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울 아들 그 사건으로 나는 더욱 우울해졋다.
신문에 한 가족이 몽땅 차를 타고 어느 저수지에서 물에 빠져 뉴스에 나 온 것을 보고
그 가족들 맘을 좀 짐작이 갓다.
" 나 하나만 죽으면 그만이지.."
여기에서 그냥 모두 다 죽어버려야 이 꼴 저 꼴 안 당하고 깔끔하지.
죽은 사람만 편하게 말 없고
남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의 몫까지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친절하게도 나는 이미 뉴스에서 나온 사망하신 분에게
먼저 가신 분들에게 혼자 축 ! 사망! 이런 문구를 무수히 축전을 보내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우울증의 경과는 일종의 분위기와 그 주변환경에 의해서 결정이 된 다고
왜 나보고 결혼을 하라고 해서 이렇게 불행하게 사는 모습을 꼭 봐야 직성이 풀리냐고
울 친정엄마에게 퍼붓는 수다에 마음이 좀 풀릴까 싶었지만,
왠걸 엄머에게 퍼붓는만큼 내가 더 괴롭게 되고 더 초조불안하고 더 우울해지는 것을 알았다.
당장 사글세는 밀리고 내야 하는 날짜는 금방이고
돈 떨어지면 냉장고도 텅 비고, 세금고지서는 현관에 수북하고
애는 날마다 학교를 아직 안 왔어요 전화오고
그나마 발신도 되지 않으니 전화 걸려도 공중 전화기를 찾아가야 하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돈 꿔달라고 하기도 면목이 없고
어쩌다 통화만 하는 친구 전화번호들고 몇 번을 누르다가 수화기를 내려놓고
에라이 그냥 오늘 옥상이나 올라가자 !
가만히 생각해보니 울 딸도 울 아들도 내가 먼저가면 남은 놈들 분명히 고아원에 보내질텐데.
그거나 나랑 같이 옥상에 올라가는 거다 이렇게 결심하고 말았다.
그렇게 결심하고 보니 그 날이 나에겐 마직막 날이다.
새상을 떠나는 날을 결정하니
모두가 다 어색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 번 볼 걸 두 번 자세히 검열 하듯이
또 흘긋 흘긋 쳐다보았다.
내가 떠나도 여전히 이 사람들은 잘 살겠지.
걱정은 내가 해주고 살기는 그들이 더 잘 살텐데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후 세네시였는데.
울 아들이 오고 놀이방 간 딸이 돌아오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무렵인데.
마지막 잔치라도 하고 가야 죽어서도 할 말은 없을 것 같아
바지 주머니에 있는 돈을 세어보니 삼천원이 있었다.
이걸로 무슨 잔치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