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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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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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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휴식 시간에.. ♬


BY 플러스 2010-07-19

인터넷이 아직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때에,  전화선에 연결한 모뎀으로 처음 인터넷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한 달에 얼마간의 회비를 내고 가입했던 한 기업체의 회선을 통해 주부 동호회라는 것에도 처음 가입하게 되었었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허술한 흑백 페이지에서였지만,  컴퓨터라는 화면을 통해서 사람들이 서로  대화하듯  글을 주고 받는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던 때였습니다. 
 
그 동호회에는 눈에 뜨이는 활약을 보여주는 아줌마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 중에 한 여자가 특히 눈에 뜨였습니다.
 
성숙한 여인상이라고 할 만한 정갈함이 늘 그녀의 글에서는 묻어났으며,  뭇 여인들의 칭송에 의하면 실제의 모습 또한 정갈한 아름다움… 그 자체인 여자였던 모양이었습니다.  오프로 서로 자주 만나기도 하는 그녀들에게 교양과 뛰어난 미모, 학력을 두루 갖춘 그 ‘여인’은 닮고 싶은 여자 일 순위로 꼽히는 ‘언니’인 듯 했습니다.
 
결코 가식적으로 들리지 않는 진심어린 부러움과 높임을 받는 그녀의 실물이 궁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구경만 하던 내게 어느 날 ‘바자회’를 한다는 공고가 보였고, 집 안에 아기들 쓰던 물건들을 처분할 좋은 기회라 여기며 강남의 모처에 나갔던 날은,  그 궁금증이 풀어지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한 방 가득 정렬해 놓은 테이블 위에 쌓인 물건들을 보고 있던 내게,  내가 선 앞 쪽 문을 통해 두 여자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무심하게 서로 오가며 지나가던 여자들이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지듯 집중하는  ‘포근한 환대’를  받으며 들어오는 두 여자를 보며, 그 중 한 여자가 바로 그 ‘언니’임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렇게 흘깃 보고 난 후,  테이블 위의 물건들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어느 순간  음악 씨디 한 장을 집으려는데,  올려 놓은  내 손 위로 한 여자의 손이 겹쳐지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보다 훨씬 예민한 사람이었던 나는 옆을 휙 쳐다 보았습니다. 
 
옆 사람과 다정한 대화에 정신이 없던 여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녀였습니다.  그녀는,  대화에 열중한 나머지 천천히 움직이느라 내가 먼저 그 씨디를  잡은 것을 미처 보지 못했던 모양이었습니다.
 
고고한 자태가 얼굴과 몸가짐에서 흘러나오는 그녀의 눈이 잠시 냉정해졌다가 곧 따뜻하게 풀어지며 자신의 손을 놓았습니다.
 
당시 사십 대 중반이었을 그녀는 가까이에서 보았을 때에도  참 곱고 아름다운 외모와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동호회에서 늘 ‘주님’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삶과 신앙이 하나가 된 듯한 자연스럽고 신실한 자세,  정결하고 고고한 마음.   어느 곳 하나 흠잡을 수 없는  그녀는 때로 성경 속의  ‘현숙한 여인’을  연상하게 하곤 했습니다.
 
크리스찬인 여자이든, 크리스찬이 아닌 여자이든, 그 동호회의 주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방에 달린 댓글은  잠시 내게  생각이 머물게 했습니다.
 
역시 그녀를 좋아하는 한 여자가 단 그 댓글에는,  “언니의 말처럼 신앙을 가져보려고 노력하지만, 아직도 내 눈에는 너무나 커다란 언니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곱고 아름다운 그녀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는 삶을 살아가려는 정성스럽고 정갈한 삶의 아름다움을 몇 년간이나 보아왔지만, 글을 단 여자는 예수님이 아니라 아직도 그녀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멋진 언니’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그녀가 그녀를 언니라 부르는 동생들에게 원한 것이 ‘그리스도를 알게 됨’이라면,  나무랄 데 없는 그녀는 자신을 향한 칭송을 제외하고는 ‘실패’한 것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멋지고 아름답고, 따라가기에는 너무나 멀리 있는 커다란 언니… 일 뿐인 것이었지요.
 
그것은 참 의외인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때로… 외모든 삶이든 마음씀이든,  그녀의 발치에도 따라가지 못할 애송이인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돌아볼 때가 있습니다.  그녀처럼 멋진 여자도 실패하는 일을, 헛점 투성이의 여자가 무얼 믿고 이러고 있을까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한 편, 그렇게 우러러 볼 만한 점이 없기에 차라리 그녀가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글방을 만들 때에 필요했던 닉네임을 지을 때에도 다른 몇 가지를 마음에 둔 것도 있지만,  특별히 여성이든 남성이든 사람으로 곧 다가오지 않는 중성적인 이름을 선택한 것도, 멋지고 완벽한 사람이든,  헛되어 보이는 사람이든 사람이 보이기보다는 그리스도가 보이길 원하는 마음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작용한 부분도 있습니다.
 
요즘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지나간 글들을 예쁘게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꼴을 ‘맑은 고딕’ 형태로 바꾸면서,  어떤 글들은 그대로 놔두면 이해가 어려울 만큼 복잡해 보여  먼지를 좀 떨어내기도 하는 작업을 일주일 째 하고 있습니다.   정말…. 힘든 일임을 이틀 만에 깨달았음에도  인내심을 오래 발휘하고 있는 셈입니다.
 
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만연체’가 무엇인지를 잘 알겠다고 여길 만한 글들도 여럿 보면서, 나 자신 몰랐는데 참 사변적인 사람인가 보다 생각하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글솜씨가 뛰어난 사람이 아닌,  부족함으로 똘똘 뭉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 또한, 앞에서의 실제의 외모와 삶이 완벽하리 만큼 뛰어나고 여성적인 사람이 아닌 나 같은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과 같은 맥락이겠지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안을 삼습니다. ^^
 
금세 지쳐버리곤 하는 사람인지라   처음 생각과는 달리 한 달 쯤은 걸려야,  전체적으로  선호하는(?)  문체상  몇 번이고  반복되는 표현들을  쬐끔이라도  가지치기해 놓는,  그나마  좀 볼 만한 글이 되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낡은 사진첩의 사진을 하나하나 훑어보듯 하던 어제,  남편에 관해 쓴 글을 발견하고 한 번 죽 읽어보면서 나도 모르게 감동으로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남편의 손을 이끌고 와 읽어보게 하니 남편 역시 감동을 느꼈던 모양이었습니다.  
 
서툴기만 한 글들  속에서도  나 자신 진심을 느끼듯 남편도 그랬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서툼 속에서,  타인이든 자신을 향해서든 너그러워진 것 같지만 한 편으로는 나태해진 것이기도 한 지금의 나를,  나의 마음 자세를 주님 안에서 다시 반성해 보게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