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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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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를 너무 믿지 마셔유~~


BY 천정자 2014-03-19



요즘 내가 우리집 일도 아니고 남의 집 일에 얽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다니느라 좀 바쁘다. 남편은 나에게 종종 잔소리를 한다. 


" 죽을 짓을 하는지 살 짓을 하는지 잘 알아보라고!"


 어제 아침엔 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어디가냐고 묻는다.

나는 아무 말을 안했다.

대신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 당신도 정형외과에 입원 하고 싶은 겨?" 했더니

무슨 대답이 그 모양이냐고 성질 낸다.

" 요즘 오십대 남자들이 정형외과에 많이 입원한다는데?"


남편이 궁금하듯이 여긴 눈도 많이 안왔는데 미끄러져서 입원할 일은 아닐텐데

사고로 입원하는 남자들 아녀? 이런다.


" 흐흐흐 그게 아니고 마누라보고 어디가냐고 물어봤다고 맞은 남편들이랴..."


넘 어이 없는 대답에 남편 기가 막힌 표정이다.

그럴만도 하겠지.


 

원체 게으른 마누라인 나는 다큐나 뉴스만 보고 남편은 뉴스만 안보는 드라마만 시간대로 골라 시청하는 광팬인데 부부인데도 취미나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쩌다가 같이 드라마를 같이 보려면 남편은 드라마 해설자가 된다. 나는 처음 본 드라마고 남편은 처음부터 본 드라마니 줄거리며 일일히 다 설명을 해주는데 남편의 목소리나 작아야지 도무지 탈렌트 목소리가 안들린다.

" 저 년이 나쁜 년이여~~~"


 아이구 저걸 어쩌냐 바보 같이 당하기만 한다고 스포츠 축구 보는 남자들 코치에 감독에 해설까지 다하는 남자들과 별반 다를게 없다. 탈렌트 이름을 잘모르는 나는 그렇다 치고 남편은 한 번 악역으로 나온 탈렌트들은 년이나 놈에 나쁜 단어를 붙이면 그만이다. 한 번은 아들하고 드라마 본 적이 있는데 아들이 그러더란다.


 " 아빠가 작가 혀~~!"


 


원래 말이 많은 남편이 한 살 한 살 나이가 늘면 늘수록 더 늘어가는 것이 잔소리다.

같이 있다가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더니 니가 왠일이냐 물을 다 마시냐고 하질 않나.

화장실가서 나왔는데 불을 왜 안 끄냐고 난리고 마누라  일거수를 다 지적질에 내 귀가

따갑다. 다른 집은 얼마나 깔끔하고 정리도 잘하는데 너는 시집 온 지 수 십년이면 뭐하냐 뭐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뭐있냐고 그 줄거리도 어쩜 드라마를 하도 봐선가

어디 방송국에서 출연요청 안하길 다행이지 진짜 줄줄 외우는 그 잔소리 줄거리가 추가 추가다.


 아파트로 이사오니까 또 나에게 주문을 걸 듯 잔소리하는데 쓰레기 분리수거를 니가 한 번이라도 버린적이 있냐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한 번도 없다고 했더니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하란다. 반성문 쓰라는 말보다 더 웃믐만 나온다. 진짜 남편 말대로 가만히 생각해보니 분리수거날도 아직 모른다. 이사오기전에도 아파트로 이사와서도 그 동안 알아서 남편이 다 해줬으니 고맙다고 말은 할 수 있지만, 하도 집 바깥으로 나가는 날이 더 많은 마누라를 믿고 있으면 집이 쓰레기장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살림도 나 혼자 하는 것은 아닌데, 자잘구레 표시도 안나는 일들이 안하면 더 크게 일이 벌어지는 것이 어디 한 두가지가 아니다. 애들 다 크니까 달랑 둘만 남은 집에서 맨날 서로 잔소리좀 그만 하라고 싸운다. 나중엔 그 잔소리 듣기 싫어서 집을 일부러 나와 내 볼 일도 아닌데 쓸데없이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 그렇게 집에 들어가면 왜 이렇게 늦게 돌아다니냐고 또 잔소리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 잔소리가 안들으면 참 좋을 것 같았는데, 어느정도 좀 필요한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생길 지 짐작도 못하는 것이 사람 일인데, 혹시 내가 먼저 세상 떠나 남편 홀로 남게 되면, 재혼을 하지 않은 이상 천상 혼자 살 때 살림을 못하면 자기만 아쉽고 답답할텐데, 먼저 떠난 외할머니 무덤 앞에서 울었다는 외할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나든 남편이든 가는 순서 모르는 것이고, 누구랄 것 없이 다목적 전천후 냉장고처럼 혼자서도 잘하고 잘 살아요 하고 살아야 할 생활을 계속 해야 하는데, 굳이 역활부담을 법으로 만들어 놓지 않은 이상 그냥 상황맞춰 사는 것이 제일이다 싶었다.


  남편에게 이젠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하지 않을련다. 남편이 살아있으니까 게을러 살림 잘 못하지, 말도 징그럽게 안듣는 마누라인 나에게 할 수 있는 권리정도라고 인정하기로 했더니 이젠 귀가 따갑게만 여겼던 잔소리들이 그저 물 흐르는 소리로 들린다. 그러려니 인정하니까 다 지나가버리더라는 그 세월이 왜 약이라고 했는지 느낌이 온다.


 

나보고 어디가냐고 물어봐도 친절히 언제 올 거라고 대답도 해주고,

그래도 내가 남편보다 못하는 거 솔직히 더 많은데 이젠 잘 해볼려고 마음은 먹었지만 

잘 안된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몸은 안 따라준다고 하더니 말만 쉽다.


 남편보고 그랬다.


 " 혹시 내가 먼저 가면 당신 혼자라도 잘 살다가 올려면  나를 너무 믿지 말어!"
내 말을 듣던 남편이 나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가자미 눈처럼 한 쪽으로 쏠리더니


 " 믿긴 뭘 믿어? 나갈 때 쓰레기나 가지고 나가다가 버리고 가?"

그러지요.

근디 쓰레기통이 어느쪽에 있냐고 물어 볼려고 하다가 말았다.

아무래도 또 잔소리 할까 귀찮아서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