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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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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접수


BY 천정자 2010-11-12

남편이 생활비 한 푼도 안주고  젊었을 땐 한 인물값 내느라 바람만 피우고 돌아 다니다가

애들이 다 크니까 애들 명의로 핸드폰 요금을 안 내서 신용불량이 되니 아빠가 해 준 게 뭐냐고 따지는 딸 때문에 징징 울면서 나에게 전화를 한 친구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 하소연을  듣고 또 들어주고 그러다 끝내 만나서 소주에 삼겹살 앞에 두고 결국 이혼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남편역활이야 이미 애초부터 직무유기라고 하지만. 애들한테 입히는 피해는 정말 이건 안되겠다 싶었단다.

 

그렇게 힘들게 혼자서 자식을 키운 공로도 없이 아빠의 부재는 또 어디서 사고를 쳐서 명의상 가족관계에 피해를 당 할 때마다 뒷감당도 한 두번이고, 그렇게 어렵게 가르친 자식들 눈치 보는 것도 할 짓이 아니었다.

 

나 보고 이혼소송을 해야 하는데 이혼 소송도 돈이 든다고 하더라.

그리고 법률구조공단에 가서 물어 봤더니 뭐가 그리 말이 어려운지 무식하면 이혼도 못 하겠더라등등 또 징징댄다. 어쨋거나 변호사를 사든 뭐를 하든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이혼소송도 못하고 무료법률 구조공단에도 접수도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에 서서 엉엉 울었다는 애기부터 어쩌다가 우리 둘이 마주보고 그 동안 겪은 세월이 그토록 많이 흘러가버린 시간이 너무 허무했다.

 

"그래 내가 한 번 더 알아볼께! 남편이 생활비 안 준 것도 결혼해서 평생동안 외도만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이혼사유는 된다!"

 

어떻게든 잘 살아보라고 그래도 가정은 지켜야 한다고 하던 내가 이혼소송을 도와주겠다고 했으니 , 더 이상 언급했다가는 나도 마음이 짜르르 소금밭에 데인 거처럼 아픈데, 내 친구는 열심히 자식들 어떻게든 키워보고 가정을 어떻게든 지키려고 한 것이 결국 애들한테 돌아오는 아빠의 부재는 얼른 가족관계증명서에서 누락이 되어야만 하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온 것도 자기가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이리고 엉엉 울고.

 

친구와   나는  다시 법률구조공단에 가서 상담을 했다. 남편의 오랜 동안 외도와 가정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친구의 진술서와 증인이 된 나는 그동안 보고들은 사실을 진술서로 제출하란다. 우선 그것을 읽어보고 접수가 될 지 안될 지 변호사가 결정 한단다. 

 

친구는 뭐를 또 써가지고 와야 한다는 말에 주눅이 들어 난 못 쓰겠다고 말에 변호사가 그런다.

" 판사는 아줌마를 만나서 사정애길 들어주고 판결을 내주는 게 아닙니다. 재판엔 이 증거들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하는데 하소연만 한다고 될 일이라면 벌써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법이 뭐하러 있겠습니까? 그리고 너무 어렵게 쓰지 마세요, 맞았으면 맞앗다고 쓰시고 날짜가 생각나시면 정확히 쓰시고, 만일 그로인해 병원에 가신 기록이 있으면 병원가서 떼어오고 그래야 우리가 도와 줄 수 있습니다." 

 

집에 돌아간 내 친구는 몇 날 몇 칠 노트에 써서 나에게 갖고 왔다. 첫 장을 들여다보다가

한 여름밤에 남편에게 맞다가 도망을 산으로 갔는데, 모기에 뜯겨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는 내용이 자세하게 써 있었다. 그 외에 둘째를 임신하여 육 개월무렵 남편이  발로 차서  

계단에서 굴러 병원에 실려간 애길 써 놓은 곳을 보니 종이가 얼룩덜룩하다. 분명히 눈물자욱이었다. 어쨌든 나는 이 친구가 준 원고를 대략 내용수정보다 판사가 보기에도 이해가 쉽도록 정리하여 워드작성하여서, 내가 그 동안 친구의 남편을 지켜보았던 사실들을 진술서로 작성하여 다시 법률사무실에 갔다.

 

변호사님은 그 내용을 전부 다 읽어보셨다. 됐단다. 그리고 소송비용은 무료로 해준단다.

친구는 거기서 또 울었다.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져 얼른 책상에 휴지를 빼서 친구도 주고 나도 얼굴을 닦았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니 남편한테 보란듯이 잘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