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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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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심심하고 입이 근질근질하면


BY 천정자 2007-07-11

귀가 심심하고 입도 근질근질하고

원래 백수는 그런 게 당연하다.

 

이래 저래 오라는 데나

갈 데는 이 궁리 저 궁리해도

핑계거리 만들고

뭐 이런 이유도 달아서 가 볼데라면

그저 가도 말없는 곳이 제격이다.

 

그런데 이 심심함이 바람 막 불고 비도 오다 말다 흐린 날엔

특히 더 심하다.

 

맨날 비 온다고 부침개 부쳐 먹은 것도 한 두 번이지.

혼자 다 먹겟다고 할 일도 아니고

누구 오라고 전화하면  딱히 나처럼 심심한 백수들이 아니다.

 

다들 죄다 바쁘거나 되레 나에게 뭐라고 할텐디...

니! 제 정신이냐?

 

헤헤...제 정신이 아니면 지덜이 날 책임 져 줄 겨?

그래도 제일 만만한 울 동네다.

 

걸어서 한 시간만 걸어가면 한 삼백년 묵은 고택이 있다.

특이한 것은 이 집은 대문이 없다.

대신에 들어가는 입구에 집보다 더 늙은 괭이나무. 느타리나무. 적송이 허리가 뚱뚱하게 나이먹은 나무들이 즐비하다.

 

사실 이 고택은 이미 인터넷으로 그 이름이 자자하다.

그래선가 주말에는 사람들이 무진 많이 온다.

나는 한 번도 잔 적이 없지만 옛날 양반이 살았던 고래등 집에서 하룻밤 자 봤으면 하는 마음도 드는데... 이것도 혼자 잔다고 하면 또 뭔 이상한 여자가 왔나 싶어 그냥 이웃동네에서 슬슬 마실 나온 모양으로 늘 이곳에 온다.

 

여긴 맑은 날도 좋지만 비오는 날은 운치가 극에 달한다.

더욱 비오니 사람도 새도 그 누구도 뚝 끊긴 상태에서

연못에 빈 긴 의자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빗방울이 물 무뉘를 만드는 것을 보면 화가들이 장난꾸러기 된 것처럼

첨벙 첨벙 장화신고 노는 것 같다.  

 

비오다가 말다가 하는 날은 나무향기가 더욱 진하다. 바로 뒷뜰이 산 하나다. 산향기가 그렇게 그윽하게 안개처럼 퍼지는 것을 여기서 내가 처음 봤다.

큰 그늘을 가진 한 오백년 묵은 나무 옆에 있으면

괜히 싱숭 생숭해진다.

 

내가 너무 젊은 것 같기도 하고 세월을 다 지키다가 뚱뚱한 여자 허리처럼

튼실한 묵직함을 개구지게 발로 툭툭 건드려보기도 하고.

 

고택주인이 찻집을 운영한다.

그런데 나는 이곳을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다.

그냥 바깥에서 보기만 해도 그야말로 찻잔 향기가 솔 솔 나온다.

초가지붕으로 이엉을 얹은 집이라서 더욱 바깥에서 보고 있어도 또 보곤 한다.

 

장마가 지고 뜨거운 여름 한 철이면 여기도 무척 바빠진다.

체험학습장이며 현장 학습이며 휴가까지 겹치면 북적 북적대는 곳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가 늘 이렇게 한적 했으면 좋겠다.

욕심 같지만 나  같이 백수들만 몇 몇 모여서 조용히 귀만 열어 놓고

바람부는 소리 들리냐고 바람에 실려오는 향기가 보이냐고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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