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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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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추억


BY 그린플라워 2006-08-26

두 살 때부터 서울에서 산 나는

신기한 것을 보면 못참는

무역회사에 다니시는 아버지 덕분에

그 시절에는 흔치 않았던 기억이 많다.



그 한 예로 연탄불에 올려놓고 사용하는

재래식 오븐이 있어서

식빵을 자주 먹을 수 있었는데,

아버지께서는 휴일이면 무슨 거사를 치르듯

번잡스럽게 식빵을 만들어 주시곤 했다.

한참을 부풀린 반죽으로 동그랗게 만들어

버터를 바른 빵틀에 세 개를 넣고

오븐에 구워내면 따뜻하고 노르스름한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빵을

먹을 수 있었다.



한참을 그 빵만들기에 열중하시던 아버지께서는

새로 나온 국수틀이 들어오자

그것으로 만두피 만들기에 빠지셔서

우리는 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시는 그 납작한 반죽을

커다란 도마 위에 놓고 작은 주전자 뚜껑으로

만두피 찍는 일을 해야 했다.



카메라- 유치원 입학을 시작으로

내 멀고도 험한 학문의 길에

소풍 때면 어김없이 등장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흔적을 남겨 주었다.

아버지께서는 나를 비롯하여 형제들 소풍날이면

결근을 하시고 소풍에 동참하셔서

우리 반 친구들 사진까지 찍어주셨는데

그 덕분에 초등학교 일학년 때 짝사랑한

우리반 반장 이규남의 사진이 오늘날까지

우리 친정집 앨범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버지께서는 풍선껌이 첫 선을 보였을 때는

아예 한박스를 사오셔서는

제일 크게 부는 사람에게

상품으로 한통을 주시기도 하셨다.



스케이트가 처음 우리집에 오던 날,

유난히 겁많던 나는 그 날카로운 칼에 베이기라도 할까봐

만질 엄두도 못내 결국 동생차지가 되고

동생들이 스케이트장에서 목도리를 휘날리며 노는 동안

나는 어묵꼬치나 먹으면서

동생들 신발지킴이 노릇이나 해야 했다.

그러나 몇해 후 죽을 각오를 하고 연습을 해

그 해 겨울방학은

스케이트장에서 개근상이라도 주어야겠다고 할 정도로

빠지기도 했다.

이런 일은 훗날 컴퓨터에도 해당되어

동생들이 근사한 홈페이지를 만들어놓고

이메일을 주고 받을 때도 엄두가 나지 않아

한동안 아웃사이더 노릇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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