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4일(토)
결혼10주년 기념으로 가족여행을 하기로 했다.
둘째가 태어난 후 우리 가족만 하는 첫여행이라 보름 전에 인터넷을 검색하여
진산자연휴양림의 통나무집을 예약해 두고
준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뭐하나 빠질세라 꼼꼼히 메모를 해가면서
가서 먹을 것까지 아주 세심하게 준비를 했다.
혹여 높은 산속에서 밥이 잘 안될까 염려되어 압력밥솥까지 챙기고
모든 양념꺼리며 식기세제와 수세미까지 뭐하나 빠짐없이 완벽하게 챙겼다.
출발당일에는 동그라미까지 쳐가면서 물건을 체크해서 싣고 출발했는데~~
오전 11시에 출발해서 초행길이라 지도를 보면서 별 막힘없이 무사히 도착해서
예약한 방의 열쇠를 받아들고 짐을 내리는데 꼭 있어야 할 것이 빠진 게 아닌가?
분명히 차에 실렸으리라 여겼는데 이게 왠일인가?
옆집아줌마에게 전화를 해서 물건이 어디 있나 확인해 보니
우리 뒷차 보넷 위에 박스 하나가 얹어져 있다고 하는게 아닌가!
아이고 맙소사...
트렁크에 싣기 위해 잠시 올려 두고 집안에 잠깐 들어갔다 나온 게 화근이었다.
그동안 그 물건이 당연히 실렸으리라 생각하고 차에 급히 올라 출발한 거였는데,
애들 아빠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안 실은 거였다.
그 박스에는 불고기 재운 것과 된장찌개 끓인 것과 꽈리고추와 잔멸치볶음,
우엉조림, 김치와 무공해배추 생쌈거리가 들어있는 거였다.
다행이 부식박스만 빠진 거였으므로 휴양림 입구에 있는 휴게소에 가서
삼겹살과 김치를 사와서 구이김 가져간 것과 참치통조림으로 끼니를 떼웠다.
국은 라면을 끓여서 대신하고...
사과를 깍아서 후식으로 먹으면서도 너무 허망스러워서 차 끓여 마실 기분도 안 났다.
커피도 믹스커피도 아니고 다 따로 준비해서 가지고 가고 녹차까지 가져갔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아이들과 애들아빠는 배가 부르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연날리기도 하고 배드민턴도 치면서 잘 놀았지만
난 왜 이럴까 하는 반성이나 하고 있어야 했다.
기억력이 너무 좋아서 별명이 '수첩이 필요없는 여자', '움직이는 사전'이었는데
전신마취를 하고 제왕절개로 아이를 둘을 낳고 나서는
깜빡깜빡하는 버릇이 생겨서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방바닥은 따뜻했지만 단독통나무집이라 방안 공기는 차가왔어도 그런대로 잘 자고 일어났다.
아침밥을 지어먹고 애들과 애들 아빠가 마당에서 노는 동안 방안을 깨끗하게 치웠다.
우리가 들어왔던 상태 그대로 복원을 해두고
행여 또 물건을 두고 갈까봐서 욕실과 주방의 물건들을 꼼꼼히 챙겼다.
차가 출발하면서 애들아빠는
"여기에 뭐 빠트리고 가면 찾으러 오지도 못하니까 잘 챙겨야 해. 빠진 거 없나?" 했다.
"그럼~"
자신있게 말하고 차가 출발했는데 좀 가다보니 에고에고~~
냉장고에 넣어둔 물건은 빼먹고 온 것이었다.
봉화 사과 네개가 눈에 어른거렸지만 남편이 한심해 할까봐 그냥 모른 체하고 왔다.
근데 문제는 전주에 있는 덕진공원에 가서 또 두고온 물건이 생각난 거였다.
둘째아이가 아주 좋아하는 이유식용 머그컵도 냉장고 안에 두고온 거였다.
그건 똑같은 걸 살 수도 없는 거였는데~~
그 색상이 하나밖에 안 남은 걸 사온 거였었다.
전주비빔밥을 먹으면서도 머그컵 생각에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먹었다.
내일 그 컵과 색상까지 똑같은 걸 구해야 할 텐데~~ 라는 생각에...
그래도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니까 기분은 좀 나아졌지만
오는 내내 앞으로 이런 일이 안 생긴다는 보장이 없을 텐데,
이번에야 가벼운 것들이니까 그럭저럭 넘어갔지만
결정적인 실수를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은 떨칠 수가 없었다.
국수킬러인 난 마지막 휴게소에 들러 버섯국수를 먹으면서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건망증만 아니었더라면 훨씬 더 즐거운 여행이었을 것을~~
다음에는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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