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장부가 장부처럼 한 권에 다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우리말로 된 외국어같다고 하면 딱 맞다.
도대체 이게 뭔 소리여..
이러다가 재무제표니 대차대조표니 현금흐름표니 뭐 이따위 서류들만 드려다보다가 막상 내 가계부를 쓰면 또 헷갈린다. 식비 부식비 문화비 생활용퓸 등등 가만히 들여다 보니 적요니 항목이니 계정이니 그런 말 하나도 안써도 이렇게 편하고 좋구만 뭐 누구 머리를 햇갈리게 하려고 만들었나 일부러 법까지 어렵게 만들어
여러사람 머리카락 빠질정도로 고통을 주냐고 항의를 하고 싶다.
대표이사는 현재 구치소에 수감중이고 아내이고 부인이고 남들이 부를땐 사모님인데
이 분이 내 말을 들으면 이해가 간단다. 그동안 부부라고 해도 회사의 제반상항을 전혀 애길 해주지 않았고, 심지어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부채가 얼마나 있었는지 조차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남 애길 듣는 것 같은 기분을 알겠냐고 나에게 하소연을 했을 땐
눈가에 울먹울먹이며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들엇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남편의 독단적인 행동에 실망을 많이 느꼈겠구나, 오죽했으면 남편이 긴급체포 되는 날 가족인 당사자들은 어디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을 한 달 간이나 하는 동안 잘 모르는 가족들을 오히려 사기를 치려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단다. 어려울 때 사람 알아 본다고 했다고 했더니 그 말이 딱 맞다고 한다.
어쨌거나 남편이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동안 부인이 운영하는 회사가 되었으니 싫든 좋든 이 재무를 알긴 알아야 겠는데, 차라리 월급 주고 회계사를 하나 고용해서 쓰던가 그런방법도 괜찮은데, 늘 건망증에 맨날 길 물어 보고 다니는 나에게 꼼짝말고 재무를 봐달라니 뭐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기냐고 하늘에 묻고 싶다. 그래도 당신보다 나은 거 아니냐고, 아무리 읽어도 머리가 딱딱 아프고,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어려운 단어들을 보면 그냥 빨리 남편만 돌아오길 학수고대한단다. 얼마나 고생스럽고 힘들었으면 가족에겐 전하고 싶지 않아 이렇게 했을까 이젠 이해가 간단다. 처음엔 남편만 원망했단다.
같이 산 세월이 30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해질 정도로 그만큼 남편이 혼자 고생한 것도 모르고 같이 살았다고 나보고 이해가 늦더라도 재무전반에 모든 상황을 조목조목 알려달란다. 충분히 사례는 해주겠다고 약속도 하신다.
이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지 한참 궁리를 하고 단박에 알려드린다고 해도 이해를 못하면 그건 또 당신 사정이고. 아이구 머리야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혹시 가계부는 쓰세요 했더니 한 번도 안썼단다. 너무 대답이 간단하다. 한 번도 안 써본 가계부와 어려운 회계장부와 무슨 관계냐는 식의 마뜩한 표정인 우리 사모님 얼굴보니 나도 할 말이 더 이상 없다. 오 마이 갓 나도 더 이상 물을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한 마디 했다.
" 오늘부터라도 오늘 집에서 쓴 돈 내역을 한 번 작성해보세요, 그게 가계부입니다"
하라면 하라는 데로 한단다. 그런데 그게 회사 회계장부하고 무슨 상관이냐 이러신다. 글쎄 그게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닌 사촌지간이라고 했다. 그 동안 살아오신 과정에 나에게 한 번도 오지 않은 그 많은 일들이 불현듯 이렇게 나타나서 언제 어떻게 무엇으로 나타날 지 모르는 게 사람일이다. 벌써 사모님하고 나하고 이렇게 마주 앉아서 반찬 반드는 법을 애기 하는 것도, 살림 잘하는 방법이나 연구한다고 해도 기막힌 일인데, 여태 아무상관 없는 이 회계장부가 일생일대의 사건이 되어 나랑 마주하라고 누가 알기나 했겠냐 나도 참 집에서 지금 쯤 다 익은 감 홍시 따먹고 저녁에 빨래 겉어 개고 아홉시 되면 잠자는 아줌마가 사모님이랑 이렇게 한 회사의 회계장부 때문에 사모님한테 가계부를 쓰라고 하면서 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내 말을 듣고 난 후 사모님이 한 참 말이 없다.
" 그 가계부 어따가 쓰는 거야?"
쓸 때야 많은데, 어디다가 쓰냐는 질문에 엉겁결에 대답이 나왔다.
" 우선 돈을 잘 써야지요..헤헤"
아이구 머리야 이거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나 원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