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 때부터 서울에서 산 나는
신기한 것을 보면 못참는
무역회사에 다니시는 아버지 덕분에
그 시절에는 흔치 않았던 기억이 많다.
그 한 예로 연탄불에 올려놓고 사용하는
재래식 오븐이 있어서
식빵을 자주 먹을 수 있었는데,
아버지께서는 휴일이면 무슨 거사를 치르듯
번잡스럽게 식빵을 만들어 주시곤 했다.
한참을 부풀린 반죽으로 동그랗게 만들어
버터를 바른 빵틀에 세 개를 넣고
오븐에 구워내면 따뜻하고 노르스름한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빵을
먹을 수 있었다.
한참을 그 빵만들기에 열중하시던 아버지께서는
새로 나온 국수틀이 들어오자
그것으로 만두피 만들기에 빠지셔서
우리는 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시는 그 납작한 반죽을
커다란 도마 위에 놓고 작은 주전자 뚜껑으로
만두피 찍는 일을 해야 했다.
카메라- 유치원 입학을 시작으로
내 멀고도 험한 학문의 길에
소풍 때면 어김없이 등장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흔적을 남겨 주었다.
아버지께서는 나를 비롯하여 형제들 소풍날이면
결근을 하시고 소풍에 동참하셔서
우리 반 친구들 사진까지 찍어주셨는데
그 덕분에 초등학교 일학년 때 짝사랑한
우리반 반장 이규남의 사진이 오늘날까지
우리 친정집 앨범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버지께서는 풍선껌이 첫 선을 보였을 때는
아예 한박스를 사오셔서는
제일 크게 부는 사람에게
상품으로 한통을 주시기도 하셨다.
스케이트가 처음 우리집에 오던 날,
유난히 겁많던 나는 그 날카로운 칼에 베이기라도 할까봐
만질 엄두도 못내 결국 동생차지가 되고
동생들이 스케이트장에서 목도리를 휘날리며 노는 동안
나는 어묵꼬치나 먹으면서
동생들 신발지킴이 노릇이나 해야 했다.
그러나 몇해 후 죽을 각오를 하고 연습을 해
그 해 겨울방학은
스케이트장에서 개근상이라도 주어야겠다고 할 정도로
빠지기도 했다.
이런 일은 훗날 컴퓨터에도 해당되어
동생들이 근사한 홈페이지를 만들어놓고
이메일을 주고 받을 때도 엄두가 나지 않아
한동안 아웃사이더 노릇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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