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해가 뉘엿뉘엿 산 넘머 넘어 갈 무렵이면 얼른 저녁 먹고 슬슬 하루를 정리하듯 잠자리 들 준비를 한다. 옛날 어느 코미디언이 잠자리 들 준비하셔요 그 시간이 아닌 좀 이른 9홉시만 되면 눈이 풀리고 스르르 베개를 끌어다 안는 것을 남편이 옆에서 나를 쬐려본다. 아무래도 나는 신석기나 구석기땐 너무 했고, 천상 농경시대 시골에서 살던 전생이었을 것이다. " 잠이 그렇게 오냐? " 이젠 남편도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그 때 내 스마트폰이 드륵드륵 떤다. 보니 작년인가 재작년에 마지막 통화를 했었던 잘 아는 언니다. 아홉시 되면 잠자는 나를 잘 아는 언니가 웬일로 전화를 한 것을 보니 뭔 일이 났나 싶었다.전화를 받은 나에게 지금 자냐? 이러신다. 이미 전화 받은 나는 지금 전화받고 있지유 했다. 통화 좀 할 수 있냐고 하는데 목소리가 심상찮다.옆에 있는 남편 때문에 얼른 작은 방으로 옮겼다. 통화 괜찮다고 하니 언니가 울먹이신다. 왜그러냐고 하니 형부랑 대판 싸웠단다. " 언니 그럼 또 맞았어?" 불숙 내 질문이 먼저 튀어 나왔다. 삼년 전에 육이오 때 난리는 난리가 아닌 것이, 부부싸움이 동네 싸움되서 경찰 오고 잡혀가고 밤새 유치장에 있던 형부를 또 가서 물건 찾아 오듯이 이틀을 보냈으니 나도 그 사건 후로 언니한테 많은 것을 알려주게 되었다. 나도 울 남편을 두 번이나 경찰에 신고한 마누라고 여편네다. 언니처럼 제대로 맞기나 했으면 신고 할 법도 했겠지만, 첫 번째 신고사유는 여름에 반바지를 입었는데 남편이 휘두른 몽둥이에 왼쪽 허벅지에 슬쩍 스친 것이 붓는 것이다. 그 땐 핸드폰이 pcs라고 초창기 손전화였는데, 나는 내 다리를 보고 아픈 것보다 맞은 것이 넘 억울하여 그냥 112를 눌렀다. 지금도 그러겠지만 신고를 하면 저절로 파출소엔 이 gps가 뜨나 신원확인하고 바로 출동하는데 진짜 딱 2분만에 백차가 우리집앞에 서 있는 것이다. 부부싸움 하다가 긴급출동한 경찰 백차에 실려 가는 동안에 숨도 제대로 고르게 쉬지 못했다. 백미터 뛸 때 그런 숨을 쉬는데 파출소 안에 들어가니까 남편은 조사실로 데리고 들어가고 나는 밖에 서있는데 순경이 나를 보고 하는 말이 " 맞은데가 어디세요?" 말투라는 것이 꼭 전부는 아니지만 그 뉘앙스가 있는 법이다. 그 뜻은 눈텡이가 밤텡이가 되어 시퍼런둥둥 멍들었거나 엠블런스에 실려가서 응급실 갈 정도로 맞아야 한다는 느낌이 확 드는 것이다. 하다못해 놀라셨다거나 괜찮냐거나 다친데 다른데 없냐느등 확인은 못할 망정 말투가 비아냥 거리듯이 나에게 물었으니 있는데로 남편에게 화난 것이 이젠 순경에게 불처럼 옮겨 붙어버렸다. 당장 파출 소장을 찾고 남편도 고소하겠지만 저 순경도 고발한다고 길길히 날 뛰어었다. 지금 이렇게 세월이 흐르고 보니 젊은 혈기가 좋긴 좋다.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할 짓을 했으니 말이다. 그 바람에 순경 때문에 파출소 소장 나한테 싹싹 빌고 사과는 남편한테 받아야 하는데 진짜 내가 파출소에 뭐하러 왔나 헷갈렸다. 나중에 파출소 소장이 그런다. 처음 신고들어온 가정폭력은 일단 훈방조치란다. 그 말에 나는 또 당신 내가 자다가 맞음 당신이 책임 질거냐고 소장 코 밑에 달려들어 따지니까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한다는 것이 가관이다. " 그럼 몇 시간 동안만 파출소에서 데리고 있겠습니다" 어쩔 수 없단다. 현행 법이 그렇단다. 법이 그렇다니 나도 기가 막혀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첫번째 신고를 하는 바람에 몇 년은 나에게 남편은 부부싸움을 할 때 전화부터 치웠다. 남편도 순둥이 같을 줄 알았던 마누라가 한 번 터지면 막아내지 못하는 다혈질 제대로 걸린 여자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다 몇 년을 조용히 보내다가 두 번째 신고는 더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느닷없이 아이들하고 나하고 당장 집을 나가란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아이들 데리고 나와 또 신고를 했다. " 남편이 애들을 데리고 나가라고 하는데 언어폭력으로 신고합니다" 했더니 이 번에 단 오분만에 경찰이 두 대나 달려왔다. 남편은 어리버리 실려가고 나는 애들과 따로 다른 백차로 경찰서에 가게 된 것이다. 결론은 나중에 남편이 그런다. 이 여편내는 신고쟁이라고 동네 방네 소문 낸다고 하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다. 시골동네 내가 말을 안해도 소리소문 엄청 지금의 광대역보다 퍼지는 속도는 빠르다. 그 때만 해도 이혼을 해도 여자는 죄인이고 남자는 또 장가를 가도 떳떳한 때였는데, 넓은 도시도 아닌 몇 호 안되는 시골동네 여자들은 남자가 나가라면 꼼짝없이 당해도 싸다고 할 것이다. 그 사건이 있고 난 후 한 일 년은 내가 지나가면 눈치부터 달랐다. 저 여자가 지 남편을 신고 했다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흉을 보던 동네 여자들이 슬금슬금 다가와 자신도 맞고 살았다고 어떻게 하면 좋냐고 자문을 구하는 것이다. 진짜 세상 오래 살고 봐야 한다. 매번 당하기만 하면 얼마나 억울할까 . 역지사지가 괜히 생긴 말이 아닐 듯 싶었다. 그 때 그렇게 도와 준 아줌마들 중에 한 분이었던 이 언니가 한 밤중에 전화를 했으니 그렇게 물어 볼 수 밖에 없었다. " 맞긴 이젠 못 때리지 한 번 더 그런 일이 있음 구속인 걸 지가 더 잘알고 있는데" 전화 한 이유는 이혼소장을 좀 대신 써 달란다. 도저히 저 화상 같이 살다가 내 명에 못 살겠단다. 나보다 열 살 연배이고 돈도 좀 있으시고 자식들 다 키웠으니 이젠 같이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같이 있으면 있을 수록 병만 더 날 것 같다는 언니의 하소연에 같은 여자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부부가 같이 살면서 안 싸우고 갈등없이 지낸다는 것이 거짓말이 될 것이다. 당장 대답은 원하지 않는단다. 어디서 내 애길 들었나 보다. 내가 누군가 이혼소장을 써 줘서 깔끔하게 일처리를 해줬다는 애길 듣고 전화를 했단다. 이거 참 무슨 운명인가 싶다. 중매쟁이라고 직업은 아니지만 따로 이혼쟁이는 없을테고 대답을 하긴 해야 되겠고 진짜 고민이다. 어쩌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