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참 많이 바뻤다.
아침부터 하늘은 너무 낮게 내려앉아 곧 비가 내릴 표정이더니
저녁이 다 되서야 드디어 둑 터지듯 한바탕 소나기로 쏟아졌다.
갱년기 증세인가 뒷 목이 뻣뻣하더니 편두통이 또 시작이다.
웬만하면 이 나이즘 되면 통증도 그러려니 했지만
오늘은 낮은 기압 덕분인가 다른 날보다 심하다.
전화가 떤다. 발신번호를 보니 어릴 적 친구다. 얼른 받았다.
" 거기도 비오니?'
친구의 목소리가 이상하다. 목소리만 들어도 무슨 일이 생겼구나 묻지 않아도 느끼는 감은 정말 정확하다.
" 아직 안온다. 너 무슨 일있지? 목소리가 이상해?"
" 좀 길게 통회할 수 있어?"
괜찮다고 했다. 내 머리가 아픈 것은 내 사정이고 통화 오래한다고 설마 무슨 일이 생길 정도는 아닐 것이다.
" 남편이 회사에서 보증을 섰다!"
순간 나도 아무 대답을 못했다.
친구 남편은 회사에서 중역이었다. 친구는 전업주부다.
남편이 보증 선 것을 뒤늦게 알게 한 것도, 경매 들어온다고 법원에서 날아온 통지서를 받아놓고 어디에다가 전화를 할려니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는데 갑자기 내가 생각나더란다. "나 어떡하면 좋니? "
남편에게 배신감을 느낀단다.
큰 애는 군입대하고 늦게 난 늦둥이는 이제 고등학교 일학년이다.
나와 같은 한 해에 결혼을 한 친구다. 그래서 친구의 큰아들이 울 아들과 동갑이다.
당장 집을 알아봐야 하는지 그냥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단다.
나는 정말 말 한마디 대답도 없이 한 삼십분 그 친구 하소연을 들어 줄 수 밖에 없었다.
" 너 지금 어디니 집이야?"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진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아 온 친구의 인생에 최대의 고비라면 고비였다.
이런 상황에서 애기라도 들어줘야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울고 불고 난리다. 당장 돈이 얼마나 갚아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이런 상황을 나는 일찍감치 겪어 봤기에 이 친구의 마음을 모른다면 안된다.
아마 그런 일이 벌써 십 년이 지났다.
집안에 빨간딱지를 붙인 것을 보고 자고 일어나고 또 쳐다보는 그 생활을 한 삼 개월 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집 앞에 무슨 차가 그렇게 많이 주차가 된 것은 처음이었다.
건장한 어깨를 거들먹 거리며 나타난 남자들이 마당에 진치고 앉아 압류를 한 것이니 짐을 실어나르는데
한 가지 다행인것은 애들이 학교를 갔을 때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 온 아들은 어느정도 눈치를 챈 것 같았다.
밤에 자는데 아들이 그런다.
" 엄마 나중에 내가 돈 벌면 다 사줄께 너무 걱정마 알았지!"
그 땐 울거나 당황하거나 뭐 그럴 새가 없었는데 아들이 그 애길 하는데 그제야 내 얼굴에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나도 참 간사하다. 그렇게 큰 일을 까마득히 잊어 버리다가 친구의 전화에 이 사건을 이제야 이 글을 쓰게 될 줄이야 친구의 전화를 받고 보니 그 땐 나는
누구에게도 전화 할 엄두도 못 냈다. 하긴 나보다 더 남들이 더 잘아는 내 집안 사정이 일파 만파
다 번졌을텐데, 울 시집도 내 전화는 받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일을 친구가 겪을 차례인 것이다.
정신만 차리면 산다거나 희망을 놓지 말라거나 좋다는 애길 다 해줘도 그 일을 당해보지 않는 한 절대 모를 그 상황에 나도 무슨 말을 골라서 위로를 해줘야 할지 아픈 머릿속이 뱅뱅 돈다.
너무 길게 통화 했다고 나중에 전화 한단다.
그러자고 했다.
창가에 이젠 먹구름이 잔뜩 뭉쳐서 빗방울이 한 두 방울 툭툭 내린다. 무겁게 보인다.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 친구야 나에게 전화해줘서 고맙다. 우리 같이 기도 하자"
더 이상 어떤 단어로도 해소 할 수 없을 것 같아 같이 기도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 해보니 그 때 내가 그런 고난을 겪지 않았으면
지금의 나는 절대 없을 것이다. 행불행은 동시에 찾아온다.
그 고난을 겪어야 비로소 행복을 알아 본다.
큰 고난 뒤에 큰 행복이, 작은 고난 뒤에 작고 보잘 것 없는 행복이 늘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친구도 이제 살아온 날보다 더 성숙한 인생을 살아야 할 몫이 남았나보다.
멀리서 지켜보며 기도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