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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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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까?


BY 천정자 2009-12-11

결혼생활을 오래 하거나 아니면  남자랑 살림을 오래 한 차이는?

뭐 이런 생각을 마구 상상하고 난 후

 내 주위를 살펴보니 별로 변한 것도 없을 것 같더니 자세히 살펴보니 그게 아니다.

 

오래 된 나무로 만든 서랍장에 켜켜히 쌓인 유행지나고 내 아랫배가 두둑해져 맞지 않은

여름 청바지부터 일곱살 때 입은 아들 반 바지에 딸내미 세살 때 입었던 원피스도 모두 지금 상황과 맞지 않는다.

구식인 데다가 누구에게 줘도 오히려 욕을 먹을까 싶어 그냥 서랍장에 쳐박아 둔 것들이 참 많다.

 

가만히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그 땐 그렇게 갖고 싶었고 원하고

누리고 싶었던 행복들이 너무 멀어져 가물가물한 기억으로 남아서

그런 적이 언제 였던가 날짜 모른다고 지나친 것들이다.

오래 입어 깃 닳아 소매가 늘어지고 무픞이 툭 튀어 나 온 츄리닝 바지는 아무도 입어 주지 않는 것처럼 유행이 지나가도 한 참 후다.  

 

그렇게 속상하고 어렵고 기가 막힌  한 십년 전 일이 지금 생각엔

뭐 그렇게 엄청나게 큰 일이 별 것도 아니고 별 일도 아니고 누굴 만나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감추지 않아도 스스럼 없이 말하는 작고 소소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

 

이래서 사람은 오래 살아 보라고 했나 보다. 시간이 보약처럼 더 튼튼하게 해준다고 했나보다.

그 당시 그렇게 밉고 싫은 사람이 또 한 십년 지나니 괜히 불쌍하고 측은해 보인다.

아직도 그렇게 사니? 이런 말도 하고 싶지만 사실 내가 그렇게 말 안해도

본인은 얼마나 벗어나고 싶은 상황일까

 

분명히 나도 언젠가 돈 많이 벌고 집도 사고 노후에 작은 텃밭을 일구는 소일거리에 꿈꾸며

살다가 가도 누구 탓 할 거는 아닌데. 굳이 지금 못해서 안달복달했으니.당장 바로 안되냐고 호통까지 치고 이래서 사람에게 날마다 하루씩 시간을 허락했을 것이다.

성질 급한 나는 뭘 더 줘도 함꺼번에 털어서 쓰고도 모자르다고 분명히 징징 대고 어리광 부렸을 것이다. 천천히 살라고 함부로 허투로 살거나 늙지 말라고 오늘 하루가 당당히 뜻 깊은 권유를 하고 있다.

 

어찌됐든  나는 아무래도 오래 살 것 같은데

누구와 같이 살던 누구와 함께 하는 동안 서로에게 시선 깊은 풍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주 조금 느낌으로 알았다. 그들이 어떤 상황에도 각각 위치가 다른데 나와 조금 차이가 난다고 뭐라고 했다. 이제야 조금 알았으니 그 동안 얼마나 철딱서니 였을까? 뭐 한다고 오두방정만 떨었으니.

 

스치는 바람이 보이지 않듯이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이 누군가에게 바로 읽히지 않아도 나중에 천천히 알려지는 소식일게다.지난 가을에 귀뚜라미가 혼자 밤늦도록 울리던 소리가 기억이 지금에야 들리고 보니 참 느리다. 그들이 왜 흰 눈 날리는 겨울에 문득 보고 싶으니 나도 어지간히 굼뜨다. 다음 계절에 꼭 인사를 해 놔야 겠다. 몰라 뵈서 미안하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