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인심도 옛날 애긴가 보다.
예전엔 여기저기 그렇게 흔한 달력 나누기가 이젠 내가 일부러 찾아 다녀도
그냥 얻을 수가 없다. 12월은 달력을 교체하는 달이기도 하지만 연말정산도 해야 하고
결산도 내야 하고 더불어 한 살 더먹었네 나이투정도 해본다.
동안 얼굴이 나이들어 보이지 않는 것이 요즘 대유행인데
내 얼굴은 못생겨서 한 살이라도 더 늙어보이나 보다.
내 나이보다 더 많이 보는 사람들보면 그 사람 눈이 정상이 아니여 속으로 눈치껏 째려본다.
탁상달력만 하나 어디서 구하긴 구해야 하는데 달력을 돈 주고 사 본적이 없어 영
어정쩡하다. 겨울 삭풍에 무릎시리는 계절에 긴긴 밤 동짓날도 지나고 그 때부터 노루꼬리만큼 해가 길어진다는 이 연말에 그동안 나는 일년동안 돈은 얼마나 벌고 얼만큼 썼나 연말결산도 자신만만하게 하지도 못하고, 거울을 앞 뒤로 돌려도 흰머리가 듬성듬성 어디서 샘솟는지 일일히 확인 할 일도 큰 일이다. 달력 사러가는 것 보다 염색약을 먼저 사러가야 되나 보다.
올 해는 강아지도 세 마리에서 한 마리 더 늘었다. 그런데 어떻게 주인처럼 못생긴 강아지를 얻어오냐 했더니 이름도 나랑 같은 곰퉁이로 하잔다. 그러니까 곰퉁이 원 투,, 나 원 참 그런데 진짜 곰처럼 강아지가 다리가 짦아 어기적 어기적 걷는다. 털도 성질 드센 불곰처럼 검다. 눈도 까맣게 나는 곰새끼요 이런 눈빛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려 너도 곰퉁이 투로 해라..이 눔이 양지바른 마당에서 잘노는데 걷다가 어떻게 잘도굴러 다닌다. 이름값 한다고 하더니 잘 걷다가도 맥없이 굴러다니니 딸내미가 한 마디 한다. 곰퉁이 진짜 곰이여?
그 말듣고 보니 진짜 곰인가 나도 다시 보자 이 강아지가 곰인지..
식구도 늘어나니 금방 떨어지는 사료도 사러가야 하고 내가 뭘 사긴 사야 하는데 그 품목이 영 떠오르지 않는다. 뭘 산다고
나가는 것은 휭하고 잘 나가면서 사오라는 것은 번번히 홀라당 다 까먹고 오는 통에 남편은 뭘 시켜도 영 시원치 않은 표정이다. 나중엔 전화질이다. 뭐 뭐 사와라 알았지 꼭!
그러면 뭐하나 그마저도 그냥 일한다고 늦었다고 빈 손으로 오기 일쑤니 도무지 신뢰를 줄 수가 없단다. 건망증 걸린 마누라 불안하게 기다리느니 차라리 내가 얼른 가서 사오는 게 더 빠르단다. 이런 상황도 벌써 몇 년인지 해가 갈수록 더욱 빈번하니 그려 아쉬운 사람이 급하게 샘 판다고 하더니 딱 맞는 말이다.
해마다 보신각 종소리가 전국적으로 연례행사가 끝나면 새 해가 시작되는 요즘엔 무슨 작심삼일용 다짐과 계획등을 짜는 것도 일이지만, 지난 1월에 무슨 계확을 무슨 꿈을 그렸는지 기억조차 좀 미안할 정도로 가물거린다. 앞으로 뭘 더 잘 할까. 애들 앞으로 무슨 계획을 세워 줄까등등. 하면 뭐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거 내놓고 싶어도 제대로 된 거 하나도 없다. 어떻게 이렇게 되는데로 막 그냥 살았나 싶다.
나이도 적금처럼 계돈 부으는 것처럼 그랬으면 좋겠다. 돈 많으면 자랑이라도 하건만 나이 많아지는 것은 자랑은 못하게 해 놨으니 그 이유가 분명히 있을텐데 말이다. 요즘들어 나같이 원치도 않는 것이 저절로 나이들어 버린 이 어른노릇도 제대로 해야할텐데, 그 자리가 아무한테 오는 것은 아닐텐데, 괜히 저절로 먹은 내 나이 앞에 어깨만 움츠려든다. 나이 들었다고 다 어른은 아니라는 어떤 어르신 말씀이 눈에 꼭 꼭 박힌다.
시간 앞에 세월 이겨내는 천하장사 없는데,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천방지축 내 맘대로 떠들고 목소리 키우고 사느라 내 모지람도 감추기 바빴다. 뭐가 그리 유별난 것도 없으면서 큰소리 못쳐서 안달이 난 적도 몇 번인지 모른다. 다 부질없는 것인데, 그저 내 맘이 편한게 내 인생의 목표를 수정해놔도 이상하게 변질된다. 시간이 흐르면 낡아지는 기억이나 목표도 어쩔 수 없나 보다.
봄에 고양이 나간 후에 고양이를 안 키우니까 또 천장에서 쥐들이 살판 났다. 염색약, 쥐약, 모기약 맨날 산다고 산다고 하면 약국가서 뭐 하나 꼭 빠뜨려야 직정이 풀리냐는 남편의 잔소리도 많이 들었다. 이젠 강아지 키운다고 개사료 사야 하고 천장에서 잘 사는 쥐 잡는다고 쥐약도 사야 하고 머리 염색약도 사야 한다. 건망증 걸려도 내가 못 챙겨도 꼭 필요한 것들, 내 생활에 활력소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것들이 어쩌다가 나를 거울 앞에 내 얼굴을 보노라면 또 다시 엉겨붙는 사소한 것들이 전부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데 인정 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다. 시간, 염색약, 밥, 건전지, 리모콘, 가끔 내 얼굴 읽어 주는 거울 뭐 이런 것들이 늘 주위에서 일년 열 두달 늘 끼고 사는 생활이 됐다
올 해도 몇 칠 안남았다고 시원섭섭한 얼굴로 달랑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