만들어주시느라 골몰하신 중이셨다.

난 치마바지 실으니 에이라인 스커트로 하겠다고 하고 천을 재단했다.

엄마가 쓰시는 미싱은 칠십년도 넘은 인표 싱거미싱이다.

매표 싱거미싱보다 더 좋은 게 인표라나 뭐라나?

언젠가 그 미싱을 고치러 갔더니 미싱가게 주인이 새 미싱 세대 줄 테니 바꾸자고 하는 걸 도로 들고 오셨단다.

맡겨 두면 좋은 부속을 떼낼 지도 모른다는 옆집 아주머니의 조언에 따른 조처였다.

정말 신기하게도 아직도 잘 돌아간다.

단지 흠이라면 손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

내 미싱은 전기미싱이라 살그머니 밟기만 하면 되는데...

수동식 미싱은 엄청 답답했다.

한손으로 천을 잡고 한손으로 돌리자니 번번히 미싱을 멈춰야 했다.

"엄마, 내가 돌릴 테니 천만 잡으셔요."

그리하여 아이들이 물놀이를 마치고 올 때까지 바느질은 계속 되었다.

점심식사 후에도 바느질은 이어졌다.

엄마는 파자마를 열일곱개나 만드셨단다.

(제발 이러시지 마시라고 말려 놓고는 다음날 후진으로 도착한 동생과 난 또 인조견 사러 풍기로 갔다.)

저녁에는 대나무숯불을 피워 마당에서 삼겹살파티를 벌였다.

폭죽도 왕창 사서 옆집 식구들까지 합세하여 폭죽놀이도 했다.

육촌할아버지께서는

"이야~ 너무 재밌다. 내일은 할아버지가 돈 줄 테니 또 하자." ㅎㅎ

 

다음날  새벽에 도착한 동생은 아침밥을 먹기가 바쁘게 풍기에 가서 옷감 고르자고 한다.

엄마와 옆집 할머니까지 풍기로 갔다.

옷감도 끊고 만들어진 옷도 몇벌 사고...

근처에 서부냉면집에서 냉면도 사 먹었다.

서울서 먹는 냉면과는 좀 차이가 났지만 그런대로 먹을만 했다.

 

집에 돌아와 배고픈 남자들에게 프렌치토스트를 왕창 만들어서 허기를 면하게 하고는

"저녁 맛있게 먹지 뭐." 했다.

저녁에는 더 많은 식구들이 마당에서 숯불구이 파티를 열고 폭죽놀이도 했다.

밤참으로는 저녁식사 전에 만들어 두었던 감자송편과 찐옥수수를 먹었다

오랫만에 삼모녀는 새벽닭이 울 때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늘 하는 옛이야기이고 레퍼토리는 같아도 새록새록 재밌었다.

 

오는 날에는 온 식구들이 모조리 물놀이에 빠졌다.

아예 버너와 먹을 걸 챙겨서 바위 위에서 먹어가며 물고기도 잡고, 물미끄럼도 탔다.

저녁에 남은 고기를 구워먹을까 했더니 동생이 머리를 절래절래 흔든다.

"평소에도 언니네 반찬 사다 먹었는데 엄마네까지 와서도 언니네 반찬만 먹고 갈 수는 없다."

할 수 없이 애들은 피자토스트 만들어 먹이고 어른들은 차 두대에 나뉘어 타고 외식을 하러 나갔다.

늘 가던 곳이 일요일이라고 쉬는 바람에 먹을 만한 곳을 찾아 헤매다

옥류관을 가려던 걸 그 옆의 허름한 기사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참 탁월한 선택이었다.

관광지의 얄팍한 상술도 없이 저렴하고 푸짐하고 맛있는 저녁식사를 했다.

돌아와서는 상경할 준비를 하고 운전할 사람들은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라고 했다.

 

올 때는 바위미끄럼을 많이 타서 엉덩이에 타박상이 심해 뒷좌석에 누워서 왔다.

휴게소는 한번만 들러 체중만 조금 줄이고 다시 출발.

오는 길도 가뿐하게 왔다. 오는 도중에 식재료상에게 문자메시지로 식재료주문을 했다.

그 다음날부터 또다시 숨가뿐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내년에도 또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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