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처럼 겨울에 내리는 비를 보고 나는 문득 떠오르는 것이 공중전화다.
지금처럼 각자 휴대를 하는 전화는 없고, 어쩌다가 동네 몇 집에 있었던 흑색전화.
백색전화에 0을 돌리면 한참 돌아 데르룩 구르는 전화가 있었을 때.
내 친구가 목하 연애를 하느라 이 전화 때문에 들통이 나서 아버지한테 머리를 싹둑 잘라버려
빨간 스커프로 대충 두르고 그 당시 단칸방에서 살던 나에게 찾아와 엉엉 울었엇다.
" 내가 누굴 만나던 아빠가 무슨 상관이냐고? 어엉!! 내가 개랑 결혼한다고 했어? 뭐랬어?
야 ! 나 이제 집하고 연 끊었다아? 이러고 어떻게 동네에 나서냐?"
아마 그 때가 내가 열 아홉이고 그 친구는 스물인가 나보다 한 살 위였지만. 학년은 나보다 한 학년
아래였다. 이름도 재숙이. 얼굴도 갸름하고 지금처럼 일부러 성형수술해야 나타나는 진한 쌍꺼풀이 이쁘게 자리잡아 울 동네에서 남자라면 한 번은 같이 걸어보고 싶은 미모였는데. 재숙이 아버지는 그 딸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맨날 연애질만 한다고 글쎄 그 긴머리를 댕겅 잘라 버렸으니 당연히 사네 못 사네 난리가 난 것이다. 이쁜 딸이 잇는 집에 늘 전화는 통화중이엇을 것이니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그렇게 했을까 싶기도 하다.
그 때처럼 내리 연장 한 사나흘 비가 내리는데. 울 집에 그 좁은 곳에서 훌쩍훌쩍 울던 친구가 보고 싶다.
지금은 핸드폰도 있고 전화번호만 알면 단박에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