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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에필로그


BY 천정자 2009-08-28

 

나는 지금도 아버지 돌아가신 날 기일을 모른다.

분명히 딸이 맞긴 맞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버렸다.

죽은 사람들에 대한 예의는 기일을 잘 챙겨서 제사를 지내주는 것인데

딸이라고 아들이 아니라고 소홀히 해도 누가 손가락질 하지는 않았던 덕에

오십이 다 되도록 기일 한 번 못갔었다. 기일이 언제냐고 엄마에게 묻지도 못했다.

그만큼 관심 밖에 던져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기억을 해 줄만큼 마음이나

내 생활에 여유는 각박하고 삭막했으니 너무 일찍 떠나신 아버지 탓으로 은연중에 돌렸을 것이다.

한 이 십 여년 전에 내가 결혼을 했다고 사위를 데리고 아버지 산소를 진짜 처음 갔었다.

우리 네 남매를 혼자 키우느라 명절 찾아가며 성묘 오는 것은 한가하고 배부른 행사였다. 울 엄마는 사위를 데리고 여기가 장인묘인가 아닌가? 몇 번을 헷갈려 하시더니 못 찾겠다고 주저 앉으셨다.

기껏 찾아 왔더니 아버지 묘는 너무 오랫동안 무방비하게 방치하니 봉분이고 비석은 원래 없었고 대략 위치만 알고 계셨다가 정작 찾아와서 보니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을 못하신 것이다.내가 일곱살때 만든 무덤이 정확히 20년 만에 돌아오니

강산이 두 번 바뀌고 길도 당연히 없어진 것이다.

사위 입장이야 어떻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딸인 나는 내가 분명히 아버지가 계시긴 계셨는데. 그동안 돌아보지 못한 과오를 이렇게 벌로 받는구나 했었다. 어찌됐던 울 엄마는 동네에 내려가서 전에 전날에 탄광에서 사고가 나 죽은 사건을 알고 계시는 한 할아버지를 모시고 와서야 울 아부지 묘를 찾을 수가 있었다.

" 무덤이고 집이고 왕래 없으면 무너지는 건 마찬가지여!"

어렵게 입을 열어 단 한 말씀만 하시고 돌아가시는 그 할아버지가 몇 년전에 돌아가셨다고

울엄마는 또 전화에 대고 엉엉 울으셨다. 그 할아버지 덕분에 흔적없는 아부지 산소를 찾을 수 있었다고  수화기를 통해서 울엄마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나중에 후회하지 말자고 나는 다시 남편과 함께 아부지의 묘가 봉분이 허물어지고 무덤을 다시 만드자니 포크레인을 부르면 돈이 많이 들거라는 울엄마의 걱정에도 나는 또 후회 할 일이 두려워 무작정 공사를 하자고 그렇게 서둘렀었다. 오늘 낼 아니면 언제 또 무작정 기한이 미뤄지고 먹고 살다가 바뻐서 못했다고 핑계만 자꾸 늘을테니 다시 울엄마를 모시고 아부지 묘 자릴 또 확인하고 확인해서 그날 당장 봉분을 세우고 비석도 그럴 듯하게 세워 주고 싶었는데, 그건 좀 시간이 걸린다고 하고 그렇게 공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곱살 때 아마 초가을도 아니고 어느정도 가을이 깊어 갈 즈음 돌아가신 날인데. 그날 혹시 내 꿈에 한 번이라도 비춰질까 싶기도 했다. 도무지 아부지얼굴이 나랑 똑같다고 아무리 엄마가 말씀을 하셔도 내 얼굴보고 내 아부지 얼굴 상상하다가 도로 무너지는 기억력 한계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도 큰 딸이 이렇게 다시 무덤을 손 봐주고 명색이라도 세울까 싶어 무리해서라도 공사를 하니 후회는 없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나 울엄마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내 생각엔 그려 니가 장녀라고 이렇게 해줘서 고맙다고 그런 말씀을 하시려고 전화를 하신 줄 알았다.

" 야야..워쩐다냐? 이걸 워쩐대냐? 글쎄 그 자리가 아니랴 아버지 무덤이 아니랴?"

" 뭐? 아니 그럼 어디랴?"

그 동네 터줏대감이 괜히 남의 묘를 봉분을 세워주고 갔다고 소문이 파다하게 나서 가보니 다름아닌 당신 먼친척의 종손 끊긴 할아버지의 무덤이고 울 아부지 무덤은 바로 옆이었단다.  그러면 그렇지. 얼굴도 몰라 이름도 몰라 아무 상관없는 남의 산소를 건드렸으니 아부지가 내 꿈에 나타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울엄마는 나보다도 사위에게 더 민망하셨나 절대 남의 산소에다 절하고 공사해 줬다는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런 건 내가 더하면 더 민망하고 무안하다. 세상에 참 내 아부지 묘는 옆에 잘 모시고 남의 묘를 더듬는 딸을 생전에 보시면 뭐라고 하실지 기도 안찬다.

나중에 울엄마가 부랴부랴 서둘러 다시 공사를 했다고 전화가 왔다. 그러곤 너만 조용하면 아무도 모르신다고 또 신신당부 하신다.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 그제서야 전화를 끊으셨다.

 

오늘은 백로가 머잖아 찾아오는 가을날이다. 전화를 해야겠다. 울아부지 기일을 받아서 달력에 빨갛게 동그라미를 그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