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임산부 배려석에 임산부 여부를 감지하는 센서 설치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451

어제 9홉시 뉴스를 보다가


BY 천정자 2010-11-02

어제 9홉시 뉴스를 보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아홉시 뉴스는 중요한 게 많은데

아침에 눈 뜨니 고양이 알람이는 벌써 기상하여 동네 여기 저기

돌아 다닌다. 오늘이 벌써 11월이네...

 

아홉시 뉴스는 못 봐도 아침 드라마는 꼭 봐야 한다는 남편은

나에게 커피 타와라 호령하신다.

흠..그래 가을이니까 좀 봐줘야지.

좀 힘들겠어.

농사가 젤 힘든 건 바로 요 수확할 때 손이 모자라 너두 나도 다 소매걷고 나서도

한참 바쁠때, 마누라는 잠만 드르렁 자느라 시간 가는 것도 잘 모른다고 지청구를

줘도 나도 요 잠만 아니면 큰 소리를 언젠가 꼭 하고 말거라고 하지만

이상하게 가울만 오면 나는 겨울 잠자러 가는 곰이 되어간다.

 

근처에 낮은 야산이 먾은데 나는 여기가 올렛길처럼 폭이 좁고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잘 걷는다. 걸을려고 걷는 것이 아니고 사실 다른 목적이 있었다. 산밤 때문이다. 토종밤인데 산에서 저절로 크고 약 한 번 안치고 토종밤인데 이 밤을 주으러 자루에 운동화를 신고 털레털레 나선다. 야산에 소나무도 많지만 소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라는 뭔 향기에 가슴이 뻥뚫리고 요기 저기 구석구석 툮툭 떨어진 산밤을 줍다가

우연히 다람쥐를 보니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다람쥐도 창고가 있나보다. 나무 뿌리 밑에 흙을 파더니 산밤 두 게를 묻는다.

그리고 또 다시 도토리를 주워 와 묻고 그 모습이 영낙없이 월동준비 하느라  옆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신경 쓸 새가 없다. 다람쥐가 또 밤을 다른데 어디에 묻고 있나 이 쪽에 오지 않아서 나는 가만히 작대기로 다람쥐가 묻은 구덩이를 파보니 꽤 많다. 거기에 촘촘히 흙을 덮고 다른 짐승에게 들키지 않을려고 낙옆을 감춘 것 까지 너무 귀엽게 잘도 해 놓았다.

 

돌아오면서 달맞이꽃이 다 펴서 이젠 서리까지 맞아 갈색으로 탈색된 것을 꺾었다. 옛날 인디언들은 이 달맞이꽃이 화장품이 되고, 약초가 되고 , 음식에 향신료로 사용되었다.

나는 해마다 이 마른 달맞이꽃을  그대로 꺾어 푸욱 삶아서 머리도 감고 얼굴 세안도 하고 그래도 남으면 고기 삶을 때 엄나무처럼 몇 가닥을 넣고 같이 삶으면 고기육질이 부드러워지고 맛이 순해진다. 시골에 살다보니 어지간한 푸성귀는 내가 아는 만큼 거저 얻어지는 게 참 많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남들이 꿈꾼다는 전원생활을 벌써 십 수년 하고 있다. 바깥 세상에 좀 어두워지고 발빠르게 따라가지 못하여 뒤처질까봐 좀 걱정은 햇지만. 지금에야 이르고 보니 늦든 빠르든 사는 데는 별로 영향이 크지 않앗다. 비록 신문이나 금방 짠 우유가 배달되지 못한다고 해서 우울한 적도 별로 없다.

 

비록 그림같은 집은 아니더라도 눈뜨면 끊어질 듯한 산자락들이 어깨처럼 겹쳐져 아침에 피어 오르는 산안개에 가려지면 저기가 늘 꿈꾸는 무릉도원처럼 먼 세계로 보이고, 저녁에  서쪽에선 날마다 해지는 풍경이 매일 다르다. 한 번도 구름도 바람도 똑같은 모양으로 불거나 같은 형태가 없었다. 다만 내가 바뻐서 오늘 해나 내일 해나 어제 진 해 모양은 늘 똑같을 거라고 나의 인식만 변함이 없을 뿐이고, 자연에서 벌어지는 것은 똑같은 상황을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나도 이런 것을 이제야 아는데 어지간한 관심 아니면 절대 모를 비밀들이 자연에서 무수히 일어나고 말없이 스르르 사라진다. 아쉽다고 하지 않는다.

 

또 다른 전원생활이 있을까...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풍경에 늘 구경하듯이 수수방관만 하다가 홀딱 계절 지나가 세월이 강물에 모두 떠내려가도 못 막을 것인데, 이젠 좀 느긋하게 주위를 관찰 좀 해봐야 겠다. 오늘 또 어떤 새가 우리집 빨랫줄에 앉아서 쉬다가 갈까. 나뭇잎들이 늦가을 바람에 서서히 말려져 결국 낙엽이 되는 동안

안 보이게 월동준비하는 것들이 참 많을텐데.

 

오늘 9홉시 뉴스에선 강을 보존하자고 난리고 한 쪽에선 돈을 벌려면 관광자원을 개발하자고 난리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자연앞에서 한 번 발걸음을 우선 멈춤을 하고 싶다. 나도 길어야 몇 년 몇 십년 살 동네를 한 바퀴 더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