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이 사람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어제 밤, 전날 읽던 책을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난 다음 내려 놓으면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입니다.
아마 상당히 진지하게 톤으로 중얼거렸던 것인지, 남편과 아들아이 동시에 소파 위에 내려 놓은 책을 들여다 봅니다.
"이거, 아빠가 읽으려고 사 놓은 책인데, 엄마가 먼저 읽었네. "
"이 사람 처형당했잖아. 나치에게 교수형 당한 독일인 목사. "
누가 쓴 책인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하는 아들아이에게 남편이 설명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한 동안 두 남자가 머리를 맞대고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도 들어왔습니다.
그런 모습을 얼핏 보며 아직 책이 준 감동에서 깨어나지 않은 나는, 내 머릿속을 떠도는 말들을 꺼내 놓듯 말했습니다.
"독일인들이, 전 세계를 상대로 저지른 범죄, 전 국민을 정신병 상태로 몰아 넣었던 광풍을 지나고도 오늘날 저렇게 멀쩡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사람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야. 이런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독일이 그 후유증에서 회복되어서 경제적으로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유럽의 강국으로서의 마인드를 가지고 존재할 수 있었겠어? 정신적으로 병들어서 회복되지 못한 채 무너진 나라가 되었겠지. 사실상 그는 독일의 진정한 애국자였던 셈이야.”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이 독백처럼 그렇게 흘러나왔습니다.
전날 밤, 작은 시집 만큼이나 작고 얇은 본 회퍼의 '시편이해'라는 책을 속지의 앞 부분에 실린 사진 밑에 쓰여진 짧은 글을 읽을 때 만해도, 그의 목사로는 좀 특이한(?) 이력에 관심이 갔던 것인데, 어제 밤 그렇게 큰 감동으로 책을 내려 놓게 될 줄을 몰랐습니다.
나치 정권에 대항하는 교회 저항 운동의 참여자로 강연차 갔던 미국에서 이주를 권했을 때에도 뿌리치고 2차 세계대전 직전 귀국한 그는, 계속되는 압제에도 저항 운동을 펼치다가 나치 정권 붕괴 직전 교수형을 당했다...는 것이 그에 대한 짧은 소개였습니다.
자판을 두들기다 말고, 그가 처했던 암울한 시대적 상황의 상징처럼 검은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앙상하게 뼈만 남아 거친 가시 철조망처럼 뻗은 나무 가지 맨 위쪽, 하늘색 비둘기가 비상하려는 듯 날개를 펼치고 앉아 있는 책표지의 그림을 잠시 바라봅니다.
실제로는 그에 대한 소개글이나 책표지가 주는 상징과는 큰 관계없다고도 볼 수 있을 이 책은, 시편으로 기도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데, 나는 이 귀한 책 한 권 속에서 사실상 방법론적인 기도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신앙관, 더 나아가 그 삶 자체를 이루고 있는 전체로서의 한 사람의 모습을 언뜻언뜻 발견하며 깊이 조망해 보기까지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펄떡이는 맥박으로, 이 땅의 깨어 있고자 하는 정신들을 향해 힘있게 길을 보여주는 행동하는 리더로서의 참다운 모습을 일깨워주는, 그 아름다운 인물 하나를 나는 이 작은 한 권의 책에서 뜻하지 않게 만난 것입니다. 가슴이 뛸 만큼.
어제 밤 1시가 가까운 시각에도 남편은 그 책을 읽느라 침실의 불을 훤히 밝혔습니다. 내가 만난 그를 남편도 만나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어서인지, 환히 밝혀진 불빛이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