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심호흡 좀 하고 그 동안 못하고 다닌 일들을 촘촘히 생각 해보았다.
쇼핑이라든가, 여행이라든가, 못 가본 것 만 빼고, 시시한 나부랭이들을 죄다 열거 해 본다.
첫번째는 잠 좀 널브러지게 자다가 남편이 밥 먹어 하면 밥 먹고 또 자고. 저녁이면 별떴다! 그 소리에 얼른 눈을 똘망 똘망하게 뜨고 평상에서 드러누워 이 별과 저 별의 거리재기, 그 별에 오랫동안 품고 있던 신화라든가, 전설을 딸내미에게 소근거려 귀 간지럽히면 실실 웃는 뺨에 실컷 뽀뽀도 하고.
아무렇게 지맘대로 자라나는 풀이며, 남새밭에서 푸른고동을 세우는 참깨꽃에 눈빛 마주치는 구수함을 상상하다, 맵디 매운 청양고추 댕겅 분질러 막된장 오래 지져 마루에 턱 주저앉아 땀 뻘뻘 흘리며 밥 비벼먹는 여름을 우선 천천히 보내고.
그러다 장마는 그렇게 지루하게 흩뿌리고 지나가는 안개비처럼 사라질 테고, 높음의 한계를 모르는 잠자리떼들이 결혼비행하는 것을 쌍쌍으로 확인하는 가을이 올 것 인데.
나 사는 곳은 온통 앞으로 뒤로 양쪽으로 빙둘러 온통 높고 낮은 산이다.
따로 피서 갈 계획도 필요없다. 그저 조금만 걸어가면 산개울이 숨어서 흐르는 야트막한 산자락을 뒤져서 들어가면 에어콘보다 더 시원한 세기로 늘 바람이 살아있는 곳이 지천이다.
도시락을 싸들고 올 것도 없다. 그냥 밥먹고 운동겸 걸어서 오다보면 거기가 산이다.
요즘은 좀 보기 싫은 풍경이 있다. 전원이 좋으니 자연으로 돌아오세요의 현수막과 함께 전원주택을 짓는데, 주택근처에 건축자재며, 자질구레한 것들이 널부러져 별로 보기 좋지 않다. 그래서 더 에돌아 걸어 다니다가 이젠 사람의 눈빛에 걸리지 않을 만큼 작은 숲속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숲에는 세계가 있다. 작은 풀무치들의 집단 서식지이며, 때 맞춰 돌아오는 계절에 바삐 준비하는 곤충의 세계가 존재하는 곳.
이런 이야기들이 그 숲과, 다른 숲이 맞부딪쳐 이뤄지는 산맥을 통해 내가 아닌, 사람을 통해서가 아닌 그들만의 언어로 읽어주고 읽혀주는 숲.
그래서 틈틈히 만나고 싶었다. 그들은 과연 우리들에게 무엇을 읽혀주게 할까.
우리네는 돈이 없으면 못산다고 아우성이지만, 그들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돈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을텐데.
하긴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맨날 고민하면서 사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고민을 들어 줄 처지도 못되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내내 궁금했다.
바쁘게 산다는 것이나, 그렇지 못한 것이나, 아님 안하는 것이나 모두 한가지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을텐데,
남새밭에 방울토마토 두그루를 심었는데. 여기에도 진드기가 살고, 그 옆에 시금자깨같은 개미가 열심히 살고, 가끔가다 빨간 점박이 무당벌레가 휘이잉 날개 접어 띄엄 뛰엄 날아다니는 걸 본다. 토마토는 아직은 푸르게 젊은 것도 있고, 이제 막 먹었으면 좋겠다 싶을 붉은 색을 농후하게 나이먹어 가고 있다.
마당구텅이 마다 민들레와 채송화가 자리를 잡아 꽃피고 꽃접고, 홀씨 날리우는 오늘이다.
나도 그들처럼 접어지고 피는 생각들을 조심히 열어 놓고 싶다. 이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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