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도 하지 못한 주제에 동치미까지 바란다는 것은 심한 욕심이다.
남편은 결혼 후부터 나에게 할 수 있는 잔소리와 말은 다 하였다.
대한민국에 너 같은 여자 또 있으면 어떤 널 빠진 남자 아마 걸레질 하다가 늙었을 것이란다.
반찬은 못 한다고 쳐도 노래도 18번이 있는데.
옛날처럼 부엌에 아궁이에 불 때워 그 연기에 질식하듯이 눈물콧물 질질 흘려가면서 밥하라면 아마 집에 불을 내도 몇 십번을 낼 거란다.
그러니까 밥도 제대로 못하니 뭘 기대하겠다는 건지 모르지만 사실 나는 기계치에 가깝다.
나는조심스럽게 다루었건만 몇 칠 안가서 고장난 청소기며 다리미며 방전된 드라이에 심지어 남편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 있는 줄 모르고 세탁기에 돌리는데 자꾸 무슨소리가 텅텅 나길래 또 기계가 맛이 가려나 이랬었다.
남비를 하도 태워먹어 이젠 남비를 사오지 말란다.
새 거나 헌 거나 몇 칠 안가면 씨커맣게 그게 그거고 이게 개 밥그릇인지 우리가 밥을 먹는 그릇인지 구별이 안간다나.
살림엔 관심이 전혀 없고 어따가 정신을 팔아 먹어도 그렇게 흐리멍텅해도 사는 걸 보면 용하단다. 하도 이런 애길 들어 별로 마음에 두고 삐지거나 사실 우울하다거나 뭐 그런 마음도 진짜 어따가 땡처라로 팔어 먹은 것처럼 늘 그렇다.
그런데 요즘은 이 말들을 곱씹어 본다.
뭐 대한민국에 나같은 여자가 또 있으면 어떤 남자가 집안청소만 하다가 늙어 죽던 말던 그 사람 팔자 소관인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따져 묻고 싶은데. 흐흐 그렇다고 직접 물었다간 내 납작한 코 더 무너진다는 것을 안다. 하긴 내가 나를 봐도 어디 나같은 사람 또 하나 있으면 반갑다기 보다 또 어떤 남자 고생 좀 무지하게 시키셨남유? 헤헤..이거 부터 무식하게 물어 볼 것 같다.
사실 결혼 생활에 살림은 나 혼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요즘 더 절감한다. 사회생횔에 한 부분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놀토에 아들 오더니 지가 입은 옷에 팬티에 양말에 몽땅 돌리고 자기방에서 아빠는 왜 담배를 피우냐? 시시콜콜 재떨이에 모아져 있는 담배재를 치우면서 그런다.
" 아빠? 엄마가 내 방에서 피우라고 시켰어?"
얼굴도 복사판이라고 친자 확인 할 필요 없는 아들이 지 아빠 꼼꼼하다 못해 결벽증까지 겹친 성질도 어쩜 그렇게 똑같은지 내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거기다가 돈 쓰는 씀씀이도 같다.
남편은 나에게 떡을 해오라며 쌀과 돈을 주는데 딱 그만큼 더도 덜도 아니다. 나는 오가는 기름값은? 했더니 어떻게 너는 공으로 세상을 살려고 하냐? 그럼 안된다. 시집와서 니가 해 준게 뭐냐?
나랑 살면서 니 마당 몇 번 쓸었어? 밥통을 집어 던져 뿌셔놓고 누가 사다 줬냐? 니 손으로 빨래는 해봤냐? 등등 이루 열거 할 수 없는 잔소리 덕에 나는 더욱 튼튼한 내공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게 왜 나랑 살자고 옆구리를 푹 찔렀냐구? 맘에 안들면 도로 물르던지?"
이 대답도 남편에게 하도 써먹어 듣는 등 마는 둥이다.
김장을 안 했으니 당연히 동치미나 마나 국물도 없는데. 할 줄은 모르고 기차게 먹를 줄 아는 나는 요즘 살얼음 동동 뜬 그 동치미가 날이면 날마다 아삼삼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에게 동치미를 한 번 담가 볼까? 까짓거 지금이라도 담그면 동치미 아니냐고 했더니. 옆에서 듣던 울 아들 대답
" 천지가 개벽혀? 엄니가 동치미 담그면? 우하하하!!"
" 뭣이 어째고 어째 이 눔이 엄니를 감히 무시혀?"
오냐! 내가 오늘 기필코 동치미를 담그고 말 것이다. 굳게 맘먹고 나섰는데
그 재료가 무수는 당연히 들어가고 그 다음에 뭐더라? 아! 내가 어쩌다가 천지개벽할 동치미를 담군다고 덜컥 장담을 했을까..으이그 그러니 미련한 곰퉁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