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잘 길러 주시오.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으로 말이오. 사람 냄새가 그리운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르오. 메마른 세상 우린 사람으로 남읍시다."
"사람 냄새가 그리우며 또 만납시다."(소설 아버지에서)
책을 덮고 커피 추출기에서 내린 검은 액체를 목 안쪽 깊숙이 밀어 넣었다. 다 토하지 못한 서러운 사연이 아직도 피 속을 흐르고 있었던 것일까?
목 줄기를 타고 울컥 뜨거운 덩어리가 올라온다. 나직하게 불러본다. 그러나 대답은 언제나 메아리로 돌아온다. 내가 부르면 언제나 대답해 주실 줄 알았는데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은 많은 부분 포기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끝없이 바른 길로 보이던 내 앞길은 수정이 불가피 하였다. 생존을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려야 하는 사회 생활은 내 어깨를 짓눌렀다. 촌티를 벗지 못했기에 서툴기만 했던 회사 일은 실수의 연속이었고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고개를 빳빳하게 세웠다. 그럴수록 안으로의 내 생활은 점점 무기력해만 갔다.
보호막이 있을 때에는 곧게 뻗어간 길로만 가면 되는 줄 알았다 . 그러나 낯선 곳에서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 하던 나는 도시의 밝은 불빛을 끊임없이 불안해했다. 불도 켜지 않은 방에서 블랙 커피를 마시며 하루가 지나감을 안도했고 내일이 오는 것을 겁냈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나는 사소한 일에도 감정을 낭비하게 되었고 사사건건 직장상사와 동료와 부딪쳤다. 그것에 비례해서 부서 순례만 늘어갔다. 미스 任에서 자리에 없을 때는 저 xx로 통했다. 직장 동료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이미 구제 불능이었고 저 웬수덩이였다.
여자가 말이야 여자다워야지, 선머슴처럼 극성스러워 될 일도 안 된다고,그 날도 옆자리 동료와 사소한 언쟁 끝에 말 매를 늘씬하게 두드려 맞게 되었고 등사기 앞에 서야 했다. 기회를 잡은 듯 질책이 아닌 악담을 퍼붓는다. 차라리 귀를 막고 싶었다. 인간 관계를 매끄럽게 했다면 내 이런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커피 심부름도 즐겁게 하며 내 책상 닦을 때 옆 책상도 닦아주었더라면, 아니 웃음 띤 얼굴로 슬쩍 볼펜을 집어 가는 손도 못 본 척 했더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내 모습이 한심했고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난 것이 서러웠다. 여직원을 하나의 인격체로 봐 주지 못하고 남자직원을 위한 종속된 물건 정도로 생각하는 그릇된 생각에 도전했던 나의 완전한 참패였다. 그걸 인정하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입술을 물고 서투르게 등사를 시작했다. 이런 일은 거의가 남자 직원의 몫이었다. 로울러를 밀자 복사 본 종이가 한 장씩 나온다. 인쇄된 종이를 하나씩 집어내면서 아버지를 원망했다. 갑자기 감정이 격해지며 눈물이 나온다.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로울러를 움직였다.
'아니 여자 분이 이런 일도'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순간 나는 따귀를 한 대 올려 볼까, 호흡을 크게 하고 천천히 고개를 들고 보니 전혀 낯선 얼굴이다. 아니 가끔 기술부장 차를 운전하던 이였다. 장난기가 눈매에 그렁그렁 매달린 듯한 선한 눈과 마주치는 순간 무엇에 홀린 듯 주섬주섬 하던 일을 정리하고 등사기가 있던 기술부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는 오후의 일을 잊을 만큼 서류 정리로 바빴고 출발 직전의 통근 버스를 겨우 탈 수 있었다. 버스 안은 만원이었고 나는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해 이리저리 밀리고 있었다. 옷을 당기며 자리를 권하는 사람이 있었다. 등사기 앞에서 만난 그였다. 화해를 청하며 잘 지내보자고 손을 내밀며 저녁을 사겠다고 했던 옆자리 동료의 호의도 거절하던 내가 그가 내준 자리에 무너지듯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70년도 후반 공과대학 졸업생이 최고로 대접을 받던 때가 있었다. 그 시기 대학 졸업반인 Y가 실습생으로 기술3계에 들어왔다. 그의 본연의 업무는 실습생으로 업무 보조가 주목적이었는데 기술부 출장 길에 운전기사 역할을 자처하는 날이 많았다. 지금은 자가 운전이 일반화되었고 집은 없어도 자동차는 없으면 안 되는 필수품이 되었지만 그때는 차도 귀했지만 운전기사도 턱없이 부족했다. 회사에서는 부장직급부터 업무용으로 차를 내주었는데 운전할 사람이 없어 차를 세우는 날이 많았다. 업무가 급할 때는 영업용 택시로 외부 일을 보기도 했기에 그의 운전 면허증이 진가를 발휘했다.
오래지 않아 버스는 기착지에 섰고 나는 자릿세 명목으로 커피를 사야했다. 내 것 이라고는 없는 세상이라며 편견과 아집으로 철저하게 계산하고 주판알을 퉁기며 사는 일로 힘들어하던 내게 Y는 세상은 살수록 살아 볼만 한 가치가 있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낙천적인 성격으로 급할 것 없는 느긋함으로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던 Y는 매사에 꼬여 있어 현실을 바로 읽지 못했던 나를 안쓰러워 했지만 가진 자의 배부른 폭력이라고 무 자르듯이 말을 잘랐다. 매몰찬 나의 반박에 정나미가 떨어 질만도 한데 아랑곳하지 하지 않았다.
공장 안 출입이 여직원에게는 금기시 되었던 까닭에 생산라인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내게 열악한 작업 환경에 대해 말해 주기도 했고, 언제 어느 순간에 안전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어려운 환경에서 맡은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기능직 사원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사는 모습은 다르지만 그들이 있어서 세상은 아름다운 거라고 했다.(그 시기 나는 관리부에 있었다. 하는 일은 기능직 사원들의 월급계산이었는데 늘 목소리를 높였다. 좋게 말해서 그렇지 싸움이었다. 간조(월급)날이 6일이었는데 7일부터 카드를 들고 와서 일한 시간이 잘못 계산되었다고 언성을 높이는 사람이 많았다. 개인별 카드가 있어 카드체크기에 집어넣어 자동으로 시간이 계산 되게 하였는데 잔업근무나 철야근무에는 수작업을 하는 경우가 있어 더러는 일한 시간이 빠질 때가 있었다.
Y가 내게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들여 주었던 것은 일한 시간계산을 신축성있게 계산해서 그들의 마음을 살펴주라는 뜻으로 말을 했겠지만 나는 인간적이지 못하고 기계에 많이 의존하였다.
생각해 보면,
Y는 심리적으로 내가 어려웠던 시기에 힘이 되어 주었지만 고맙다는 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정작 해야 할 말은 입 속으로 다시 밀어 넣으며 그 도시를 떠나왔다.
이곳에 와서는 소중한 사람 하나를 잊고 살아야 한다는 상실감으로 얼마간 마음 잡지 못하고 비척거렸다. 늘 원망의 대상이었던 아버지도 사람냄새가 그립다는 것을 알게 해준 사람도 지금은 너무도 멀리 가 있다.
추출기에 남아 있던 커피를 따라 잔에 채우고 하늘을 본다. 오랜만에 나온 겨울 햇살에 눈이 부시다. 오늘은 사람냄새가 나는 이와 마주 앉아 수다 라도 떨고 싶다.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