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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BY 플러스 2009-01-21

 

어제는 잠시 켠 텔레비전에서 네팔에 사는 여성들특히 홀로 된 여성들의 부당한 사회적 대우불평등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이제 겨우 열 다섯스물의 나이인 어린 네팔 여자들이 평생 걸머지고 살아가야 할 생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 아팠습니다.  

 

인터넷에서는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네팔의 아름다운 자연을 두고 '세상의 가장 깊고 아름다운 곳',  '순진무구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어구를 사용하며 여행객들을 초대하고 있는데,  그들의 실제의 삶이란 여성에게는 야만적이기까지 한 법률과 종교(힌두교)의 틀 안에 문화관습적인 학대를 당하며 고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니 믿기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들어 온 이 사이트의 작가방의 한 곳에서 한 님의한 남자와 만난 거의 강제에 가까운 결혼을 하게 되기까지의 한 맺힌 이야기를 죽 훑어 보게 되었습니다.

 

이십 편이 넘는 글들을 하나하나 써 내려가기까지 한 글 한 글 얼마나 피를 토해내듯 했을까 하는 마음에 아프기도 하고네팔 같은 나라에 비하면 문화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현대적인 나라로 보일 우리나라임에도여성은 성적으로도또 그 삶 마저도 여전히 정복 대상 쯤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씁쓸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미 작가이기도 한 분이라 그런지  글 솜씨가 너무나 생생한 바람에 어제 읽은 글들로부터 받은 충격이 아직도 내 마음을 답답하게 합니다.  글을 쓸 의욕을 잃을 만큼 마음이 우울함으로 가라앉아 버리기도 합니다.  아마,  그녀가 토해 놓은 글들 속에 담긴 아픔들은  그녀만의 것이 아니어왔던 것임을  여성인 입장에서 함께  느끼게 되기 때문이겠지요.   

 

타인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통한 상처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성적인 침략이라고 표현할 만한 행위들 또한,  여성에게는 그것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의 근간을 짓밟는 치명적인 행위인 것임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고 싶지 않은 남자 또는 남편들도 세상에는 꽤 있나 봅니다.  아마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를 뿐 아니라 어쩌면  배우고 싶지도 않은 것이겠지요.   

 

그런 삶 가운데에서 이미 잃어버린 신뢰와 상처로 신음하면서도스스로 찢겨졌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찾아 일으켜 세우고 싶은 여인들의 마음을,   앞서의 그녀 뿐 아니라 때로 여러 여인들의 글 속에서 언뜻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편,  그녀들의 자신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제 방향을 찾아서 가고 있는 것인가 안쓰러워질 때도 있습니다.  그저 거친 문자를 동원한 한풀이에 그치거나,  자신을 솔직하게 쏟아내고 난 뒤의 헛헛함만이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혹 글을 쓰는 행위가 스스로 쏟아내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다던가  혹은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작품을 남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을 찾아가고자 하는 것이며  스스로 어떤 변화를 꿈꾸는 것이라면그녀들에게는 자신을 의지하는 것 이상의 푯대가 필요할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의 생각은 요즈음 읽은 한 소설의 주제와도 연관되는 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루이스의 소설은  그리스 신화 푸시케 이야기를 저자가 확장시키고 변용한 이야기입니다

 

여신처럼 아름다운 이복동생을 자신의 목숨처럼 사랑하고 아낀,  사람들로부터 냉대를 받을 만큼 추한 외모를 가졌으나 깨어있는 정신과  용기를 지닌 오루알은,  푸시케를 잃고 난 뒤 자신의 얼굴을 베일에 가린 채 용맹한 여왕으로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녀의 외롭고 고뇌에 가득찬 삶 속에서 그녀는 신들을 향해 그들의 부당함삶의 부당함을 고소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쓴 책의 1부의 끝머리에서 '신들보다 인간에 유해한 존재는 없다'라고도 단언합니다.

 

 그러나, '이 넓고 무관심한 세상에서',  이별과 죽음을 통해 그녀로부터 멀어져간,  '남들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를 공유했던 사람들'을 쓸쓸히 되돌아보며,  자신 안의 갈망 마저도 사라져 버린 '텅 빈 존재'  말년의 여왕 오루알은,  그제서야 신과 마주하게 되면서 자신이 일생동안 갈구해 오던 대답을 신에게 요구할 기회를 맞게 됩니다.  

 

그러나 정의롭지 못하다고부당하다고 여긴 신들을 향해 자신이 내민 고소장을  읽어내려가던 그녀는,  오히려 자신의 얼굴에 씌운 베일이 벗겨지듯 마음과 영혼의 베일이 벗겨진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던   ‘진실한 외침과 마주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자가 당신들()의 것이 되어 영원히 사느니… 차라리 내 것인 채로 죽는 편이 낫다',  '나는 내 것이요…. 프시케도 내것'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오루알은 신들의 존재 자체가 재앙이며 부당한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적인 관점을 복합적으로 담아냈다고 생각되는 루이스의 이 책은 그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면 보다 복잡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단지... 그런 오루알이 '사랑하는 푸시케의 진정한 행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아이를 향해 가진 사랑에 집착해왔던 것처럼,  우리의 본성 안에 가까운 대상을 소유하듯 사랑하려는 마음은 없는 지,  또 그 겉보기에는 숭고해 보일 감정에서조차 이기적일 때에는  잔인해질 수 있는 인간의 본성처럼,  자신이 받은 깊은 상처와 아픔에 무의식적으로  정당성을 스스로 부여한 채 가장 가까이에서 살피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게 잔인한 마음을 끝없이 품고 있는 것은 아닌 지 돌아보아야 할 점은 없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진정한 자신을... 결코 우리의 생각 만큼 정당하지도 순결하지도 않은.. 베일을 벗고 자신 앞에 또한 신 앞에 온전히 드러내게 될 때에,  그 때에야 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 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얼굴을 가지게 될 때까지'라고 쓰인 영어 제목과는 달리 한국어 제목처럼  '얼굴을 찾는 것'  생각의 촛점을 두게 되면 '얼굴 찾기' 본래의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기도 하며,  자기 자신 조차도 희미한 존재인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닌 확실하고 흔들림 없는 푯대 안에서 자신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크리스찬인 나는 생각하게 됩니다.

 

  여정 안에서 자신이 곧게 설 수 있을 때에...  아픔과 상처의 제공자라고 여기게 되는 대상그것이 배우자이든,  또는 그 어떤 사람이든,  그들의 얼굴 또한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불가능한 일 처럼 보이고,    너무나 어렵고 힘들 것이 분명하겠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음을,  신 앞에 서서 온전히 베일을 벗게 되는 날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모든 님들에게 편안한 밤이 되시길.. 바랍니다.