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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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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고맙습니다


BY 천정자 2010-12-01

"아! 김장하러 갈 겨 안 갈 겨?"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울 남편 나를 쫒아 다니면서 한 말 또 하고 또 확인한다.

나는 얼른 대답을 하지 않는다.

말이 이 십년이지 그 시간을 따지면 이미 김장만 열 두번이 아니고

스무 번을 했다는 경력과 이력서에 써 먹어도 된다.

 

그런데 아무리 손에 꼽아도 한 열번은 해 봤나? 싶다.

워낙 살림치에 눈치 느려 둔치에다가 게을러 터진 며느리가 난데

해마다 철만 되면 내가 김장을 해주러 가는 것보다 얻으러 갔던 것이

더 많다.

 

울 시어머니는 나보다 더 살림치시다.

시어머니 자리에서 며느리가 나온다는 옛말에

우리가 딱 맞춤인 고부간이라고 시아버님이 그러셨단다.

 

그러니 김장 할 때 사실 준비하는 과정이 더 부산하고 번거로운데

어찌 된 일인지, 울 남편과 시아버님은 마늘도 파도  양파도 거기다가 실래기 같은 쪽파까지 다 까서 씻어 놓고, 배추도 다 절궈서 헹구는 것 까지 완벽하게 해 놓으시고

나를 부른다.

 

" 이제부터 니가 버무려라?"

" 예!"

 

아무리 생각해도 백포기가 넘은 그 많은 배추를 어떻게 다 속을 켜켜히 채워놓고

한 다라가 넘는 양념을 나의 갸날픈 팔뚝으로 비비냐고 내 투덜투덜 대는 소리에

남편이 고무장갑을 끼고 왔다.

 

생채를 써는데 어느 세월에 그걸 다 써냐?

이게 생채냐? 통나무냐? 핀잔을 어지간히 준다.

그래서 그냥  그럼 깍두기랑 배추랑 그냥 막 담글까? 했더니

" 그게 배추김치냐 깍두기냐? " 소리는 꽥 지르네..

 

긍께 내 마음대로 쓰는데 뭔 말이 그렇게 많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풀 좀 멀건하게 하고 주방에 냉장고 옆구리에 마른 다시마가 한 일년을 그대로 있는 것을

반을 뚝 짤라 큰 들통에 무우 댕겅댕겅 잘라 같이 넣고 냉동실에 뒤져보니 하도 오래 동안 보관되서 멸치가 부서지게 생긴 것을 몽땅 다 털어 육수를 팍팍 끓였더니 색도 맛도 시원하다.

거기에다 찹쌀 가루를 풀어 풀과 육수를 짬뽕시켜 버렸다.

그랬더니 울 남편 또 그러네

" 야! 그런 게 어딨냐?"

" 만들면 있는거지? 뭐 그럼 집에 있는 재료 쓰지 그냥 두면 뭐해 먹을려고?"

 

그렇게 만든 육수용풀을 식혀 고춧가루를 풀고 마늘 생강 파 양파 멸치액젓에 새우젓에  통나무같은 생채에 갓에 왕창

섞었는데 맛이 기똥차다고 햇더니 울 남편 별 말이 없다. 버무리고 난 후 배추를 한 개씩 한 개씩 하려니 이 많은 것을 언제 다 속을 채우나 고민인데 갑자기 나의 생각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배추속을 조금 묽게 해서 한 번에 배추 열 개를 비벼 버리니까 아이구 이거 일 도 아니네.

남편보고 얼른 주워서 김치통에 담그라고 했더니 이건 엉터리란다.

" 아니 김치가 맛있으면 되지 아니면 뭐 어쩔건데?"

하긴 내가 봐도 시장에서 보는 포기 배추김치는 한 장 한 장 사이 사이에 무우채며 갓이며 끼어진 것 하고는 좀 이상했지만 젓국이 다 배인 것이니 모양은 그렇다고 해도 맨 밑에 깔아두는 것에 뭐 그렇게 요란하게 다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한 번 배춧잎을 뜯어 먹어 보더니 맛은 괜찮은가 별 말이 없이

김치통에 주워 담았다. 맨 위에 올랴 진 김치에 조금 속을 채워 놓았다. 간간한 맛이 아래로 고일텐데. 맨 위는 고스란히 그냥 있을테니 속에 한 장 사에 쪽파하고 갓하고 버무려 오려 놓으니 금방 김치통이 꽉찼다.

 

나중에 보니 그렇게 네 통이나 담궜다. 우리집에 아직 김치 냉장고가 없어서 우리가 가져 갈 김치통에 소금도 사이 사이에 조금씩 뿌렸다, 조금 짜야 오랫동안 쉬어도 궁둥내가 안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올 핸 김장배추가 넘 비싸다.

싸야 한 통에 2000원이라니까 울 시집에 배추를 삼지 않았으면 배춧값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거기다가 고춧가루에 마늘에 양념값도 무진장 올랐는데 양념도 모두 아버님이 직접 농사를 지으셔서 정말 자급자족을 한 김장이었다.

 

이제보니 그 동안 내가 다른 사람의 공이 아니면 절대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돈을 주고 산 물건이라도 그걸 만드는 사람의 공이 아니면 절대 생산 할 수 없는 것들이 전부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몇 가지도 안된다. 먹고 쓰고 또 계속적인 소비활동을 해야 할 삶에 이렇게 여러사람의 공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 어머니 김치 잘 먹겠습니다. 인사겸 전화 한 통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