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지 이십년 하고도 삼 년이 지났다. 어쩌다가 얼렁뚱땅 살다가 당신말야 이 년도 아니고 이 십년이 지났다고 타임아웃 당해도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그러니까 지금보다 더 젊어 혈기가 왕성할 땐 당연히 목소리 크고 유난히 집중력 희박하고 산만한 아들 키우다 보니 나도 덩달아 좌충우돌 천방지축에 툭하면 욱하는 성질머리가 제일 드쎈 싸움 대회 나가면 우승 놓쳤다고 팔짝 팔짝 뛰어 다녀도 시원찮았을 것이다. 나는 결혼 하기 전에 친한 친구 네 명이 있었다. 그 중에서 나는 제일 못생겼다. 그레서 친구들이 걱정해 준 것은 내가 결혼을 못하면 어떡하냐 이런 걱정의 주인공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못생긴 순서대로 결혼을 하더니 제일 이뻣던 친구는 아직도 미혼이다. 사람 일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지만, 이 친구 아직도 이쁜데 왜 결혼을 안 했는지 못했는지 묻는 것도 솔직히 친구라도 부담스런 입장이 된 것이다.요즘은 이 친구가 나만 보면 부러워 한다. 못생긴 거 이쁜 거 결혼하는데 조건은 잠시뿐이고 결혼 생활 시작 할 땐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내가 증명한 셈이다. 결혼 해서 제일 처음 나에게 곤란을 겪게 한 것은 바로 고부 갈등이었다. 진짜 뭐든 공부를 하고 연습을 하고 훈련을 해서 했던 결혼이라면 문제가 쉬운 해결점을 찾아냈을텐데, 이 결혼은 정말 맨 땅에 시속 100km로 헤딩을 하면 내 머릿통이 어떻게 된다는 것은 보나마나다. 특히 나의 시어머니는 당신 입장에선 전혀 잘못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고, 지금도 그렇게 사시는 분인데, 어머니하고 대립을 할 땐 내 편인 줄 알았던 남편이 진짜 남의 편이 되어 둘이 합쳐 공격을 하니 이거 정말 내가 왜 결혼을 해서 이런 기가 막힌 전쟁을 하나 싶었다. 그렇게 칠 년을 전쟁 치루듯 살다보니 이건 내가 누구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뭐하러 이 세상에 태어나 밥을 먹고 있을까 남들 보니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유독 이런 못 된 사람들 만나서 지지리 궁상을 떨고 살고 있나 자책을 하다가 덜컥 우울증에 걸린 것이다. 남편은 자신의 어머니 애기만 끄내도 무슨 트라우마에 걸린 것인지 소리소리 지르고, 도무지 대화가 되지 않았다. 거기디가 애들도 아펐다.이래 저래 우리집에 나는 우울증에 걸리고 애들은 애들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상처 투성인 줄 모르고 나는 남편에게만 책임전가를 함부로 해 대었다. 돈도 못 벌고 배운 것도 없는 주제에 뭐하러 결혼해서 여러사람 고생 시키냐고 하도 해서 잔소리라고 결국은 하다 하다 못해 별거를 제안 했었다. 아마 결혼 한지 십 년 즘 지나서 그렇게 됐는데, 우연히 아줌마 닷컴에 들어와 이 글 저 글 눈으로만 보다가 나도 한 번 내 애길 써볼까 하는 심정으로 쓴 것이 남편 흉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오래 전에 쓴 글 읽어보면 지금 별 것도 아니었구나 하고 지우고 또 쓰다보니까, 갑자기 남편의 집, 즉 나에게 시댁에 대한 관심이 증폭이 되는 것이다. 과연 시어머님과 시아버지의 결혼 생활은 어떻게 살으셨나 어쩌다가 지금도 당신들은 부부싸움 하는데,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았던 남편은 과연 무엇을 느꼈을까 ? 이런 저런 사연들도 무지하게 많았을텐데 시간을 두고 천천히 탐정처럼 알아보고 조사를 해도 괜찮겠다는 것이다. 당장 이혼이야 말로는 백 번을 해도 하루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 도루묵 같은 일상들이 더 기가 쎈데,지금은 결혼도 법으로 하고 이혼도 법으로 한다는 것을 안 이상 나는 뒤늦게 남편에 대한 조사아닌 관심으로 시선을 바뀌었다. 조사한 결과 남편은 아버지는 살아 계시는데 아버지 없이 산 애비없는 자식이었던 나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시아버지는 해외인 사우디 아라비아에 나가 돈을 버는 그 수 년 간에 시어머니는 홀어머니 처럼 남편을 키운 것이다. 아버지가 부재중인 가정환경은 솔직히 본 것 없는, 배운 것 없는 그냥 밥만 먹고 사느라 보낸 세월만 있을 뿐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은 나는 몸으로 채득해서 잘 안다. 진짜 부인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런 가정환경은 아버지가 부재 중인 만큼 강인한 모성애가 있어야 하고 투철한 교육관이나 가치관을 갖고 있는 어머니였다면 어느 정도 이끌어 줄 수는 있겠지만, 괜히 부모 자리가 따로 있나 따로 국밥과 같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가정 환경에서 남편 뿐만 아니라 시동생들 모두 그렇게 자란 성장 배경을 알고보니 나에게 뭘 잘 해달라고 요구해도 방아 본 적 없는 그런 형태 없고 들은 적 없는 것을 요구하니 남편 입장에선 적반하장도 유분수였던 것이다. 어쨋거나 이런 상황을 결혼한지 십 수 년만에 알아봤으니, 늦게 그 세월동안 참 무식하게 살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 좋아서 몇 년을 연애만 해도 절대 모를 결혼생활은 많은 구성성분을 바탕에 깔아 두고 두고 요긴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별거를 제안했다가 이런 상황을 깨닫고 난 후 나는 철회를 했다. 그리고 말없이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돈도 많이 버네 못 벌었네 그런 말 일절 하지 않았다. 돈은 내가 벌어 써도 괜찮고 못 벌면 못 버는데로 그리고 남자나 여자나 밖에 나가 남의 돈 그냥 집어 오는 것보다 남의 주머니에서 당당하게 정당하게 받아 오는 것이 얼마나 떴떳한 것인지 알아야 사람 좀 됐네 싶었다.능력이 있네 무능력자이니 이런 잔소리 안하니까 집안이 너무 조용할 정도였다. 신혼 땐 남편이 나에게 반찬투정하다가 상을 번쩍들어 마당에 내 팽겨쳤던 성질머리 엄청 셌던 조폭마누라가 말이 없어졌으니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남편은 나를 그 때보다 더 무서운 마누라로 생각 했을지 모른다.나 일곱 살 때 아버지 일찍 돌아가셔 혼자 키운 울엄마 때문이라도 있는 남편 잘 살펴 나라도 잘 데리고 살자 이렇든 저렇든 상황판단 끝났으면 두 번 다시 잔소리 할 필요 없고 확인도 할 것없이 내가 이 남자랑 결혼 했으니 한 쪽이 명이 다하여 죽을 때까지 법으로 결혼한 것 아닌가에 정말 나에게 책임을 엄중히 자문한 것이다.한 번 이혼하고 두 번 결혼했던 내 친구 그대로 말한다면 " 처음이나 두 번이나 그 놈이 그 놈이더라" 나는 이 말에 100% 공감을 한다. 맘에 안든다고 바꾼 옷이 처음 맘에 든 옷보다 덜 입게 된다는 것과 같다. 그 토록 나에게 시집살이 시키셨던 시어머니 이젠 내 눈치를 살살 보신다. 나는 어쩌다가 맏며느리에 외며느리가 되버렸다. 나에게 했던 시집살이를 다른 동서들에게도 차례대로 하니 요즘 세상에 누가 그런 걸 다 받아주나 나간다는 말 없이 세 며느리들이 사라진 것이다. 얼떨결에 나만 남았는데 때 아닌 귀한 며느리가 되버렸다. 달리 효부인가 아들과 헤어지지 않고 가정만 지켜줘도 고마운 세상이 올 줄은 시어머니는 상상을 했을까 싶다. 꼭 말을 해서 맛이 아닌데 집어 줘도 잘 모르는 사람들 보면 남의 일이 아닌 것 같고, 내 오지랖만 평수가 넓어졌으니 이 것도 내 복이려니 한다. 이렇게라도 노력을 해도 나는 이혼을 해야겠다 결심을 하면 해야 한다. 사람 싫은 거 무서운 호랑이보다 더 싫다. 지금은 같이 사는 방법도 학원가서 배워야 하는지 모른다. 어울렁 더울렁 더불어 사는 것도 복이라면 복이다. 혼자 사는 것이 쉬워요 하는 시대인 만큼 따라야 하는대 문제는 돈이다. 돈이야 당연히 결혼 생활에 전부는 아니지만 아주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돈을 쓰는 주체가 과연 누구냐 남편이냐 아내냐 이런 편가르기도 함께 결혼 생활 하는 동안 같이 살 땐 잘몰라도 한 쪽에서 채워주고 이끌어 주던 것이 오롯히 혼자 겪는 문제들이 첩첩산중이다. 얼마 전 운전 할 때 네비를 틀고 가던 길을 네비가 안되니까 길을 물어 물어 간 적이 있었다. 혼자서도 잘해요 길을 잘 찾으려면 자꾸 연습을 해 둬야 한다. 요즘 남자 밥 못하면 희안한 사람 되듯이 여자도 마찬가지다. 너무 세상이 좋아서 기능도 기계 다루는 것도 배워야지 남자 몫 따로 없다. 남녀 성분 가르면 진짜 나만 피곤해진다. 결혼을 해도 돈이 들어가지만 이혼을 해도 돈 엄청 들어간다. 변호사들 일거리만 무진 많다. 우선 당장 절차를 알고 순서를 밟아 곳곳에 숨어 있는 함정들이 더 이혼하는 것보다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이 사실이다. 나이 든 황혼이혼은 자식들 분쟁과 다름이 없다. 나 같으면 남편에게 겉으로 한 일 년 잘해주다가 속으론 법공부를 하면서 차근차근 준비를 하다가 느닷없이 이혼서류 내밀면 이게 진짜 복수다운 복수다. 어디 드라마에선 누가 그랬다는데. 그러니 이래도 한 세상이고 저래도 한 번 뿐인 내 인생 천천히 알아보고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으로 심사숙고 해야한다. 사람으로 살다가 가는 것이 뭐 이리 육이오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