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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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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좀 생각좀 해보고


BY 천정자 2010-09-12

우리집에 사는 고양이는 제대로 된 이름은 없지만 별명은 하나 있다.

"알람"

 

알람이라고 붙인 이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달라고 벽이든 문이든 밥 줄때까지

박치기를 한다. 처음엔 김일이라고 하려다가 그래도 역사에 길이 남은 최초의 프로레슬러인데, 감히 고양이한테 막 부르기는 그래서 알람이라고 했다.

 

아무리 봐도 저 폼나는 박치기는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레슬러 김일 선수랑  똑같다.

우리 가족은 그 팍팍 부딕히는 소리에 부시시 일어나고

우리가 일어나 주방쪽으로 가서 가스불을 키는 소리가 탁! 나면

그 때부터 니이야 옹~~~!!

밥 줄 때까지 남편의 머리맡에서 울어대면

견디다 못한 남편이 그제야 끄응 일어나더니

" 이 씨부랄넘아! 나도 아직 안먹은 밥을 너부터 달라고 지랄이여 ? 지랄이?"

 

우리가 부르는 별명은 시간 맞춰 팍팍 박치기하는 소리에 깨서 알람이라고 하지만

남편은 아직 더 자야 하는데 와서 밥 달라고 통사정하고 우는 소리에 씨부럴넘이 된 이 고양이가 요즘 울 집 밖에는 절대 못 나가는 사건이 생겼다.

 

고양이 세계에도 영역이라는 세계가 분명히 있다. 아랫동네는 어떤 고양이가 판을 잡아 휘젓고 다니는 것은 몰라도 적어도 울 집에 사는 고양이 알람이가 동네 골목대장 노릇을 했나 본데  자신들만의 영역은 기껏해야 남의 집 지붕에 홀짝 홀짝 가볍게 날아다니고. 어쩌다가 암컷이라도 만나면 데이트도 해야 하고, 자식들도 낳아 대대손손 대를 잇는 일도 해야하고  참 바쁜 생활을 하던 알람이가  어찌 된 일인지 울 집 고양이가  밖에만 나가면

지 등치에 한 배는 넘게 크고 털이 개처럼 부슬부슬한 놈이 따라 들어와 서로 으르렁 대는 것을 보니 어디선가 더 쎈 고양이가 전입을 왔나 울 알람이는 영 기를 못 피고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꼬랑지를 세우고 다니더니 지금은 늘 땅밑으로 질질 끌고 다닌다. 

 

남편이 이 고양이를 보고 붙인 이름이 생겼다.

" 추노"

나 원 참 울 집 고양이는 기껏해야 씨부럴넘이라고 그것도 하루에 한 번만 부르나

시도 때도 없이 아무때나 부르는 이름을 붙여놓고  밥 한 번 주지 않은 남의 집 고양이 이름은 넘 멋지게 지어 놨다고 나도  한 소리를 했다.

 

"근디 추노가 뜻이 뭐여?" 울 남편 뭐에 한 번 두둘겨 맞은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 으이그..하긴 니가 밤 9홉시 땡하면 드르렁 코를 골고 자는디 밤 열시에 하는 드라마를 알기나 허냐?"  

 

요즘 내가 그래도 제빵왕 김탁구는 보긴 보는데 거긴엔 추노가 안 나온다. 내가 드라마 보다가 잠드는 것은 내 책임 전혀 아니리고, 순전히 책도 연극도 영화도 재미없으면 조는 것이니, 방송국에 추노가 언제 한 거냐고 묻기도 민망하고, 하여튼 딸이 오면 한 번 물어 봐야지.

 

그 날 밤 한 밤중에 알람이가 우는 소리가 심상찮은 것이다.

고양이 목소리는 이야옹!~~, 아니면 니이야 옹~~ 혹은 리이링야 옹~~ 각각 용도가 틀린소리인데, 이번엔 으이이야응~~ 으르릉이야 옹~~.

 

자다가 우린 이게 뭔 소린인가 싶어 눈을 뜨고 창호문에 비친 달빛에 으스름히 비친 수상한 그림자가 딱 내 눈에 걸린거다.

"자기야 저게 뭐여? 개여? 고양이여?"

남편이 부시시 일어나 보더니

" 저거 추노다!"

 

뭐? 추노가 누군디? 고양이가 왜 추노인지 나도 참 갑갑하고

어찌된 일인지 우리집 고양이 알람이는 마룻밑에  쥐죽은 듯이 꼼짝않고 있으니

또 남편이 소리지르네.

" 야 !! 이 씨부럴넘아 그니께 왜 싸움에 져 갔고 맨날 쫒겨댕겨 ?'

 

그 때 그 순간 낮은 천장에서 부스럭 소리가 난다. 천장에서 몰래 죽은 듯이 사는 쥐 한마리가 남편의 버럭 소리에 놀랐나 보다. 그러니 울 남편 또 그러네..

" 집에 있는 쥐 한마리도 못 잡는 놈이 못난 놈이 어디서 이기것어?"

 

그러니까 울 집 고양이가 고양이 세계에서 싸우는 영역싸움에서 확실히 진 것이고, 이긴 고양이는 대신 그 영역을 자리 차지하러 온 것 뿐이고, 집에서 사는 알람이는 절대 갈데 없는 신세가 된 데다가 못 나가고 잇는 상황이 되었는데, 이게 장기전이 될 줄이야.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밤이면 밤마다 와서 문 밖에 앉아 불침번처럼 일인 시위를 하니 주인인 나도 이걸 참 어떡할까 참 큰 고민이다.

 

남편에게 그랬다.

저걸 좀 어떡해 해봐? 온 동네가 시끄럽당께? 했더니

남편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숨만 푹푹 쉰다. 얼마전에 개인 복순이가 뒷집 토끼 물어 죽여 소동을 치루더니, 이젠 고양이 차례로 자식 많은 집 바람잘 날 없다는 말 딱 맞다.

 

고기 좀 많이 좀 먹여서 어떻게 다시 재결투를 해보라고 할까? 했더니

" 으이그 지금 어디 권투선수 결승 내보내냐? " 남편이 또 나를 쬐려본다.

왜 나만보면 쬐려보냐? 할 수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