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옛날 기억은 너무나 또렷한데 방금 전에 생각했던 건 새까맣게 잊을 때가 종종 있다.
안방화장실 옆 화장대를 위한 등은 사용하고나서 끄는 걸 잊어서 남편에게 자주 잔소리를 듣는다.
잠시 후에 해야지 했던 일들은 못하고 넘어갈 때가 많다.
일하는 곳에 단체 카톡방에 퇴근메시지를 올려야 하는데 깜빡 잊고 밤중에 올리기도 한다.
제일 겁나는 건 인덕션이다.
오늘은 아침에 먹은 국이 아주 조금 남았길래 냉장고에 덜어넣기도 애매해서 끓여뒀다가 점심 때 먹으려고 인덕션 위에 올려놓고 열기를 6에 맞췄다.
잠깐이면 데워질 것을 두고 안방욕실에서 머리도 감고 머리말리고 눈썹까지 그리고 있는데 어디서 매캐한 냄새가 느껴졌다.
코로나19 앓고난 후유증으로 후각이 약해진 탓에 빨리 감지를 못한 거다.
어느 집에 불이 났나? 하면서 주방에 가보니 연기가 자욱했다.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로 냄비가 새카맣게 탄 것이다.
일단 인덕션을 끄고 온집안의 창은 다 열었다.
휴가나와서 제방에 있던 작은애가 뭔일이냐고 뛰쳐나왔다.
방문턱이 없는 대신 방문 아랫쪽에 연기가 새어들어갈 틈이 있는데 그방까지 침범한 거였다.
한달에 15000원씩 내는 온집안 전체 공기청정기도 용량을 초과해서 제구실을 못하는 지경이었다.
우리는 거실 큰창 방충망도 열어젖히고 밖을 향해 숨을 쉬고 있다가 오후에 출근하느라 제방에서 자고있는 큰아들이 생각났다.
작은애가 형 방에 가보더니 다행히 그 방은 괜찮다고 창문만 열어두고 나왔단다.
나는 유부초밥 좋아하는 아들들을 위해 유부초밥용 밥을 짓는 중이었는데 밥이 다 되었다는 알림음이 나왔다.
환기가 덜된 그 와중에 마스크를 쓰고 거실창 앞에 앉아 유부초밥을 만들었다.
소금간을 약간 하고 올리브유를 한스픈 넣고 다시마를 한장 올려서 밥을 지었는데 밥이 감칠맛이 돌면서 쫄깃했다.
까다롭기 짝이없는 두녀석이 군소리없이 사인분을 순삭 해버렸다.
이제 불에 뭐 올려두면 끌 때까지 옆에 있거나 타이머를 작동시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