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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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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은 물려받은 폭력이다.


BY 천정자 2007-02-06

/ 정우련 소설가

 인터넷에 악플이 넘쳐나고 있다. 연예인,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언론의 논객들,심지어는 일반인에게까지 무차별적이다. 사실 인터넷이 우리 시대의 글쓰기에 기여한 바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하다. 그 글쓰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싸이월드 앞에 불러앉히고,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열린 장이 아닌가. 인터넷이 우리에게 수평적 소통의 장이 된 것은 이렇듯 고마운 일이지만 어느샌가 잡초 같은 악플러까지도 함께 키운 것이다. 그것이 꽃다운 생명까지 앗아가는 동기가 될 줄 어찌 알았으랴.

정신과 전문의들은 악플러의 심리를 두 가지 원인에서 찾는다. 그중 하나가 폭력적이고 독재자형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폭력이나 독재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방식이다. 거기에는 오직 권위만이 존재할 뿐,약자나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끼어들 틈이 없다. 폭력 앞에서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타인을 존중할 수 없게 되는 이치다.

또 하나는 형제갈등을 심하게 겪으면서 큰 사람이다. 이럴 때에 마음 속에 투기심이 자라게 된다. 형제끼리 선의의 경쟁을 하게 되면 그보다 좋을 수 없다. 하지만 편애하는 부모 밑에서 차별대우를 받게 되면 욱 하고 참지 못하는 공격적인 성격이 된다. 그렇게 되면 개인 능력의 차별성에 대해서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사촌이 논 사면 배아픈 심리다. 남이 잘하는 것을 도무지 못 봐준다. 따라서 도덕적 자아가 난폭하고 원시적인 상태가 된다. 타인의 작은 잘못에도 가혹한 처벌을 내리고 옳은 이야기도 거짓말로 받아들인다.

대학 신입생들의 교양 글쓰기 지도를 하다보면 이런 일종의 악플심리를 느낀다. 현실 사회문제에는 무관심한 아이들도 학교교육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좀 생기는 법이다. 12년 공교육 체험은 표절 없이도 넉넉한 글쓰기 자산이다. 학교교육에 대한 체험적 비판글의 중심메뉴는 교사의 체벌이나 차별대우로 깊이 상처받은 기억들이다. 자기 체험이다 보니 인터넷에서 베껴오는 학생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개개인의 글쓰기 지점을 정확히 살필 수 있는 이점도 있다.

하지만 공격적이고 거친 글 때문에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학주 ×××야,내가 네 자식이었어도 그렇게 개패듯이 팼을까. 4년만 기다려. 내가 네 자식 학교에 선생이 되어서 내가 당한 만큼 갚아주겠어"라든지 "관리받는 5명 정도의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졸아도 너무 늦게까지 공부하지 말라고 격려하면서 5명 안에 들지 못한 아이가 졸면 밤마다 컴 하지 말고 일찍 잠이나 자라며 욕하는 ×××" 라고 쓴 글들을 보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우리 세대에게는 은사님이 많았다. 그런데 요즈음 아이들의 인식은 좀 다른 것 같다. 가부장이 권력이라면 권위적인 교사는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권력이다. 체벌이 교육이라고 생각한 교사와 그것을 폭력으로 느끼는 아이 사이에 소통이란 불가능하다. 이런 아이들에게 당장에 비판적 글쓰기가 갖추어야 할 주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논거를 대라고 하는 건 무의미하다. 글쓰기가 갖고 있는 배설기능을 일차적으로 인정하고 차츰 심리적 거리를 갖고 선생님의 입장을 헤아려보게 해야 한다. 가정과 학교교육,모두가 악플심리를 키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좀더 너그러운 심성을 키우는 일이 제일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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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일히 인터넷의 장단점을 고르란다면 큰 일이지만, 단 두 가지로 압축하라면 첫 번째는 칭찬을 마음데로 무한데로 할 수 있고, 두번째는 욕이던 폭력이던 공간이 무제한으로 펼쳐져 있다는것이다.

 

 가부장적으로 그 동안 일관 해온 문화가 불과 이백년도 안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영향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인권이라는 새로운 권력이 여기서 횡설수설이 된다.

 

 요즘은 언론에서 부추기는 이혼이 황혼 이혼으로 또 고집스럽게 비집고 자리를 차지한다.

가장 주 된 이혼사유가 남편이 아내를 구속하여 거기에서 해방되기위한 자구책이 이혼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남편 된 입장에서는 풀어진 개처럼 잃어버린 주인처럼 허탈하게 보내야 한다. 늙은 아내를.

 

 이런 현상이 누구도 비껴 가지 못한다고 언론은 으름장을 놓으면서 아내에게 잘하라고 충고를 한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해라고 노래도 나왔나 보다.

 

 내 보기엔 이런 문제가 대물림이 되고 있다는 게 더욱 무서운 일이다.

돈도 유산으로 남겨주고 땅도 유산으로 남겨주는데. 이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인격들이 전염병에 감염되듯이 내림을 당한다. 이건 틀림이 없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만큼 복잡하게 얼켜 있지만, 대게 증영이 된다.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교육은 제대로 교육을 받은 이들이 물려줘야 하는데.

또 그게 그렇지가 않다. 갈 길이 멀다. 지금은 은사고 스승이고 선생이라는 말이 도무지 분간이 안 된다.

흔하다면 흔한 말이고, 사용하지면 선생님인데.

 

 조금은 뒤도 돌아보고 가다가 숨차면 쉬어보고 그렇게 가도 늦지 않다고 말하는 스승이 전무하다는것이다. 그냥  얼른 얼른 많이 배워서 성공도 누구보다도 빨리 하고 돈도 많이벌고 그래야 경쟁사회를 살아낸다는 것은 줄기차다.

 

 여자도 남자도 아이도 모두 헷갈린다. 도대체 내가 뭣때문에 오래 살아야 되나....

그러니 툭하면 아파트에서 떨어져..접시물에 코 박혀 죽은 간단한 목숨들이 되었다.

우리가 되 찾아서 무엇을 남겨야 할지, 지금부터 고르고 골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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